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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경 May 31. 2024

봄의 단풍

노화 따위 괜찮아!!!

지난 사십 년이 넘도록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추위에 약하고 잘하는 겨울 스포츠가 없었다. 잘하는 게 없으니 즐기는 것도 없었다. 더위는 가만히 있으면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다. 컵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커피를 담으면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남은 얼음으로 한 동안 더위를 잊을 수 있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마흔 살이 지나고 얼마쯤 지났을까 어느 날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이 너무나 예뻤다. 때는 5월이었고 봄이었다. 봄의 산에는 나무에 돋아난 새 잎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 초록초록한 색감은 내 몸속의 나른한 느낌마저도 모두 사라지게 했다. 그날부터 나는 봄을 좋아한다. 겨울의 추위가 가셔서가 아니라 봄의 생동감에 마음속이 무한히 넓어지는 느낌에 황홀함마저 느낄 정도이다.

     

올해 5월에는 정읍에 다녀왔다. 내 기억 속의 정읍은 내장산이었고 내장산 하면 단풍이었다. 어쩌다 가을이 아닌 봄에 방문한 내장산에는 단풍나무가 가득했다. 초록초록한 단풍. 가을의 단풍철에는 차량 통제가 이루어지는 길이 뻥 뚫려있었다. 커다란 단풍나무가 길 양쪽에 쭉 늘어섰고 그 잎들 사이마다 빛나는 햇살. 차창을 바라보던 내 입에서는 감탄사가 저절로 끊임없이 쏟아졌다.

    

같은 단풍나무인데 과거에는 가을의 그것이 아름다웠고 현재에는 봄의 그것이 예쁘다. 단풍나무는 그대로인데 무엇이 바뀌었을까. 나이가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자연과 내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내가 생생했을 때에는 말라가는 낙엽이 예뻤고 이제 내가 나이 드니 새 잎의 생생함이 예뻐진 게 아닐까.

    

몇 년 전부터 새해를 맞이하는 자세가 조금은 달라졌다. 아직 노안은 겪지 않지만 같은 이유로 내 몸에 일어나는 다른 노화 증상들이 너무나 잘 보인다. 주름은 눈가에만 생기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피부 구석구석 곳곳에 생긴다. 한두 가닥만 있던 흰머리는 점점 세를 넓혀간다. 매일 바라보는 손등 피부가 어느 날은 푸석푸석해 보인다. 봄의 초록이 예쁜 이유가 이것이었다.


내장산의 초록 단풍을 바라보며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단풍잎의 초록이 내 마음속으로 전이된 것 같았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도 괜찮다. 단풍잎은 내년 봄에도 내후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계속 초록초록 할 테니까. 그 초록은 봄마다 내 마음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자연이 내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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