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보로니야
후지모토 아줌마가 처음에 일을 가르칠 때 숫자를 세어보라고 했었다.
아줌마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숫자를 제대로 세었고 아줌마는 만족한 듯이 웃었지만 뭐랄까
자존심이 팍 상하는 순간이었다.
나를 숫자도 못 세는 사람으로, 빙다리 핫바지 취급하나 싶어서 기분이 아주 나빴지만
개수대로 빵을 포장하고 넣어야 되는 작업을 해야 되는 출하부의 일이라는 게 숫자가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리고 유통기한 때문에 날짜도 중요하고, 어쨌든 빵집 출하부는 숫자와의 싸움이었다.
그러니 후지모토 아줌마의 입장에서는 한국 아줌마니까 혹시 잘 모를까 봐 숫자 세보라고 한 것인데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맘 상해한 것이다.
일에 있어서는 칼 같은 면이 있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실수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실수를 하면
그것은 개인의 실수가 아닌 회사의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쨌거나 그들의 입장에서
실수는 절대로, 네버, 젯따니이 있어서는 안 됨.
그러니 한국 아줌마를 데리고 일해야 되는 빵집 아줌마들 입장에서는 하마다상이 나를 무슨 경로로 뽑았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일해야 되는 자기들과의 호흡이 중요했던 것이다.
호흡!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기서 일본인들의 호흡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봤을 때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들도 꼭 둘이서 짝을 이뤄서 하면서 물건을 들 때마다
"せえの" - 세에노 - 영차 같은 구령어 "よいさ" - 요이사를 늘 합창처럼 반복했다.
물건을 나르거나 들때면 언제나 둘이서 "세에노" 하길래 아주 무거운 것들을 드느라 그런 줄 알았는데
내가 들어 봤더니 가벼운 상자도 그렇게 둘이서 영차영차 하면서 들었던 것이다.
어느 날 후지모토 아줌마와 타카하세상, 둘이서 세에노, 요이사 하면서 들길래 내가 일을 도와주려고
그걸 혼자 들었더니 아줌마들이 난리가 났다.
"무거운데 어떻게 혼자서 드냐고, 고상은 대단히 힘이 장사라면서"
천하장사 만만세 노래라도 부를 아줌마들의 기세였다.
그래서 "내가 힘이 센게 아니고 당신들이 호들갑스럽고 진짜 이상한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내가 힘이 센 걸로 넘어갔다.
연년생 키우면서 둘째는 뒤에 업고 동시에 셋째는 안아 키웠으니 그래 내가 당신들보다 힘이 센 걸로 합시다!!
물론 이후로도 아줌마들은 늘 둘이서 짝을 이뤄 "세에노 요이사"의 구령과 함께 였다.
일본인들의 일처리 방식인 협동의 호흡은 내 눈에만 이상했던 것은 아니었던것이
지인인 일본의 고등학교 교사 에츠코상이 "일본사람들은 언제나 세에노,요이사하면서 일을 해요.
사실은 그다지 무겁지 않은 것도 그렇게 둘이서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면서 웃었던 적이 있다.
유치원의 운동회등을 할 때도 개인간의 경쟁에서 이기는 게임을 하면서 박수를 치는게 아니라
아이들이 협동해서 무언가를 해냈을때 엄마들이 울면서 박수를 치거나 한다며 일본에서 아들을 유치원에
보냈었던 딸의 친구 엄마에게서도 들었었다.
이들에게 중요한것은 협동이다.
어디 "せえの" 세에노 "よいさ" 요이사뿐이었을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본에서 지내면서 나는 평생 해야 될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 소리를 다 한 것 같다.
좁은 곳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서로 스칠 일이 많았는데 옷깃만 스쳐도 어찌나 쓰미마셍을 하는지
우리나라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고 일본은 옷깃만 스쳐도 쓰미마셍이다.
뒤로 지나가면 뒤로 간다고 미안하다고 하고 먼저 퇴근하는 사람은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하고
점심 먹으러 먼저 나가서 미안하다고 하고, 어떤 때는 둘이 동시에 쓰미마셍을 외치고 그게 웃겨서
서로 마주 보고 쓰미마셍하면서 웃을 때도 많았다.
그들의 일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처음에는 영혼없는 쓰미마셍의 아무말 대잔치 같아보여서
하기 싫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일에 있어서 반드시 해야 하는 말처럼 각인이 되어졌다.
작업장은 좁고 빵이 담긴 카트는 사람 수보다 많아 늘 비좁은 곳이어서 일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장어의 잠자리"라고 불릴 정도로 폭이 좁고 깊숙한 통로의 가옥을 상가로 리노베이션시킨듯한
작업장은 폭이 좁고 긴 건물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교토의 오래된 상가들은 폭은 좁고 뒤로 기차처럼 길게 뻗어 있던 주택을 상가로 리노베이션 해서 쓰는 곳들이 많아서 "장어의 잠자리"라는 표현이 딱이다.
여름 지나서 일을 했던 "밤부"라는 일본식 식당의 경우에도 입구의 폭은 좁고 뒤로는 길어서
역대급 "장어의 침상"이었다.
옛날 교토에서는 가옥의 입구에 대응하여 세금을 징수하였고, 높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도록
가능한 한 입구를 좁고 안쪽을 넓게 하는 건축으로 했기 때문에 그러한 건축물들이 밤부식당으로도 되고
빵집 가게로도 바뀌어서 폭이 좁고 안으로 긴 상가들이 된 것이다.
호기심 많고 새로운 것에 두려움이 없는 나는 그런 풍경들이 재미있었다.
외로울 때도 있었고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마음이 슬펐던 적도 있었지만 낯선 골목에 들어서서
일본스러운 풍경을 보게 되면 마음이 두근두근했었다.
어쩌면 그런 마음이 나를 버티게 해 주었을 것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가 일본맞다.
비슷한것 같아도 지내면 지낼수록 많이 다름을 알았다.
교토의 버스에서는 내려야 될 정류장이 가까워 와도 미리 일어서서 준비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만 일본 버스에서 엉덩이가 들썩거려 먼저 일어나면 기사 아저씨가 위험하니까 앉으라고 했었다.
그렇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서 목적지에서 버스가 완전히 멈춘 후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지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일본에서는 그렇게 해야 되니 그걸 지켰고 지금은 먼저 일어나서 준비하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다.
누가 옳고 누가 틀리다가 아니라 그냥 서로 다른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에서 3년정도 산 적이 있는 미하라 선생님은 대학생이 된 딸이 세살이었을 때 서울에 살았었는데
아이를 안고 지하철에 타면 사람들이 자기를 끌어서 빈 자리에 앉혀서 깜짝 놀랐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르는 사람이 자기를 끌어다 빈 자리에 앉히는 일은 일본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수업시간에 미하라 선생님으로 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황스럽기는 해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 걸 보면 나는 한국사람 맞고, 3년 살고 났더니 오히려 한국의 그런 정서가 좋아졌다고 하는
미하라 선생님도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것들이 있어서 불편하기도 했고 재미있기도 했다.
이해하려면 못 할 것도 없고 오해하려면 한도 끝도 없는게 관계인것이고
불편한 관계인 일본속에서 혼자 살았지만 나는 언제나 재미있고 유쾌한 한국 아줌마였고
숫자를 세는 걸로 시작해서 가끔은 빵집 아줌마들에게 일본 역사에 대해서 강의를 해주던
설민석 아줌마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