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지진이 있었고 9월 초에는 태풍이 지나갔다.
잠시 소강상태였던 틈을 타서 집 근처 맥도널드로 가면서 찍었던 사진이다.
사진으로 보니 "태풍의 추억"이지만 지진보다 더 무섭다고 느꼈던 태풍이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학교는 휴강을 하지 않았지만 태풍이 온다고 했을 때는 휴강이었다.
지하철이 일찍 끊기거나 다니지 않기 때문에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비행기는 다녔지만 태풍이 있었을 때는 칸사이 국제공항이 폐쇄되었었다.
공항이 침수가 되었었고 오사카 시내와 공항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태풍으로 떠내려간 선박에 의해서 교각의
한 구간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진의 추억은 여진으로 남았지만 태풍은 정전이 손님처럼 찾아왔다.
학교가 휴강을 해서 늘 하던 알바를 먼 곳에서 오던 타카 하세 상과 바꿔서 한 다음 집에 와서 쉬고 있을 때
교토 하늘 바로 위를 지나가는 것처럼 무섭게 불던 태풍의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를 마치 지진이 난 것은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 있을 때 탁 하고 불이 나가 버렸다.
손전등 하나 없는 깜깜함보다 무서운 것은 침묵이었다.
지진이 났을 때도 내가 무서웠던 것은 일본 사람들의 침묵이었었다.
분명히 큰일이 났는데 누구 한 사람 소리를 지르지 않았던 무서운 침묵 속에서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고 집에서
뛰쳐 나오시는 걸 보고 안심이 되었던 때처럼
"불이 나갔다. 정전이다"
누가 큰 소리로 말이라도 해 준다면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을 텐데 비바람이 치는 소리,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
땅이 흔들리는 듯한 자연재해의 무서운 소리만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그 순간이 무서웠다.
지진, 번개, 화재, 아버지(지신, 카미나리, 카지, 오야지)
일본인들이 전통적으로 무서워하는 네 가지의 것들이다.
셋은 자연재해이고 하나는 사람이지만 아버지가 무서웠던 세대는 쇼와(昭和) 시대 1926-1986 초기에
태어 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일 테고 누가 지금 아버지를 무서워하겠는가
헤이세이(平成 1989-2019)를 거쳐 레이와(令和 2019- )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아버지는
강아지보다 서열이 아래일 테니, 인간에게 두려운 것은 자연재해가 영원한 1위일 것이다.
정전을 피해서 걸어서 오분, 맥도널드로 피난을 갔을 때 2층까지 꽉 차 있던 사람들을 보면서
나만 겪고 있는 게 아니구나 안도감으로 그들과 함께 몇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
깜깜했던 골목이 한 집 두 집 불이 팍 팍 들어오던 순간을 봤었다.
칸사이 전력 차가 골목에서 나갔고 집들이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침묵 속에 엎드려 있던 소리들이 살아나서
들리기 시작했었다.
좀처럼 가정의 소리가 집 밖으로 들리지 않았던 골목이었지만 정전 후에 불이 들어오자
소리도 살아나서 밖으로 새어 나왔고 그들의 일본어가 내 마음에도 위로가 되어 주었다.
빵집도 정전 구역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일을 했냐고 다음날 출근해서 물었을 때
이치 모토 아줌마가 "헤드랜턴을 끼고 일 했는데 에어컨이 작동이 안 되어서 아주 더웠다"라고
웃으면서 말했었다.
갓 구워져 나온 빵들이 사람 수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작업장에는 외부로 나 있는 창문 한 개가 없는데
위생모를 쓰고 마스크를 낀 아줌마들이 헤드랜턴을 끼고 그 불빛에 의지해서 빵을 썰고 포장했다니
놀랍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지만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고 못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다.
빵을 주문한 사람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출하량은 반드시 지켜야 되고 정전이 되었다고 해서 그게
그날 일을 중단할 만큼의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묵묵히 일을 하는 것이다.
오히려 나에게 오전과 알바를 바꿨기 때문에 고상은 다행이었다며 오후에 일을 했던 자기들은
너무 힘들었다고 고상이라도 그런 불편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다.
よかった. (다행이야,잘됐다)라고 이치 모토 아줌마가 말했다.
나도 정전 때문에 무서워서 맥도널드에 갔었다고 말했더니 "かわいそうに" (아이고 불쌍해라)
그렇게 말해주셨다.
본인들도 불편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자기들은 함께 그걸 견뎌냈고 나는 외국에서 혼자 겪어낸 게
안됐고 가엾다는 진심 어린 걱정인 것이다.
누가 누구를 걱정해야 되는 지 모르겠지만 일단 걱정을 해주고 안타까워해주는게 자연재해를 겪을 때는
특히 더 한 것 같았다.
규슈 지방에서 기록적인 폭우로 주택이 침수되고 산사태가 일어나서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일본의 재난재해 기사가 실리면 기사 밑에 달리는 댓글들이 이런 식의 댓글들이 많이 있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게 더 큰 태풍이 지나가게 해 주세요"라든가
"더 큰 걸로 다 쓸어버려"
집을 떠나서 피난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본 정부는 임시 목욕탕을 설치해주는게
중요한 구호 활동중의 하나이다.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 목욕을 하고 잠이 드는 일본인들의 오래 된 목욕 문화로 인해
일본인들은 정전보다 힘든게 단수로 인해 씻지 못하는 불편인것이다.
5일동안 목욕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씻고 나왔으니 푹 잘수 있을 거라고 웃으면서 인터뷰하는 일본
할아버지를 봤다.
나도 2003년도에 제주도에 살았을 때 태풍 매미로 정전과 단수가 함께 와서 씻지 못 한 반나절을 보낸 후에
결국은 참지를 못하고 집에서 1킬로 정도 떨어져 있던 제주 경마장 농협 출장소 화장실에 가서 유치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던 셋째를 세수시키고 나도 간단히 씻고 돌아 온 적이 있었다.
쉬는 날이면 씻지 않고 잘도 보내지만 단수가 되면 설겆이도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하고 싶고
찰방찰방 물 튀겨 가면 걸레 빨아서 바닥도 닦고 싶은지,물을 쓰고싶은 그 마음이 간절했었다.
정전과 단수 둘 중 한가지 우선 필요하지 않은 걸 고르라고 한 다면 나는 정전을 고르겠지만
2018년 9월의 태풍은 무서웠고 정전도 무서웠었다.
재난재해는 일본뿐 아니라 우리도 겪는 일이고 불행은 누구에게나 일어날수 있는 일이니
무서운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댓글로 가라앉아 버리라고 저주를 퍼붓는 그 땅에 알고보면 그때의 나처럼 잠시 한국을 떠나서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사는 세 아이의 엄마가 또 있을테니
그리고 자기 보다 나를 더 걱정해주던 이치모토 아줌마가 있을테니
그리고 5일만에 목욕을 하게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하는 일본 할아버지가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