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엄마, 나는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로 태어 날거야.”
나(엄마): “어? 엄마는 다음 생에는
지안이 딸로 태어날 건데?”
아이: “난 아이 안 낳을 건데?
안 돼,
엄마는 또 우리 엄마 해줘.”
나(엄마): “엄마 많이 사랑한다며,
다음 생에는 지안이가 엄마 잘 키워줘.”
아이: “안 된다니까. 엄마 내 엄마 해야 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아! 그럼 아이 이름을
‘엄마’ 로 해야겠다.
태명도 ‘엄마’, 이름도 ‘엄마’”
아이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다음 생에 자신의 아이로 태어나겠다는
엄마 말을 듣더니,
그럼 자기 아이로 태어나면
이름을 ‘엄마’라고 짓겠단다.
아이의 기발한 생각에
엄마도 아이도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며,
집안일을 하며...
전날 밤 잠자리에 누워 나누었던 그 이야기가
자꾸만 떠오른다.
엄마는 오늘도 아이를 통해 배워간다.
엄마는 오늘도 아이를 키우며 깨달아간다.
엄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
엄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인정해주고 있는 사람,
엄마가 엄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사람,
엄마가 어떤 모습이든 무조건 사랑해주는 사람.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렇게 엄마를 향해 사랑을 주는 사람이
아이임을 깨달아 간다.
엄마는 아이 앞에서
자신의 모든 모습을 드러내며 아이를 키운다.
아이는
엄마의 가감 없는 민낯을 온전히 보며 자란다.
어쩌면 엄마 자신보다도,
엄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아이가
엄마를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미약하고, 부족하고, 욱하고, 흔들리는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언제나 엄마를 찾는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요즘 종종 이어지는 아이와의 실랑이 끝에,
부족한 엄마는 그 마음이 가라앉기 전까지
아이의 눈조차 잘 마주치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의 온 몸과 마음과 눈을 엄마에게 향하며
엄마의 얼굴을, 마음을 살핀다.
“엄마, 나 밉지?”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
비록 서로 참 많이 다른 우리이기에
종종 부딪치는 요즘이지만,
우리에게 천사처럼 와 준 너를, 엄마바라기인 너를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
이제 곧
엄마보다 친구를 찾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이제 곧
엄마와 함께 보다 혼자를 더 선호할 것임을 알기에
다음 생에도 엄마 딸로 태어나겠다는
아이의 그 말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귀하며,
다음 생에 엄마가 자기 아이로 태어나면
아이 이름을 ‘엄마’로 짓겠다는 아이의 그 말이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
오늘 밤, 아이의 그 말에 다시 대답해 줘야겠다.
아이: “엄마,
나는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로 태어 날거야.”
나(엄마): “지안아,
다시 태어나도
꼭 엄마 딸로 태어나 줘.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