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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어렸을 때 살았던 시골집은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집 중에서 

가장 집다운 집이었다고 생각하는 곳이다.

뒷 뜰에 단이 높았던 장독대와 그 아래 줄줄이 심어져 있던 

채송화와 맨드라미

앞 마당에는 앵두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었고

우물이 있었던 집

나는 그 우물이 좋았다.


금성 냉장고가 아직 우리집에 있기 전

엄마는 줄이 달린 둥근 김치통에 열무김치를 넣어서 우물안에 던져놓고

밥 때가 되면 줄을 당겨 올려 통안에서 김치를 꺼냈다.


엄마가 김치통을 끌어 올리는 걸 신기하게 바라보느라 우물 안으로 고개를 숙이면

"그러다 우물에 빠진다" 

엄마의 말보다 우물 물에 그림자가 일렁거리는 내 모습이 더 무서웠던 어린 시절이었다.


스텐 밥공기에 앵두를 따서 가득 담아 햇살이 따뜻하게 뎁혀놓은 마루에 앉아서

앵두씨를 멀리 뱉었고 마루 밑에는 늙은 개가 들랑날랑하며 낮잠을 잤다.

나는 그 집이 좋았다.


엄마로서는 할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최초의 집이었던 재너머 안쪽의 작은 집에서 

돈을 모아 신작로를 끼고 있는 마당 넓은 집을 사서 나온 결혼 후 첫 이사였다.

원래 그 집에 살고 있던 나보다 어렸던 승기는 자기집이니 이사가지 않겠다고 울었고

나는 내가 들기에는 벅찬 무게의 가방같은 걸 들고 들고 웃으면서 들어갔던 집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집 중에서 앞마당이 있었고 뒷마당이 있었던 유일한 집은 그 집뿐이다.


다 좋았던 그 집이 싫었던 것은 무궁화나무 울타리가 쳐진 뒷 길때문이었는데

무궁화꽃나무가 길가에 쭈욱 있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하면 엄마가

"무궁화 나무 끊어와라" 하셨고 실제로 잘 끊어지지도 않던 나뭇가지를 입학도 하지 않았던

어린 아이가 제대로 꺾어왔을까 싶고, 종아리를 맞았는지 기억도 없지만

공포의 무궁화 나뭇 가지때문에 나에게 무궁화는 꽃보다 줄기 이미지가 더 강하다.


잘못에 대한 벌은 실제 체벌에서 왔던 게 아니라 "무궁화 나뭇가지를 꺾으러 다녀와라"는 

무서운 말로부터 시작되었을거다.


그래서 무궁화 나무를 싫어했다.


오징어 게임때문이었는지 돌봄교실 아이들은 바깥놀이만 나가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다.

운동장에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했지만 교실에서 할 때는

놀이가 발전해서 "의자에 앉아라 꽃이 피었습니다" 

"친구뒤에 숨어라 꽃이 피었습니다"

말을 만들어 붙여서 놀이를 하는 게 제법이다 싶었다.


우리나라 꽃 무궁화가 들어간 것 때문에 우리나라의 전통놀이로 착각할 수 있으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전세계 아이들의 놀이이다.

 아니 전세계 아이들의 놀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일본 아이들의 놀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일본 드라마 "コタローは1人暮らし" 코타로는 1인 가구,1인 생활에서 

독거 소년인 코타로가 시미즈 아파트 주민들과 드라마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물론 일본에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가 아니라 

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 다루마상가 고론다 (달마씨가 넘어진다) 라고 한다.


코타로와 히토리 구라시 "코타로는 1인가구"


이 드라마를 보고 일본 아이들 놀이인줄 알았는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전세계 아이들의

놀이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언제나 나의 소박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NHK프로그램

치코짱에게 혼난다에서 보고 알게 됐다.



일본에서는 전국에서 거의 다루마상가 고론다로 놀이구호가 정해져 있지만 지역에 따라서 조금 다른데

오사카지역에서는 ぼうさんがへをこいた (보우상가 헤오 코이타) 스님이 방귀를 뀌었다. 라는

변형된 말로 놀이를 하고,  40년 전 쯤 和歌山市(와카야마시) 에서는 へいたいさんがとおる

(헤이타이상가 토오루) 군인이 지나간다라고 하며 놀았다고 한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달마씨가 넘어지든, 군인이 지나가든, 스님이 방귀를 뀌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엇이 됐건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10글자라는것이다.


아이들은 1부터 10까지 세면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숫자로 표현할 때보다 문자로 10글자를

만들어서 노는 것이 놀이가 더욱 재미있어지기 때문에 만들어진것이 

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 (10글자)

 ぼうさんがへをこいた (10글자)

 へいたいさんがとおる (10글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10글자)가 된 것이다.


1부터 10까지 대신으로 문자를 만들어서 놀던 우리나라와 일본과는 다르게

이탈리아에서는 1,2,3 별

프랑스에서는 1,2,3 태양

벨기에에서는 1,2,3 피아노 하고 놀았다니 어쨌든 아이들 놀이에는 뭔가 규칙이 있는 건 맞다.


내가 알게 된 소박한 지식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지금 놀이처럼 문장을 만들어서 놀 수 있다는 것과

글자 수가 열글자가 될 때 더욱 재미있어진다는 것도 알려주었더니

나름 열글자의 문장을 만들어서 놀이를 하거나

유럽의 아이들처럼 1,2,3, 다음에 넣고 싶은 단어를 넣어서 놀 수 있다고 했더니

1,2,3, 책상 , 1,2,3, 의자 

교실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1,2,3 다음에 소환돼서 붙는 정신없는 단어 소환이 시작됐다.


명절에 아버지 산소를 갈  때면 어렸을 때 살았던 그 집 앞을 지나간다.

우물은 진즉 없어졌을테고, 앵두나무도 그대로 컸더라면 엄청 나게 컸을텐데

담 위로 솟은 나무가 안보였던게 아마 없어진것같다.


그 집에서 오손도손 살았던 우리 오 남매는 모두 중년이 되었고

아버지는 그나마 돌아가셨다.


무궁화 꽃이 담을 이루던 뒷집 할머니 댁 가는 길은 무궁화 꽃들도 없어졌지만

그 집에 살던 분들 모두 돌아가셨다.


아이들은 아직도 단어를 만들어서 열심히 놀이를 궁리하지만

나의 무궁화 꽃은 다 져버린것같아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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