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보다 두려웠던 사람들의 무표정
2018년 6월 18일에 오사카 지진이 발생했다.
진도 6의 지진이었으니 약한 지진이 아니었다.
정해놓고 오전 8시면 집에서 나가는 내가 막 현관문을 열었을 때 누군가가 내 머리를 잡고 마고 흔드는 것 같은
엄청난 흔들림을 느꼈다.
그리고 그 흔들림 전에 나는 이상한 소리를 먼저 들었었다.
"우두두두두"
그것은 분명히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학습이 되지 않아 정체를 모르는 두려움의 소리, 번개가 치기 전 하늘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나듯
그런 류의 소리가 땅속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소리를 먼저 듣고 바로 이어 흔들림을 감지했다.
나가려고 열었던 현관문을 잡지 않으면 곧바로 쓰러질 것 같은 엄청난 흔들림이 몇 초 계속되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패닉 상태가 잠시 있었고 본능적으로 밖으로 나왔다.
"지진이구나"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들고 방금 전에 흔들렸던 거 그거 지진 아니었나요 라고 묻고 싶었다.
내 평생 그렇게 무섭고 오싹했던 몇 초의 순간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무슨 정신으로 뛰어나왔는지 모르게 밖으로 나오고서야, 아니 탈출하고서야
비로소 살았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집안에 있는 것보다는 밖이 더 안전하기 때문에 일단 밖으로 나와야 되는데
지진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우리 세대로서는 위기의 순간에 그런 판단도 서지 않았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나라별로 반응하는게 다르다는 유머같은 이야기가 있다.
미국인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고 일본인들도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지만 동시에 핸드폰을 집고
트위터를 남긴다. 그것도 과자를 먹으면서
살벌하게 무서웠던 몇 초의 순간을 경험하고 나왔지만 집 앞을 지나가는
여고생들의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가 살고 있던 맨션의 바로 옆에 여고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학교 가는 시간에 여고생들이 맨션앞으로
지나다니는데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폰만 쳐다보면서 걸어 가고 있었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동네는 조용했고 반찬 집의 달달한 간장 냄새도 그대로, 버스도 달리고 있었다.
멈춰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방금 겪었던 게 지진이 아니었나
지진을 겪었다면, 내가 겪었던 것이 지진이 맞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평온한 얼굴로 가던 길을 가고,버스는
길위를 달릴 수 가 없을 것 같은데, 더구나 가장 말이 많을 인생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여고생들이
저렇게 조용히 갈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모두들 핸드폰에 고개를 쳐 박고 조용히 걸어 가고 있었다.
학교로 걸어가면서 한국의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봤지만 아무리 실시간인 세상이라고 해도 아직 일본지진에
관해서는 기사가 없었다.
남편에게 보이스톡을 해봤지만 남편도 일본 지진에 대해서는 기사를 본 게 없다고 했다.
더 이상 땅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흔들림을 기억하는 머리와 몸은 두려웠고 말없이 걷는 사람들의
무표정은 더 두려웠다.
3분쯤 걸었을 까
일본의 오래 된 주택에서 할머니 한 분이 뛰어나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びっくりした" 깜짝놀랐어
분명 모두들 같은 종류의 난리를 겪었음에도 내가 길에서 본 어느 누구 한 명도 소리를 지르거나 지진에 대해서 입도 뻥끗하지 않고 있던 상황속에서 할머니의 깜짝 놀랐다는 외침은 이상하게도 나를 안심시켰다.
침묵을 깨는 할머니의 깜짝 놀랐다는 일본어의 외침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 말고도 두려움에 떠는 사람을 만났구나, 나만 무서웠던게 아니었구나 그런 마음이었을것이다.
하필이면 엄마와 막내 여동생이 교토에 왔다가 돌아가는 날 아침에 지진이 났다.
하루카를 타고 오사카로 들어가는 도중에 지진이 나서 하루카 열차는 멈췄고 대기중이라는 여동생의
카톡을 보고 나도 학교로 갔지만 시내를 다니는 전철도 이미 멈춰버려서 전철로 등교를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오지 못했고 학교에 온 학생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조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1교시는 수업도 하지 않고 뒤숭숭하게 지나갔다.
하루카는 잠시 움직이다가 멈추다가 결국 선로에서 멈춰서 엄마와 여동생은 걸어서 오사카의 어느 전철역까지 걸어가서 공항으로 갔다고 연락을 받았다.
지진이 났지만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다녔기 때문에 엄마와 여동생은 무사히 돌아갈 수가 있었다.
지진이 났는데 어쩜 아이들이 그렇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걸을 수 있는지 이상했다고
지인인 교토의 고등학교 선생님인 에츠코 선생님에게 물었더니 어차피 일본은 지진이 흔한 나라이고
지진이 일어나면 수업을 다 마치지 않고 일찍 돌려보내기 때문에 아이들은
"럭키" 라고 하면서 좋아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지진이 무서운 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여진은 밤에도 몇 번씩 있었고 잠을 자다가도 들들들 흔들리는 진동에 잠을 설치는 날들이 계속 되었다.
그때 겪었던 지진에 대한 공포심은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수업시간에 짝꿍이었던 쇼상이 다리를 떨기만해도
지진이 난 것은 아닌가하고 책상을 꽉 잡게 되었다.
쇼상이 다리를 떨어서 내 책상까지 흔들렸다는 걸 알고 다리떠는 거 그만 하라고 등짝을 때려줬다.
한국같았다면 모르는 사람들을 붙잡고서라도 방금전에 그거 지진 맞지요 그렇죠 했을 것을
모르는 척 하고 제 갈길을 가던 사람들의 무표정을 보면서 딱 그 말이 생각났다.
"나는 지진보다 너희들이 더 무서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