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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미마셍 합창단

-보고싶다, 빵집 아줌마들-

지난 주 금요일

다른 때 같으면 돌봄교실 앞에 도시락을 놓고 배송기사가 그냥 갔을텐데

그날은 앞에서 나를 찾았다.

"저어, 선생님, 다른 반 거는 괜찮은데 선생님반 도시락이 이렇게 엎어져서 소스가 옆으로 흘렀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오다가 차가 덜컹했는데 그때 그런것같아요"


그날 식단은 하이라이스,밥, 잔멸치볶음, 김치,치킨너겟이었다.

이미 하이라이스소스는 밥으로 넘어와 용암처럼 표면을 덮고 있었고 멸치는 적당히 뿌려져있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럴수도 있지 이게 뭐 그렇게 죄송할 일이라고

마스크를 썼어도 딱 내 아들 나이정도로 보이는 청년이 몇 번이고 머리를 숙이며 죄송하다, 죄송하다

그러길래 괜찮다고, 급하게 운전하지말고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아이들에게는 이미 비벼진 도시락이 배송된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줬다.



사람의 감정에는 여러가지가 있어, 이해심도 그 중에 하나야

누군가 실수했을 때 그걸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마음

예를 들어 오늘 같은 경우지, 도시락 배송해주는 분이 운전하다가 덜컹해서 너희들 도시락이 엎어졌대

그래서 소스가 옆으로 흘렀어, 지저분해보일수도 있는 도시락을 받게 해서 미안하다고 배송해주는 분이

사과하고 가셨어, 그러니 너희들도 오늘은 이해하고 먹어주면 좋겠어.

일부러 그랬다면 사과를 받아야겠지만 실수로 그런 일에는 이해심을 가져야 돼

물론 실수도 여러번 반복하면 안되지만 오늘 한 번이었으니까 여러분이 잘 이해해주기를 바래요.


1학년과 2학년이 모여있는 돌봄교실은 냉정과 열정사이가 아니라 열정만 있는 곳이다.

그래도 그렇게 명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와, 추억의 도시락이다"

한 명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 추억의 도시락을 떼창하면서 멀쩡한 도시락이 

몇 개 있었음에도 아이들은 흐트러진 도시락을 달라고했다.

강가의 돌멩이 하나가 물줄기를 바꿀 수 있듯이 말한마디가 감정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유정이가 외친 한마디 "와, 추억의 도시락이다" 덕분에 금요일 점심은 즐거웠다.

돌봄업무중에 급간식 담당인 나에게 배송중에 김칫국물만 밥 위에 넘어가서 살짝 물들어있어도

업체에 말하라고 사진찍어보내는 다른 반 선생님이 있는 판에 정말 아이들이 어른보다 낫다.


일본어에는 욕이 없다. 바보 아니면 최악이다 정도가 욕이다.

ばか - 바까 (바보)

ばかやろう-바까야로우 (바보자식)

さいあく (最悪)-사이아쿠 (최악)

반면에 고마움의 표현은 욕보다 많은게 일본어다.


일본어 한마디 못해도 여행가서 

すみません - 쓰미마셍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 아리가토우고자이마스

たすかります (助かります) - 타스카리마스

정도만 알면 여행에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길을 몰라, 그럼 あのう, すみません 아노우, 쓰미마셍까지하고 가고 싶은 목적지를 보여주면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태워주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마법의 일본어가 쓰미마셍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식당에서 맛있게 먹고 잘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 아리가토우고자이마스를 

하면 사탕이라도 한 개 받을 수 있는 인삿말이 될 것이다.

たすかります (助かります) - 타스카리마스는 고마움의 인삿말이기는 하나

쓰미마셍과 아리가토우고자이마스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타스카리마스의 딱 맞는 예를 들자면

이혼한 남편이 위자료를 전처에게 지급해야 되는데 배려심있는 전부인이 형편이 좋지않은 

전남편에게 위자료를 받지않겠다고 말했을 경우, 전남편이 부인에게 たすかります (助かります) 타스카리마스라고 하면 딱 맞는 표현이고 직장에서 내가 바쁠 때 동료가 내 일을 가져가서 대신 해줄때도 쓰면 

좋은 표현이다.



교토에서 지낼 때 알바하던 보로니아 빵집의 출하부 작은 작업장에서 하루 4시간 알바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일본어가 쓰미마셍이었다.


뭘 부탁할 때도 쓰미마셍, 고맙다는 표현에도 쓰미마셍, 일본 사람들은 미안할 일 투성인가 했는데 

잠시 살아보니 쓰미마셍에는 고맙다는 은유적인 의미도 있기 때문에 넓은 의미로 많이 쓰일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알바하는 곳에서는 쓰미마셍이 구간반복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비가 오는 교토" (tistory.com) 라는 블로그에서 쓰미마셍 합창단 아줌마들을 썼고

연필그림은 그 때의 아줌마들을 블로그에 그린 것이다.


진심을 담아서 미안하다고 하면 가끔 기적이 일어난다.

돌봄교실 일이 재미있다가도 어떤 일에 부디치게 되면 진짜 싫다 그럴 때도 있지만

금요일의 쓰미마셍은 추억의 도시락을 만들어냈고

그건 앞으로 내가 이 일이 힘들 때 꺼내서 생각해볼 수 있는 한 장의 카드가 될 것이다.


보고싶다. 보로니아 빵집 쓰미마셍 아줌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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