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나 혼자 살았다. in kyoto

살아보니 혼자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홀가분하고 좋을 것 같아도 나 혼자 살면서 새털 같았던 가벼움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오히려 무거웠다.

결혼 전 5형제였고 결혼 후 시댁에는 4형제 그리고 우리 집 직계 아이들 3형제

내 주위의 사람 숫자가 3 이하로 떨어졌던 적은 1994년 결혼해서 남편과 둘이었던 1994-1995

잠시 1년뿐이었다.


2018년 4월 5일 혼자가 되었다.


새벽에 아이들 간식 차리지 않았도 되고 밤중에 은진이 데리러 서초동에 가지 않아도 되고 일 년 동안은 시댁의 크고 작은 행사에 공결처리를 받아서 내 인생은 "홀 가 분" 세 음절로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내 것이 되니 상상했던 그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음을 바로 알아버렸다.


"부부의 세계"에서 이태오 써 글 놈이 김희애에게 한 말이 딱 맞는 말이다.

막생 해 보니 그 결혼도 별로더라 (바람피운 여자랑 결혼한 게 자기 생각만큼 좋지는 않더라는)

갖고 싶고 누리고 싶었던 것들이 막상 내 것이 되었을 때 상상만큼 그게 좋지는 않더라는 게 공감이 되는 얘기


여행도 가기 전, 가방 쌀 때가 더 좋듯이 나도 그랬다.

뭐가 그렇게 좋은 지 남편은 웃으면서 교토역 안으로 사라졌고 나는 얻어놓은 원룸으로 바로 돌아가기가

싫어서 교토 역 바로 앞 요도바시 카메라 빌딩 테라스에서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일본 자취 생활에 필요한 살림살이는 남편이 부지런히 사다 날라놓고 갔기 때문에 집에 돌아가서 밥도

해 먹을 수 있었지만 "히가시야마 시라 카와 쵸 아미니티 맨션" 내 방에 맘을 붙이지 못하고 밖에서 헤매는

나는 야 "오십 넘은 비행 아줌마"


시차는 없지만 일본이 한국보다 해가 짧으니 여섯 시 넘어가면 바로 추워진다.

낮에는 덥고 해 넘어가면 싸하고 추운 봄 날이었다.


전기담요를 챙겨 오지 않아서 잘 때는 추웠고 춥다고 벽에 있는 히터를 켜면 곧바로 건조해져서 끄게 되는,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난방시스템이 원망스럽고 집에 두고 온 전기장판이 한 끼 밥보다 아쉬웠지만

온갖 가전제품 다 모여져 있던 요도바시 가전제품 코너에도 전기담요는 없었다.

계절상품이라 이미 들어가 버린 것


가뜩이나 어깨가 아파 춥게 자면 어깨가 빠지직 거리는 것처럼 아팠는데 집에 두고 온 내 전기담요

어쩔 것이여!

사계절을 끼고 일본으로 가는 사람들이라면 전기담요는 필히 한국에서 가지고 갈 것을 권하고 싶다.

4월이면 필요 없을 줄 알았는데 햇빛이 들지 않고 바닥난방이 되어 있지 않았던 내가 살 던 집에서 전기담요는

5월까지 필수템이었다.


오전에 교토역에서 헤어진 남편이 수원 집으로 들어가고도 남았을 오후 시간이 되어서야

교토역 앞 버스 정류장 D2 구간에서 206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치온인 마에" 정류장에서 내려 맨션까지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버스세권옆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

"보로니아" 빵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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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빵집이 많은 우리나라와 달리 교토의 빵집은 개인이 하는 역사가 오래 된 노포(老鋪)가 많았다.

보로니아도 그런 빵집 중 하나였지만 그때는 저곳이 그렇게 유명한 빵집인줄도 몰랐다.


석달동안 시급은 860엔 석달후에는 900엔이었고 빵을 포장해야 된다고 써 있어서 빵집 일이 힘들면

뭐 얼마나 힘들겠어, 빵은 실컷 먹겠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알바하면 좋겠다싶어서 지원해보기로 했다.


입학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스케쥴이 어떻게 될 지도 몰랐으면서 얼른 지원해서 저기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내가 마음붙일 곳이 필요해서였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빵집에서 일하는 바쁜 생활을 하다보면 교토에 맘 붙이고 지낼 만 하겠지 싶었다.

이십 사년 동안 가족과 함께 지내다 혼자서 지내야 되는 생활이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간 지 여섯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금방 알아버린 것이다

.

빵집에 아르바이트 원서를 내자.

"빵집일이 얼마나 힘들겠어,빵은 실컷 먹겠지"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는 걸 아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빵은 버터냄새 지겹게 먹을 수 있었고 일은 너무 힘들었다.


2018년 4월 6일 입학식을 하고 딱 열흘이 지난 4월 16일부터 빵집 앞치마가 유니폼이 되었다.

교토 보로니아 빵집 출하부 최초의 한국 아줌마 아르바이트생

모두가 나를 고상이라고 불렀다.

그래! 나 고상한 여자 고상이야, 나같은 캐릭터 처음이지


그렇게 나 혼자 사는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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