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일본=迷惑をかけるな

“메이와쿠오 가케루나(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

2019년 7월 18일 교토시 후시미 구에서 일어났던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사건이 1주기가 되어오자

NHK방송에서는 남겨진 유족들을 찾아가서 가족들의 모습을 방송으로 보여주었다.

事件の涙 (사건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부제로는 そこにあなたがいない(거기에 당신이 없다)

프로그램의 내용을 떠나서 프로그램의 부제가 이미 모든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다.


사건 사고로 인해 남겨진 가족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취재해서 다시 보여주는 방송이 우리나라에도

있기 때문에 방송 기획이나 프로그램의 흐름은 미리 짐작이 되는 것들이 있다.

남겨진 가족들은 시간이 얼마가 흘렀건 여전히 가족을 그리워하며 우는 장면이 나오고

볼 수 없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게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이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이 되지만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은 좀 다르다.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사건으로, 그려진 만화에 색을 입히는 작업을 했던 "사치에"라는 장녀를

잃은 아버지와 만화 감독이었던 장남을 잃은 노부부가 프로그램에 나왔다.

남의 나라 일이었지만 잠시 내가 지냈던 곳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라서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사건은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사건이 있은 직후 교토에 있는 지인에게 라인으로 안부를 물었더니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서도

불길이 보여서 거의 패닉 상태였었다며 36명이나 죽었던 방화 사건에 대해서 교토는 충격 상태라고 했었다.


젊은 사람들만 죽은 게 아니었다.

"사건의 눈물" - 거기에 당신이 없다"에 출연했던 두 가족의 희생자는 마흔이 넘은 자식들이었다.

만화에 색칠을 하는 작업을 했던 사치에 상의 아버지는 일흔을 넘기셨고 감독 아들을 둔 노부부는

팔십에 가까웠다.


눈물이 더 많을 나이라고, 눈물로 자식의 부재를 그리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좀 달랐다.

슬픔에 대처하는 이 사람들의 태도는 우리와 좀 다른 데가 있었다.

삼십 분 남짓 진행되는 프로그램 내내 두 가족이 보이는 눈물은 손수건으로 잠시 눈가를 찍어내는 정도였고

소리 내서 운다거나 목소리를 높여서 자기 자식을 그리워하는 슬픔의 자극적인 장면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장녀를 잃은 아버지는 딸이 남긴 유품을 정리했다.

그중에는 딸이 색칠한 만화의 유작들도 있었으나 아버지는 그것조차 모두 버렸다.

오히려 촬영을 하는 사람이 이것도 버리시나요 라고 물었지만 오히려 딸을 더욱 생각나게 하는 물건이니

이런 것은 유품이라고 할 수 없다며 담담하게 딸의 물건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딸이 생각나면 그때마다 딸이 있는 묘지에 가서 비석을 물로 씻어주고 제단을 깨끗이 정리하고 돌아오는

일만 하시면서 조용히 딸을 그리워했다.

한 번쯤 "왜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 내 딸에게 일어났느냐고"소리를 지르고 울 법도 한 데 조용히

자기 앞에 닥친 슬픔을 받아들이고 정리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만화 감독이었던 장남을 잃은 노부부는 활짝 웃고 있는 장남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아들을 그리워했다.

죽음 당시 화재로 인한 손상이 컸기 때문에 마지막 모습은 안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경찰의 충고를 받아들여

장남의 마지막 모습을 안 보고 장례를 치른 것이 이제와서는 후회가 된다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그 말에 수긍을 해서 그렇게 하였으나 역시 부모였기 때문에 그 모습까지도 봤어야 했다

마지막 모습을 안 봤기 때문에 영정사진 속에서 저렇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다시 돌아올 것만 같지 죽은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서 제대로 된 이별을 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부모의 회환 같은 것이 있다는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의 날에 장미화분을 보내주던 자상한 장남의 죽음 앞에서 노부부는 크게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죽었지만 아들이 보내줬던 장미 화분에는 올 해도 이렇게 예쁘게 장미가 피었다며 베란다에 있는

장미 화분에 물을 주는 할아버지는 흐트러짐이 없이 반듯했다.

슬픔은 내면에 가둬두고 현실을 직시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범인이 검거되고 화상 치료가 끝나는 대로 조사에 들어갈 것이라는 신문 기사를 열심히 보면서

재판이 시작되면 참석해서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지켜보아야 된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장녀를 잃은 아버지나 장남을 잃은 노부부나 큰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손수건으로 눈물 한 번

찍어 내는 정도로 슬픔을 표현했다.

감정도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기 때문에 재난재해를 입은 지역에서도 일본인들은 크게 자기감정을 드러내서

울거나 큰 소리를 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울기 시작하면 옆 사람도 울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메이와쿠 즉 민폐가 되기 때문에 자기감정을 자제할 줄 알아야 되고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迷惑をかけるな(메이와쿠오 카케루나) 이 문장이 일본인의

국민성을 대변하고 있는 말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이 왜 일본은 우리나라에게 끼친 민폐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는가

자기 것도 아닌 것을 지금까지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독도에 대한 행위만 보더라도 충분히 민폐를 끼치는

행동인데 유치원 때부터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우리나라에게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민폐를 끼치고 있는 이 행동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은 자기 나라안에서만 그러지 말라는 것이고 자기 울타리가 아닌 곳에서는

그 말이 의미가 없어진다.


일본인들의 섬(島)이라는 한자를 읽는 방식만 보더라도 일본이 다른 나라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들의 세계관이 나타난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에 딸린 부속도서는 섬을 (島) とう (토우)라고 읽지 않고 しま(시마)라고 읽는다.

즉 똑같은 섬이라고 해도 그것이 내 것일 때는 토우가 아니고 시마가 되는 것이다.

섬을 남의 것은 토우 내것은 시마로 정확하게 구분을 짓는 것이다.

독도를 타케시마라고 읽는 일본인들을 보면 독도를 자기 나라 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읽는 법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를 볼 때 그것만으로도 세상에 더 없는

나쁜 민폐를 끼치는 것이지만 어쨌든 일본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만큼은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교육을

유치원 다닐 때부터 선생님과 부모들에게 듣고 자란다.


어느 한국 주재원의 아이가 일본 보육원에 입학해서 가장 먼저 배운 말이 じゅんばん(쥰반, 순서, 차례)라는

말이었다고 했다.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나도 힘들고 상대방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재난이 많은 나라에서는 조용히 순서를

지키면서 내 차례를 기다려야만 나도 살고 남도 사는 길이 되는 것이다.


나 먼저 달라고 소리 지르지 않고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기다리는 것을 어려서부터 배워왔기 때문에

큰 슬픔 앞에서도 일본인들은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소리 내서 울거나 감정을 가둬두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자상한 장남을 읽은 노부부가, 장녀를 잃은 늙은 아버지가 슬프지 않아서 큰 소리로 울지 않은 게 아니다.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고 자랐기 때문에 감정 표현에서조차 드러내는 순간,

민폐를 끼치는 게 되기 때문에 감정의 억제선이 발휘된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지만 일본은 우는 아이에게

迷惑をかけるな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가르친다.


만일 지진으로 집을 잃은 상황에서 아이가 떡 먹고 싶다고 울면 옆에 있는 아이도 먹고 싶어 질 것이고

그런 상황 자체가 우리 아이가 남의 아이에게 폐를 끼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니

일본인들의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교육은 재난재해가 많은 나라에서 서로가 함께 살기 위한

정신줄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놀라울만치 차분한 감정의 억제선은 그들에게

그대로 사는 법이 되어 주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일본인들의 메이와쿠 카케루나의 정신이 일본열도안에서만 이루어질게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는 글로벌한 의미의 메이와쿠 카케루나의 정신이 되었으면 하는 그 점이 아쉬울 뿐

독도는 독도이지 타케시마가 아니고 우리 땅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일본의 메이와쿠 카케루나는 진정성이 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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