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어디서든 밥값은 번다.

2018년도에 보로니아의 활황세가 일본의 무서운 여름 더위에 주춤해서 갑자기 할 일이 줄어든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된 건 나처럼 4시간 단기 알바를 하는 인력들이었다.

빵 소비 일본 1위인 교토의 사람들이 빵 먹기도 싫을 만큼 더위는 입맛을 뺏어간 것이다.


반면, 맥주는 내가 봐도 잘 팔렸다.

나만해도 여섯 시에 알바가 끝나면 호로요이를 한 캔 사들고 집에 들어가는 게 저녁 장보기 필수코스였으니 원래 일본인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기간 한정이나 계절 한정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 일본 상품들 속에서 맥주도 계절 한정이라는 문구를 캔 위에

새기고 출시되는 제품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의 심리상 계절 한정이라는 데 저건 좀 마셔줘야 되는 게 아닌가 싶은 맥주들이 늘 진열대에 있었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 수입이 줄었지만 먹고 싶은 건 못 참는 나, 오늘은 기간 한정 호로요이 수박 캔을

내일은 기간 한정 호로요이 키위 캔을, 에에 까짓 껏! 한 캔에 100엔인데 이걸 하나 못 사 마시나

욱하는 마음으로 하루에 한 캔씩 착실하게 일본 맥주를 소비하며 알바 춘궁기를 보냈다.


일본인들의 맥주사랑은 여름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어머니의 날이나 아버지의 날 등 무슨 날이라고

이름 붙여진 날이면 묶음으로 사서 보내는 사람들이 많고, 물론 빵도 그런 품목 중에 하나였지만 여름이 되면서 빵은 잠시 시들해진 것이다.

우리도 여름을 타면 입맛이 없어지듯이 만국 불변의 진리가 빵 매출을 떨어뜨린 것이다.


빵집에 불난 것처럼 바쁘다가 갑자기 한가해지자 처음에는 대청소를 시키다가 그것도 밑천이 떨어지니 교대로 쉬는 수밖에 없었다.

주로 上沙(카미스나)상과 北村(키타무라)상, 그리고 高상인 나, 이렇게 셋은 번갈아가면서 4시간 일을

두 시간으로 줄여서 일하거나 아니면 내일은 안 나오셔도 됩니다라고 들었다.

그전에 일이 너무 많았을 때는 끝나는 시간에 퇴근도 못하고 잔업수당도 없이 일 시켜먹더니, 일이 없어졌다고 얄짤없이 들어가라고 하는 이 무슨 개 같은 경우냐 싶었지만 돈을 주는 고용주 甲의 입장에서는 일이 없는데

할일없이 알바시간 채우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있어도 크게 도움이 안 되는 네 시간 알바들이 빠져주는 게

맞기는 했다.


하지만, 빵 자르기의 달인인 半海(한카이)상이나 高橋(타카 하세)상처럼 꼭 필요한 인력은 잠시의

불황에도 살아남아 여전히 열심히 빵을 자르고 택배 포장을 했기 때문에 불황은 그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들은 보로니아 출하부의 철밥통 시스터즈였기 때문에 우리처럼 네 시간 알바들과는 체급이 달랐다.


어디서든 필수 인력이 되어야만 자신의 밥그릇이 보장이 된다는 걸 일본에서 다시 확인한 셈이다.

한국에서도 비정규직 인생이었고, 일본에서는 더욱더 격하게 비정규직 인생이었다.

누구를 탓하랴, 내 돈 내산이 아니라, 자 업자득인 걸을-.-



하지만!! 동네의 작은 가게에 조차 아르바이트 모집이라는 종이가 붙여져 있던 교토는 경기가

좋은 게 분명했다.

살던 곳에서 오분 정도 떨어진 기온 거리를 나가보면 외국인과 내국인이 섞여 총총 걸어가기가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으니 상가는 어느 곳이나 사람이 많았고, 일 할 사람은 부족했다.

같은 반이었던 중국 남자애들 몇몇은 내가 아무리 귀를 기울여서 들어봐도 저게 도대체 일본어란 말인가

의심이 드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런 애들 조차 기온 거리에 있는 유명한 장어덮밥집에서 써빙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본 손님보다 중국 손님이 훨씬 많고, 일본어보다 중국어가 더 필요하기 때문에 알바를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 장어집에서 일했던 내 짝꿍이었던 중국인 쵸우상에게 한국 손님이 왔을 때

"어서 오세요"라고 하면 너는 아마 팁도 받을 수 있을지 몰라 그니까 나랑 연습하자며 쉬는 시간마다

"어서 오세요"의 발음을 조교처럼 연습시키기도 했다.

한국 사람 , 중국 사람, 내국인 일본인 관광객, 외국인, 모두 교토로 몰려 실제로 교토 사람들은 버스 타는 데도

관광객에 밀려 탈 수가 없다며 민원이 들끓는 동네가 교토였다.

그러니 아르바이트 찾는 건 사실 한국에서보다 쉬운 곳이 교토였다.



그렇게 해서 찾은 곳이 집에서 걸어서 오분도 안 되는 대로변에 있던 Bamboo였다.

일본식 술집이었는데, 대나무 마디를 잘라서 술병으로 썼기 때문에 아마도 이름이 밤부가 아니었나 싶다.

밤부, 대나무 하면 교토 서쪽 외곽에 있는 아라시야마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000년 전 平安(헤이안) 시대 때 귀족들의 별장지로 선택되어 꾸준히 관리를 받았기 때문에 길도 정갈하고

하늘 높이 뻗은 대나무 군락은 촘촘했다.


D2btKhJKa83[1].jpg 아라시야마 대숲

대숲뿐 아니라 강까지 있어서 끼고 있어서 헤이안 시대에 아라시야마에 귀족들의 별장이 없다면

아마 어디 가서 나 귀족 입네 라고 명함도 못 내밀었을 것 같기도 하다.


"어이, 후지와라, 나는 이번에 아라시야마에 별장 하나 분양받았는데, 너도 이 참에 아라시야마에

별장 한 채 분양받지 그래"

헤이안 시대의 교토 귀족들은 아마도 아라시야마에 별장 한 채는 가지고 있어야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있는 것들은 그렇게, 더운 날은 시원한 곳에서 추운 날은 더운 곳에서 보냈던 것이다.


다시 돌아와 , 밤부

밤부는 저렇게 굵은 대나무의 마디를 잘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손님이 일본 소주를 시키거나

금각이나 은각(일본술의 이름, 교토스러운 술 이름이었다)을 시키면 대통에 술을 따라서 내다 주었다.

보로니아 출하부의 일자리가 시급이 반토막 났어도 어쨌든 빵집과 밤부에서의 알바로 이른바

かけもち [掛(け)持ち] 카케 모치를 하게 되었다.


겸임이나 겸직이라는 명사지만 보통 아르바이트를 두 개 겹쳐서 하는 걸 카케 모치라고 한다.

스무 명이 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있던 밤부는 알바가 끝나면 요리사가 まかない [賄い] 마카나이라고 하는

식사를 차려줬고 마카나이를 먹는 시간까지 자기 알바 시간에 포함시켜주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네 시간 기본 알바에 마카나이를 먹는 시간이 20분이었다면 나는 그날 알바 시간이

네 시간 이 십 분인 셈이었다.

손님에게 나간 사시미를 뜨고 난 생선의 자투리 부분을 통째로 튀겨서 주는 생선대가리 튀김과 채소 샐러드가

마까나이의 주 메뉴였지만, 마까나이는 늘 기다려지는 식사였다.

알바를 고르는 기준중에 마까나이가 딸려 있는지, 아닌 지가 결정의 중요한 요인이 되는 아이들도 있을 만큼

일본 알바에서 마까나이는 시급만큼 중요한 덕목이었다.

찬바람이 불면서 보로니아의 매출도 다시 예전처럼 돌아왔고 어차피 유학생의 알바시간은 법적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밤부의 알바는 일주일에 두 번, 8시간을 지속했다.

교토의 전형적인 건축물 "장어의 침상"구조였던 밤부는 앞에서부터 뒷쪽까지가 기차 한량 정도의 길이처럼

길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었다.

그래서 주방도 입구 쪽 카운터 석에는 사장이 주로 요리를 하거나 접대를 했고 안에 있는 주방은 카츠상과

키무상 담당이었다.

김진이라는 재일교포였는데 할머니가 한국 사람이어서 金상도 교토 한국인 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둘이 있을 때는 간단한 한국말로 하고 싶어해서 한국말을 하기도 했지만 金상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누가 봐도 일본인이었다.



빵집 알바와는 다르게 식당이었기 때문에 손님이 한꺼번에 들이닥치거나 주문이 밀리면 머릿속이 꼬여서

힘들 때가 많았다.

알바 베테랑중에 한국 가수 나훈아를 닮은 일본인이 있었는데 그사람과 짝궁이 되어서 일을 하는 날은

나훈아가 항상 나를 보면서 "심호흡을 하라고" 호흡을 단전 아래로 내리는 흉내를 내면서 나를 진정시켰다.

셋을 낳을 때도 하지 못해본 라마즈호흡을 알바하면서 그렇게 했다.



덕분에, 한국에서 아이들이 놀러 오면 망설임없이 엔화를 은행처럼 내줄수 있는 엄마가 되어서 흐뭇했다.

그러고도 내가 벌어서 잘 먹고 독립적으로 살았으니 내 인생의 역사상 경제적인 독립의 역사가 있다면

2018년 4월부터 2019년 3월까지인 셈이다.


지금은 코로나19가 만들어 준 틈새의 일자리

초등학교에서 기초 학습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한글과 수학을 가르치는 기초학습 선생님으로 사개월

단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기역과 니은을 모르고 글씨를 읽을 줄 몰라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초등학교 일학년 이학년을 본 순간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부모의 무관심 아닌가 화가 났지만, 사개월 동안 까막눈 뜨고

광명을 찾을 수 있게 끔 내가 너희들의 엄마가 되어 주겠다.

우리집의 유승범, 일학년 때 받아쓰기 10전 10승의 화려한 승률을 가지고 있는 내가 아니던가!!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비록 빛나는 정규직 인생은 못되지만 이렇게라도 내 밥은 버는 여자다.




이전 02화part2. 아날로그的 행정과 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