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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경 May 20. 2020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는 아이들

집에서 할 수 있는 재미 찾기

개학이 연기되었다. 일주일, 이주일 연장된 방학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있다. 아이들은 새 담임선생님의 얼굴도 모른다. 마이산은 집에서 책가방을 메보고 “책가방 메고 학교에 갈 날이 올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강물이와 마이산은 초등 6학년이다. 활동적이고 사춘기의 초입에 접어든 쌍둥이 아들. 이들과 하루 24시간을 함께 하는 나는 곧 사리가 나올 듯하다. 아이들과 나는 각자의 시점에서 개학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시작되는 이 계절에 우리 가족은 나들이를 자주 했다. 목적지가 가깝던 멀던 아이들은 나가는 걸 좋아한다. 가까운 캠핑장에서 라면만 끓여먹어도 좋아한다. 외출은 어른인 나와 남편에게도 필수적이다. 아이들이 에너지를 발산할 때 어른들은 충전이 된다.     


평일에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을 하고 주말에는 극장 나들이를 하거나 야외로 나가는 일상. 이 일상이 너무너무 그립다. 당연하게 여기고 지내던 날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날처럼 멀어지는 게 두려워질 정도이다. 잠자리에 누우면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쉬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는 안 되겠어. 평생에 한 번밖에 없는 '13살의 봄'을 찾아야겠다.’     


나는 ‘할 수 없는 것’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을 찾기로 했다. 현실적인 제약이 있겠지만.     


나 : 너희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까 엄마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각자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없을까? 단, 게임은 시간을 늘려줄 수 없어.

강물 : 놀 것이 필요해. 재미있는 걸로. 나갈 수도 없고, 친구도 못 만나니까 답답해.

나 : 둘이서 생각해봐.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걸로.     


다음 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물 : 안 해 본걸 해봐야겠어. 영화도 책도 방학 동안 많이 봤어.

마이산 : 작년에 과학원(전북과학교육원)에서 재밌었는데. 코딩을 해보면 어떨까?

강물 : 그때 ‘엔트리’랑 ‘아두이노’ 했었는데 좀 어려웠어. 선생님 없이 우리끼리는 힘들걸.

나 : 엄마가 둘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게.     


나는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영역이라서 아이들끼리 할 수 있어야 한다. ‘엔트리’나 ‘아두이노’보다 쉬운 코딩 언어가 있다. ‘스크래치’이다. 입문서용으로 책을 찾아보다가 나는 열쇠를 찾아냈다. 바로 만화가 삽입된 스크래치 책, 「코딩맨」이다. 10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만화로 또 글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코딩을 가르쳐준다.     



마이산 : 이건 재밌네. 나 혼자서 해 볼 수 있겠어.

강물 : 작년에는 6학년 형들이 하는 걸 따라서 했었는데.

마이산 : 강물, 우리가 게임을 만들어 볼까?     


일주일 넘게 「코딩 맨」 책에 빠져 지내던 아이들은 ‘스크래치 3.0’을 찾아냈다.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고  회원가입(엄마 허락 하에)을 했다.


‘스크래치 3.0’은 내가 20대 시절에 배웠던 코딩과는 딴 세상이었다. 각종 명령어 등을 외울 필요가 없다. 명령어, 함수 등이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우스로 클릭하고 옮겨다 놓으면 스크립트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저렇게 알고리즘을 짜던 강물이와 마이산은 머리를 쥐어짠다.     


마이산 : 이상하네. 왜 공이 안 움직이지?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강물 : 혹시 이것 때문이 아닐까?

마이산 : 음... 그런 거 같아. 공도 풍선으로 바꿔 볼까?      


약 40분 정도 흐른 뒤,     


강물 : 엄마, 엄마(외치면서), 내가 혼자서 게임을 만들었어.

마이산 : 나도 했어. 게임은 간단한데, 스크립트는 이만큼 길어.

강물 : 게임 만드는 사람들 엄청 대단해.     


‘스크래치 3.0’은 모든 회원의 프로그램을 공유한다. 타인의 결과물에 내 아이디어를 더해서 다시 공유할 수도 있다. 단, 맨 처음 창작자의 권리는 보호된다.     


그 뒤로 아이들은 ‘스크래치 3.0’에 공유되어 있는 다른 게임들을 해보고 그것들의 스크립트를 살펴보고 있다. 자신들이 만든 게임을 공유하고 매일 조회 수를 확인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을 아이들이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 있다.     


4차 산업시대에 모든 사람이 코딩을 능숙하게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물론 스크래치라는 쉬운 언어가 아이들의 장래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해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요즘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즐거움을. 엄마의 길잡이 없이 개척해낸 길로 강물이와 마이산은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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