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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긍 Oct 09. 2020

싱크대 설계를 세 번 바꾸다.

준비기 2020. 01.

 집을 고치는 31일 내내 하루도 쉴 수 없었다. 공사 일정이 매일 있지 않았지만, 쉬는 날도 이후 공사를 예상하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결정하느라 분주했다. 미리 공정을 정리하지 않고 현장에 가면, 생전 처음 맞는 상황에 기가 질려서 중요한 것들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작업자분들은 항상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내 생각’을 물으시는데, 미리 조금이라도 생각해 놓지 않으면 막막해하다가 아무 결정이나 하게 됐다. 공사를 끝낸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결정은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현장에서 계획을 변경하고 수정을 하게 되더라도, 나름의 이유로 어느 정도 결정을 해 놓아야 마음이 편했다. 


 처음부터 이런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은 아니었다. 철거공사팀의 일정에 맞추느라 이사에서 공사 시작하는 날까지 4일이 비었다. 항상 닥쳐야 일을 진행하는 나로서는 그제야  전체 공사의 일정과 집의 상황을 검토해볼 수 있었다. 

공사 시작 이틀 전, 싱크대 김실장님과 현장 실측은 예정된 일이었다. 전에 살던 집의 싱크대는 길이가 2.1 미터로 일자형의 싱크대였다. 요리를 많이 하지도 않았지만, 뭐 좀 해볼까 하면 영 공간이 협소해서 불편했다. 싱크대를 제작한다면 디귿자로, 작지만 알차게 만들어보자 생각했다. 싱크대 실장님과의 사무실 미팅에서도 작은 공간이지만 꼭 디귿자로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실장님과 이리저리 싱크대를 설계해 본 후에, 빠듯하지만 적당한 구성의 설계로 미팅을 마무리했었다.                                                       

그런데, 이사로 짐이 다 빠진 집을 보니 부엌 쪽 벽이 40센티미터가 나와 있는 구조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히 인터넷에 올라온 평면도에는 싱크대 쪽 벽이 창까지 일자였다. 창을 마주 보는 아일랜드 테이블 사이즈를 줄이자니 너무 작아서 어정쩡해 보이고, 그대로 두기엔 부엌과 거실을 나누어서 시야가 답답했다      

공사 시작 전부터 계획에 대대적 차질이 생긴 것이다. 실측 날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 보자면서 실장님과 의논을 했다. 결론은 디귿자로 하면 집의 크기에 비해서 부엌이 너무 커져서 답답해 보일 것. 포기하기로 했다. 다시 기역자로 바꾸어 볼까, 그냥 원래의 싱크대처럼 일자형으로 할까 의논하다 일단 냉장고를 복도와 연결해서 배치하는 기역자 싱크대로 결정을 했다.      

    실장님이 떠나고, 빈집에서 다시 자를 들고 이리저리 싱크대를 예측해보았다. 좁고 긴 복도가 냉장고 장으로 연결되면서 복도가 길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답답했다. 남은 것은 일자형 싱크대뿐. 그 대신 아일랜드장을 기존 식탁 자리에 배치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실장님께 의견을 보내니 마침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십 일 자 형이었지만, 대강의 도면을 구성하고 떠올려보니 덜 답답했다. 싱크대를 마주 보고 앉을 수 있게 상판을 15센티 정도 나오게 하고, 전자레인지를 넣고 서랍으로 구성하면 오히려 수납공간도 확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면 괜찮겠다며 마음이 놓였다. 


 이때부터였다. 계획은 언제라도 변경될 수 있다는 것. 인테리어 공사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속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취향과 요구를 정확하게 모르면 시공하시는 분과 대화가 잘되지 않겠다는 것.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어야 하지만 그 의견들은 참고일 뿐, 내가 선택해야 공사 결과에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인테리어는 내가 살 공간에 관한 것이다. 순간의 결정은 이후 우리 삶에서 작게, 크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뭐든 최선은 없겠지만, 내가 날 설득한다면 이후부터는 적응하고, 정을 붙이면 된다. 


 공사 시작 전, 난 조금씩 현장 소장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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