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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경 Jan 20. 2021

생일 PC방

코로나 19 시국의  생일파티

2020년 코로나 19가 지구 전체를 잠식중이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 강물이와 마이산은 봄부터 생일파티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2월에 생일인 친구의 파티가 일주일 뒤, 한 달 뒤로 미루다가 영영 미루어져 버리자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일파티를 걱정했다. 친한 친구 두세 명만 불러다가 집에서 놀게 해 줄까 하는 계획을 세우다가도 확진자라도 발생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2년 전에 김지연 작가의 책 <아무도 외롭지 않게>을 읽었는데 그 책의 한 챕터에 작가의 아들 생일선물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작가는 요즘 아이들은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라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는 추억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탄생한 선물이 바로 ‘야자타임’이다. 생일 당일 하루 종일 아들은 엄마에게 반말을 엄마는 아들에게 존대를 해야 하는 선물이다. 별거 아닌 이 선물에 아들은 백 퍼센트 만족감을 주었다. 아마 어른이 되어서도 두고두고 기억할만했다.     


이 책을 읽을 때 같이 아들을 키우는 엄마인 나도 ‘이렇게 해볼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 김지연 작가의 아들과 마찬가지고 강물이와 마이산도 눈을 반짝이며 “재밌겠다. 기대되는걸. 그날 하루 종일 엄마한테 반말해도 되는 거야?”라며 좋아했다.     


아이들이 생일파티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는 ‘야자타임’ 생일선물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가끔 학교에 등교하고 그 외의 대부분의 시간에는 집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2020년, 더 큰 선물이 필요했다.     


“얘들아, 너희는 하루 종일 하고 싶은걸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어?”     


강물 : 수영장도 가고 싶고, 갈비랑 막국수 먹으러 가고 싶고, 찜질방도 가고 싶고.

마이산 : PC방에도 가보고 싶었는데, 코로나 없었으면 아빠랑 가기로 했었는데.

강물 : 나도. 그 대신에 하고 싶은 만큼 게임을 계속하면 좋겠다.     


그날 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집에 PC방을 차려주기로. 거실에는 강물이와 마이산 각자의 컴퓨터가 있다. 스케치북에 'Happy Birthday', ‘무제한 게임’, ‘간식 무료'라고 쓰고 벽에 붙여놓았다. 그럴듯하게 간식 펜트리도 마련하고 카카오톡 메시지로 간식 주문도 받기로 했다. 



아이들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무제한으로 주어진 시간은 게임에서 진 아이들을 너그럽게 만들었다. 게임 상에서 친구도 만나고 모르는 타인 하고도 게임을 하던 아이들은 라면을 주문했다. 안방에서 대기 중이던 일일 PC방 운영자인 나는 라면을 끓여서 컴퓨터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이 파티를 계획하면서 나는 ‘오후 3시쯤까지 게임하다가 산책 가자고 하겠지.’란 생각을 했었다. 내 생각은 무참히 짓밟혔다. 아이들은 게임하면서 전혀 지치지 않고 지루해하지도 않았다. 연애시절 남편 따라 PC방에 갔던 나는 30분이 고비였고, 그 이후에는 졸음이 쏟아졌었는데. 아이들은 남편의 게임 유전자를 물려받은 게 확실했다.

아침 먹고 게임하고, 점심 겸 간식으로 주문한 라면을 먹고, 저녁 먹고 나서도 아이들은 계속 게임을 했다. PC게임을 하고 휴대전화로 모바일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활기찼다. 항상 친구에서 “나 이번 판이 마지막이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 이날만큼은 이 친구하고 저 친구하고 번갈아 만나며 게임을 했다.     


나 역시 지쳐서 게임을 그만하겠다는 기대를 버리고 내 시간을 가졌다. 평소에는 게임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나는 사리가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날 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일 년에 단 하루잖아. 2020년을 코로나로만 기억하지 않고 생일 PC방을 기억한다면 그걸로 된 거야.’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마이산 : 오늘 정말 좋았어.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어.

강물 : 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빨리 일 년이 지나면 좋겠어.

마이산 : 강물아, 내년에도 선물 이걸로 받을까?     


다행이다. 2020년에 행복한 날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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