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가 어제로 11주기였다. 엄마는 11주기 제사를 지낸 후에 여러 가지를 정리해서 가족들에게 공표하셨으니 첫 번째는 앞으로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 명절에 지내는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는 말이었으므로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제사가 두 번 없어지는 것이었으니 올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두 번째는 당신 돌아가시면 아버지와 제사를 합쳐서 하나로 지내라고 하셨다. 이것도 올케 얼굴에 볼터치 효과를 불러왔고 마지막 말씀은, 지금은 큰집 선산에 있는 아버지를 시립 납골당으로 모셔와서 앞으로 당신 자손들이 벌초하러 다니는 일은 없게 하겠다, 선포를 하셨다.
엄마의 생각은 멋졌고 앞으로 제사를 모셔야 될 일이 있는 남의 집 큰며느리인 나에게도 파급 효과를 주었으니 앞으로 나도 명절 차례는 지내지 않고 돌아가신 다음 기제사만 잘 지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말씀이 그랬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꿈을 세 번 꾸었는데 처음에는 선명하더니 두 번째 세 번째 꿈에서는 흐릿했고 이제는 꿈도 안 꾸더라고 하셨다. 엄마 말씀이, 10년이 지나니 무엇이든 흐려지더라 그러니 기제사만 잘 지내고 명절 차례 안 지내도 섭섭할 일이 아니라고 아버지에게 알아듣게 말씀하셨다고 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알아들었어도 그만, 수긍 못 하신다고 해도 그만일 일, 돌아가신 분이 무엇을 알겠는가
그저 제사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잔칫날이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때 내가 큰엄마에게 따지면서 한 말 중 하나가 음식도 많이 만들고 먹을 것도 많은 제사가 왜 큰집에만 있고 우리 집에는 없냐고 했다는 것이다. 작은 집인 우리 집에는 당연히 제사가 없었고 줄줄이 제사가 달마다 늘어져있던 큰엄마는 어린 조카딸이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말 같지도 않았을지 지금은 구십이 다 된 큰엄마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일이다.
일본에서는 제사를 매년 지내지 않고 1주기, 3주기, 7주기, 13주기, 17주기, 23주기, 27주기, 33주기의 순으로 지내며 일반적으로는 33주기가 무죄방면이 된다고 해서 마지막 제사로 지내는 관습이 있다.
그것도 집에서 지내는 제사가 아니라 절에서 친척들이 모여서 지내고 끝내는 식이니 우리나라 제사처럼 여자들이 많이 힘들일은 없으니 그런 면에서는 일본의 제사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도 33주기 제사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나의 33번째 기일에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주기 바란다, 오전 0시부터 동이 트기 전까지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 창구가 부활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잡화점에 상담을 하고 답장을 받은 분들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그 답장은 당신 인생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그때처럼 가게 셔터의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주십시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일본에서의 33주기는 무죄방면으로 완전한 세상으로 떠나는 이승에 머무는 마지막 시간이라서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가 33번째 기일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33주기라고 해도 일 년에 한차례 씩 서른세 번이 아니라 1,3,7...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 제사가 8번째일 때 33주기이니 지내줄 만한 제사일 것도 같다.
엄마의 명절 차례 없애기와 납골당에 모셔라의 선언은 앞으로 엄마보다는 더 살게 될 우리들에게 숙제를 덜어준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아버지의 제사는 아직 현재 진행형. 11주기 제사는 끝났지만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제사 후 엄마가 보여 준 아버지의 애니콜 전화기. 막내 여동생 말이 그렇게 아버지 욕을 하면서도 어디선가 아버지 물건을 가지고 있다 보여준다는 엄마가 우리들에게는 이해 안 되는 구석이 있지만 그러니까 부부였겠지 싶다.
충전해서 들여다보고 싶은 아버지의 애니콜, 아버지 잘 계시죠? 벌써 11년이 지나갔어요. 살아계실 때 함께 여행 한 번 못 한 게 너무 후회되고 말대꾸하지 않고 아버지한테 살갑게 해 드릴걸, 노란색 커피 믹스에 물도 많이 안 붓고 맛있게 타 드릴걸, 우리 큰 딸이 타 주는 커피는 맛없다며 웃으실 때 짜증 내지 말걸 그랬어요.
살아계실 때는 짜증만 냈었던 아버지, 돌아가시니 후회만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