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감정: 허무함]

묵묵히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나의 모든 것

by 세실리아




나는 요란한 삶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시름이 깊은 날에도

그 이유를 남에게 묻지 않습니다.

그럼 나라는 존재가

시름이 깊었던 그 공간에서,

꽃받침이 받쳐주는 새하얀 꽃으로

새롭게 피어나는 걸 느끼게 됩니다.


봄기운이 가득한 대지에서

많은 것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설령 자신을 반기지 않는

뜨거운 여름날이 오더라도,

그것에 지지 않고 성장하기 위해서

땅속에서는 수많은 뿌리가 조용히

최선을 다해 영양분을 빨아들입니다.


출처: 괴테, ‘요란한 삶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中



육아를 하며 엄마의 소신을 지켜나가는 것은

참 쉽지 않다.

쉽지 않지만,

반드시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엄마의 소신이기에,

쉽지 않지만,

그 소신을 묵묵히 지켜 나가야 하는

엄마의 소신이기에

그 소신이

과하지 않기를,

그 소신이

고집과 아집이 되지 않기를,

그 소신이 강요가 되지 않기를,

지혜와 현명함으로 지켜나가는

엄마의 소신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는 육아를,

엄마 자신을 키우는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학습을 위한 학원은 보내지 않으리라.’,

‘집에서 함께

학습에 필요한 엉덩이 힘을

키워 나가 보리라.’.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추가한 이 소신들을 지키며

3년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해야 할 일 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하는 나이이기에,

앉아서 공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놀면서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마음이

우선하는 게 당연한 나이이기에

믿고, 조율하고, 기다리며

나의 소신을 지켜가고 있었다.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대하는 연습을

이어가고 있었다.


요 며칠, 계속되는 아이와의 실랑이 속에서

답답함과 막막함과 버거움을 느끼던 중,

어젯밤, 아이는 내게 그동안과는

차원이 다른 말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들을 들으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엄마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법을 정하잖아.”


아이가 했던 그 말들 속에서,

가장 아픈 말이었다.

아이가 했던 그 말들 속에서,

나의 말문을 막은 말이었다.


허무했다.

순간, 모든 것이

너무나도 허무했다.

아이와

대화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생각했었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를

믿어주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의 말을 들으며,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얘졌고,

가슴은 무언가에

콱 막힌 듯, 답답해졌으며,

온 몸의 기운이 빠졌다.

웃을 수 없었고,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아...”

아이의 말에

어떻게 대꾸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무 충격이 큰일에 대해서는

금세 기억을 잊곤 하는

나의 보호본능이 발동한 것일까.

어떻게 말을 마쳤는지

끝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다음 장면은

아이는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몰아치는 생각들을 씻어내려

설거지를 했다는 것.

쉽게 씻기지 않는 생각들과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쉽게 씻기는 식기들을

열심히 설거지했다.



우아한 내면을 만드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마음을

아주 찬찬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럼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낯선 자신과 마주할 수도 있게 되죠.

당당하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를,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외쳤지만

그것 역시

힘든 현실을 가리기 위한

한낱 구호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여러분 자신입니다.


출처: 김종원,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中





그렇게 깨끗해진 식기들이

설거지통에 한가득 채워질 무렵,

나의 마음에는 허무함이

한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그 때, 방에서 나온 딸아이가

내 옆에 가만히

편지 한 장을 두고 갔다.


아이도 나만큼 혼란스럽고,

아팠음을 알 수 있었다.

알지만,

바로 편지를 열어볼 수 없었다.

설거지를 다 끝내고도

한참 뒤에야 편지에 손이 갔다.



엄마, 미안해요.

그 말 진심이 아니었어요.

충격적인 말해서

미안해요.

나 엄마랑 공부할래요.

사랑하고 미안해요.



그랬구나.

진심이 아니었구나.

진심이 아니었다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진심이었으나

엄마에게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다고 하는 건 아닐까

의심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게 또다시

나 자신이 나약한 인간임을

깨달아간다.


한참동안

편지를 손에 들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생각에 잠긴 것이었을까.

생각을 멈춘 것이었을까.


그리고 나의 소신에,

엄마의 소신에 머물게 된다.

나의 소신이

아이에게 강요가 된 걸까.

나의 소신이

아이에게 엄마의 법처럼 느껴진 걸까.

몰려왔던 허무함에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조금 진정이 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아이의 편지에

마음의 상처가 조금은 아문 것일까.

여전히 무거운 마음 안에서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함께 채워짐을 느낀다.

여전히 무거운 마음 안에서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감정을 정리하고

편지로 마음을 건넨

아이의 마음에 대한 고마움이

함께 채워짐을 느낀다.

채워지는 미안함은

허무함으로 차가워졌던

마음을 녹이기 시작했고,

채워지는 고마움은

허무함으로 무거워졌던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기 시작했다.


이제 엄마의 용기가 필요한 시간.

아이의 편지에 답장을 준비했다.

아끼는 그림책 중 한 권을 손에 들고

아이가 잠잘 준비 중인

아이 방으로 향했다.

아이 곁에 누우며,

“편지 잘 받았어. 고마워.

이 그림책이

엄마의 답장이야. 들어봐.”



<<너는 기적이야>>

너와 함께한 하루하루.

너와 함께한 한 달 한 달,

너와 함께한 한 해 한 해가

내겐 모두 기적이었어.


네가 내 아이라는 것.

그게 바로 기적이야.


출처: 최숙희, ‘너는 기적이야.’ 中




그림책 속

따스한 그림을 눈에 담고,

그림책 속

따뜻한 글을 귀에 담으며

그렇게 서로의 말에 상처 입은

엄마와 아이는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렇게 아프게 마무리 한 하루였지만,

그 하루도 우리의 성장통 임을 알기에

아이와 함께한

그 하루도 소중함을 다시금 명심해본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가고,

오늘은 아이의 소풍날.

엄마는 오늘도 엄마의 삶을 이어가야 한다.

그렇게 이어가는 삶 속에서

더는 아집과 강요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엄마는 오늘도 엄마의 소신을 점검해 본다.

그렇게 엄마는 오늘도

아이의 소풍 도시락을 싸며

묵묵히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엄마의 모든 것임을,

엄마 자신임을 깨달아간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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