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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なまえ,이름

신기촌고모의 이름은 고애례였다.

추석을 보내고 돌아왔다

추석이 오기 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죽었고

신기촌 고모는 여왕보다 이 주 전 쯤 돌아가셨다.

이로써, 아버지의 형제 2남 3녀 중 87세 큰 아버지 한 분만 살아계신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96세

신기촌 고모가 90세

5남매중 막내였던 우리 아버지가 72세로 2014년에 돌아가신걸 생각하면

여왕이나 신기촌 고모나 아버지에 비해서는 서운할 게 없는 나이지만

어찌됐든 한 인간이 태어났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불변의 법칙 앞에서

나는 신기촌 고모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아버지는 신기촌 고모와 조급한 성격과 말투가 상당히 닮아서

엄마가 아버지 흉을 볼 때면 신기촌 고모는 자동소환이 되는 분이었고

서로 닮아서 그랬는지 아버지가 일흔 둘에 돌아가셨을 때 여든 둘이었던 

고모는 업어키운 막내 남동생이 죽었다며 서글피 우셨다.


부고를 들었지만 장례식장에 가지도 않았고 조의금도 하지 않았다.

엄마말씀이, 아버지 때도 고모네 자식들 중에서 오빠 한 분만 했으니

우리도 남동생만 하면 된다는 기브 앤 테이크의 확실한 원칙에 

엄마가 아직도 갖고 계신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썼던 방명록을 검증한 결과

우리집에서도 한 사람만 하면 된다는 결론이었고 다녀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아 뼈속까지 문과 갬성인 나의 정서와는 반대로 셈에 밝은 

이과적인 머리를 가진 우리 엄마 황경예 여사의 계산은 감성이 앞서는 나에게 확실한 빨간 불이다.

엄마는 신기촌 고모의 장례식장에 다녀오신 후, 코로나 확진이 되셨고 신기촌 고모는 

가시는 길에 그렇게 확실한 존재감을 뿜뿜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갑자기 궁금했다.

돌아가신 신기촌 고모의 이름이 뭐였지?

한 번도 안가본 남의 나라 여왕 이름은 알면서 우리 고모의 이름은 모르다니

부조는 안했어도 고모 이름이라도 알아야겠디 싶어서 엄마에게 고모 이름을 물었다.


큰 아버지나 큰엄마 이름은 알았어도 큰 고모는 서울 고모, 둘째 고모는 솜리 고모

셋째 고모는 신기촌 고모로 불렀다.

고모들이 시집 간 동네 이름이 우리가 불렀던 고모들의 이름이었고 엄마 조차

우리가 신기촌 고모라고 불렀던 것 처럼 신기촌 형님이라고 불렀으니 고모의 이름은 

신기촌이라는 곳으로 시집을 가면서 사라졌고 마을 이름이 고모 이름이 돼버렸다.


옛날에 들었는데 잊어버렸다.

앵예라고 했던가, 쪼간이라고도 부르던데 니가 물어봐서 나도 궁금해졌다만

이름을 모르것다.


장례식장에 다녀왔어도 고모 이름을 모르는 엄마때문에 큰집에 전화를 했다.

큰엄마, 신기촌 고모 이름이 뭐였어?

앵예라고 허든디, 잘 모르것다.


큰 엄마도 잘모르는 신기촌 고모 이름

큰아버지하고 통화를 하고 해결이 되었다.

신기촌 고모의 이름은 애례였다.

사랑애자에 예도 예를 쓰는 애례, 고 애례

큰아버지랑 통화를 하고 고모들의 이름을 다 알게 되었다.

서울 고모는 귀례, 솜리 고모는 영례, 신기촌 고모는 애례


애례라는 이름이 발음이 잘 안되니까 애례를 앵예라고 불렀던 것이겠지만

애례라는 이름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그 이름이 딱 맞는 이미지인것처럼

신기촌 고모도 애례라는 이름이 본인에게 어울리는 이름같았다.

말이 많은 만큼 정도 많았고, 자주 안봤어도 언제나 반갑게 대해주셨다.

엄마 말에 의하면 한밤중까지 들에 나가 일을 하던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었고

자식들 공부 가르치는 일은 시골이지만 서울로 대학 보낸 아들을 지방대 교수로 만드신

분이시니 깻잎팔아 용돈주고 논 팔아서 학비댔다는 전형적인 시골분이셨다.



엄마도 궁금하다면서 신기촌 고모 이름 알게되면 알려주라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나 : (흥분된 목소리) 엄마, 알았어. 신기촌 고모 이름, 애례였대.

엄마 : (깊은 깨달음의 목소리) 맞다. 애례였다. 

귀례,영례,애례까지 고모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알려주자 엄마가 막 웃으면서 한마디하셨다.

엄마 : (웃기다는 목소리) 무슨 이름들이 다 그렇다냐

우리 엄마지만 진짜 노답일때가 있다.

나: (지적하는 목소리) 엄마 이름은 경예야. 잊어버렸어!!!

이름 끝에 예도 예자를 쓰는 고모들과 같은 한자를 쓰지만 엄마는 례를 예로 올린 것 뿐이고

귀례나, 영례나, 애례나 경예나 같은 거 아니냐고 했지만

우리 엄마 황여사는 좀 강하시다.

엄마: (자신간 쩌는)내 이름이 어디가 어때서 그러냐, 차렷, 경례 좋기만 하다.


애례로 태어나서 쪼간이로 불리다가, 왕택이네 엄마로 사셨던 신기촌 고모는

돌아가시고 이름을 얻었다.

신기촌 고모의 이름은 애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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