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우리반 애들

사람과 사람들

2018,4월 학기 우리 반

16명이 한 클래쓰정원이었고 4명이 한국 사람, 1명은 말레이시아 토상 1명은 타이완 찐상

나머지 10명이 중국 학생들이었다.


첫 번째 짝꿍이 토상이었는데 처음 본 순간 "토가 나오게 못생겨서 이름이 토상이냐"라고 물어보고 싶었을

정도로 못생긴 말레이시아 아저씨였다.


"너는 토 나오게 못생겨서 토상"

"나는 고상하게 생겨서 고상"


선교사인 토상은 일본으로 발령이 난 거였고 사랑스러운 에츠코 짱의 아빠였다.

길에서 우연히 토상의 부인과 이제 막 갓난아기 때를 벗은 에츠코 짱을 본 적이 있는데

귀여운 아기라고 칭찬을 해줬다.


아기를 보고 귀엽다고 하면 그다지 예쁜 게 아니라는 걸 말레이시아 토상이 모르길 바라면서 "귀엽다 귀여워"를

반복해주고 우리 집 둘째의 어렸을 때를 떠올려봤다.


우리 둘째도 안 예쁜 아기 선발대회가 있었다면 진, 선, 미 중 하나는 받았을 정도로 안 예쁜 아기였었다.

지금은 너무나 예쁜 스물세 살이 되어서 몰라보게 변했지만 아기였을 때 우리 둘째를 친척들이 보면


1. 우선 둘째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2. 한참 만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3."이런 애가 나중에 예뻐져"


이런 식의 패턴이었다.


하지만 나는 토상의 딸 "에츠코 짱"을 보고 곧바로 "귀엽네 귀여워" 했으니 돌려서 말하는 사람은 못된다.


내가 본 우리 반 애들 중에서 가장 직설적이고 자기 화를 못 참는 사람은 중국 학생 '소상"이었다.


결석을 자주 하고 쉬는 시간만 되면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왔기 때문에 사진에는 없지만

비단장사 왕서방처럼 생겼던 소상이 작정하고 말대꾸를 했다 하면 일본 선생님들 화나게 하는 건

일도 아닐 만큼 사람 열 받게 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중국인이었다.


수업 시간에도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잠을 자던 소상을 선생님이 깨웠다고 소상이 일본 선생님한테

화를 버럭버럭 낸 적이 있었는데 그런 걸 보면서 소상이 한국사람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지만

어디나 말썽꾸러기, 꼴같잖은 아이들은 있기 마련이라 한국 아이 중에서도 결석이나 지각을

자주 하는 아이가 있었다.


우리 큰 애랑 동갑인 나이라서 잘해줘야지 싶었는데 잘해주고 싶어도 학교에 나와야 잘해주지

통 코빼기를 볼 수 없을 만큼 학교에 나오지를 않았다.

그런데 얘가 학교에 나온 날이면 1교시 끝난 후에 들어오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꼭 이유를 물으시는데

내가 들어도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게 나는 너무 싫고 창피했다.


선생님 "왜 늦었는지 이유를 말해보세요"

김 모군 "요리를 하다가 식용유를 흘렸는데 그걸 밟고 미끄러졌어요"

진짜일 수도 있지만 워낙에 선생님들 사이에서 신용을 잃었던 김 모 군은 식용유 밟고 넘어졌다고 하자 선생님이 다친 부위를 보여주라고 옷을 걷어보라고까지 했었다.


정말로 김 모 군이 식용유에 넘어졌는지 아니었는지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선생님이 오죽했으면 까진 곳이 어디냐고 증거를 보여달라고 조용히 화를 내면서 말씀하시는지 그 기분만큼은 알 것 같았다.


중국애들이 선생님께 대들거나 지각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은데 김 모 군이 그러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마음먹고 한 마디 해줬다.

"차라리 늦잠을 잤다고 해, 솔직하게 말하는 게 가장 나아, 그리고 어차피 공부하러 왔으면 열심히 해야지

앞으로 뭐 하려고 그러냐"

대한민국 대표 아줌마로서 한마디 해줬다.

우리 아들하고 같은 나이지만 김 모 군이 내 아들은 아니니 나도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지만

담임선생님인 미하라 요시코 선생님까지 더 이상은 봐줄 수가 없는 출결이라면서 상담이 필요하다고 했는데도 김 모 군은 여전히 결석이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모처럼 얼굴을 본 날 한마디 했더니


"어차피 저는 일본 여자 친구랑 결혼할 거고, 그럼 비자 문제 해결되니까 학교 출석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리고 아버지 회사 물려받으면 되니까 공부도 뭐 괜찮아요"


내가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 아들한테 물려줄 회사가 없는 남편이 너무 고마웠고 자기 용돈은

자기가 벌어서 쓰는 승범이가 너무 고마웠던 순간이었다.


내 아들 같았으면 등짝 스매싱을 날려 줄 판이었지만 남의 집 귀한 아들

맞아도 너네 엄마한테 제대로 맞아라 네 등짝은 패스


나도 김 모 군과 같은 시절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가끔 생각한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스무 살 때 알았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시간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는 걸 스무 살 때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오십이 넘어 교토에 와서 우리 엄마 말 대로 안 해도 될 생고생 아니 우리 엄마 말로는 개고생이라고 했던

교토 생활을 돌이켜보면 그래도 그런 개고생도 한 번은 해 볼만 했다 싶기는 하다.

인생은 퍼즐 같은 구석이 있어서 그때의 교토 생활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도 이어지는 생활들이 있었고

인생 중반기에 혼을 불살라가며 익힌 일본어가 점점 재미있어져서 지금도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공부가 좋아서 하는 미친 지경에 이르렀으니 제대로 된 미친 짓은

해 볼 만한 것이다.


가을 학기에 같은 반이 되었던 아이들

가을 학기에도 토상과는 한 반이 되어서 친한 친구가 되었고 내 생일에는 케이크까지 사줘서 나를 감동시켰다.


크리스마스에는 반 친구들을 초대해서 일본 전통 단독주택인 토상네 집에 가서 마루에서 덜덜 떨면서

만두전골을 먹고 왔다.



바닥난방이 안 되어 있는 토상집에서 잠바도 벗지 못하고 밥을 먹었다.

새로 지은 집들은 바닥난방이 되어 있지만 토상네 집처럼 오래된 일본 가옥은 바닥 난방이 안되어있어서

말을 하면 김 나올 정도로 춥다.


토 나오게 못 생겨서 토상이 아니라 인정이 넘치는 토상이었다.

다만 내가 토상을 처음 봤을 때 어딘가 모르게 이국스러움이 보이는 그의 얼굴이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에츠코도 아마 올 2월에는 동생을 봤을 것이다.

토상이 라인으로 자기 부인이 둘째를 가졌다고 소식을 알려왔다.


중국애들이 작정하고 떠들면 소음처럼 들리던 중국말도 내 뒤에 보이는 "난까" 여사가 말을 하면

굉장히 고급스럽게 들렸었다.


일본어의 なんか(난까)를 말머리에 붙이고 시작하는 것 때문에 내가 난까 여사라고 불렀다.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이고 얼굴도 중국 여배우처럼 생겨서 졸업식 답사까지 했던 난까 여사에게

"내가 중국어를 몰라도 어쩐지 너의 중국말 발음은 다른 아이들하고 다른 것처럼 들려"라고 했더니

자기는 상하이 출신이긴 하지만 표준어를 쓰고 있고 다른 아이들은 시골 출신이라서 대부분 사투리를 쓰는 거라

아마 그렇게 들렸을 거라면서, 자기도 사실은 같은 반의 중국 친구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말도 있다고 했다.


바로 뒤에 있는 찐상은 대만의 동막골같은 곳에서 유학을 온 동막골 처녀다.

자기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저녁 7시면 동네의 전기가 다 꺼지는 완전 시골 동네였다고 해서

지금은 몇시에 꺼지냐고 물었더니 9시쯤이라고 두시간 늘어났다고 해서 우리반 아이들을 웃겨주었던

순박한 찐상

아마 오사카에 있는 대학의 비서학과에 진학했을것이다.


그 뒤에 있는 쵸상은 교토부립대학교에 진학을 했다.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아이였지만 어딜 가든지 자기 밥값은 하면서 살 아이로 보였다.


작은 교실에 모여서 말도 안되는 일본어로 서로 떠들면서 웃고 싸우기도 했던 1년

지금은 볼 수 없는 저 아이들이 조금은 보고 싶다.


저 아이들도 가끔은 내 생각을 하겠지

샌드위치를 싸와서 나누어 주던, 한국의 아줌마

고상했던 고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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