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신자의 첫 템플스테이
1. 순천 송광사로 템플 스테이를 다녀왔다.
천주교 신자로서 피정은 못 갈망정 템플스테이라니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혼자서 갖게 되는
미안한 마음 같은 게 없지는 않았지만, 생애 첫 템플스테이로 "송광사"를 택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2. 군산으로 이사 나오기 전까지 한 마을에 살았던 큰 집으로 매일 놀러 가던 게 내 일상이었다.
글씨를 막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법정스님을 알았다.
시골 큰집 큰 아버지의 작은 앉은뱅이책상에 꽂혀있었던 법정스님의 책들을 보면서
한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게 한글 깨치고는 법정스님을 읽었고, 고학년이 되면서는 언니들 방으로
옮겨가서 TV가이드와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었다.
덕분에 나는 시골에 살고 있었지만 적어도 한마을에 살고 있던 아이들보다는 세상을
더 아는 시골 아이였던 것 같다.
TV가이드를 보고 넓은 세상 저 편에는 서울도 있고 방송국도 있다는 걸 알았고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보고
미국이라는 나라에는 MIT 공대도 있고 어느 한 해에는 그 대학의 학생들이 공부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자살률이 최고였다는 기사를 보고, 아이들을 모아 놓고 나만 아는 이야기처럼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었다.
6학년에 막 올라 간 봄에 군산으로 이사를 나오기 전까지 한 마을에 살았던 큰집으로 별다른 일없으면
매일같이 놀러 가던 게 내 일상이었다.
그것은 마치 직장에 출근하는 직장인 같은 단순한 규칙적인 루틴이었다.
큰집에 놀러 가면 큰아버지의 낡은 앉은뱅이책상 위에 있던 법정스님의 책 제목을 읽으면서 한글을
복기했고 집에 와서는 유리 액자에 끼워져 벽 위에 걸려 있던 아버지의 고등학교 졸업장을 보면서
한글을 또 익혔다.
이리공고 전기과 19기 고호정
한글을 뗌과 동시에 외웠던 아버지의 졸업장이다.
지난주 토요일에 등산을 다녀왔는지 아닌지의 기억이 불분명한 오십 대가 되었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읽고, 기억하는 법정이라는 단어와 아버지의 졸업장은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3. 우리말의 말잔치가 열렸던 순천역 버스 터미널
규칙적인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주일 , 이주일 간격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난 후 잠시 시간이 났다.
앞으로 계속 시간이 날지 또 어디로 일을 하러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온갖 책들을 정리하고
남겨놓은 무소유를 위해서 불일암에 다녀오고 싶었고 그런 김에 템플스테이도 하고 싶었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의 입소를 위해서 수원에서 6시 기차를 탔다.
6시 15분 전라선 기차는 10시 30분에 순천에 도착했다.
순천역 앞에서 111번 버스를 타고 송광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하루에 7번만 운행한다는 송광사행 버스는 간격이 한 시간 이상이었기 때문에 버스정보 검색으로도
언제 올 지 모르는 정보 없음 버스였다.
남도의 햇빛은 수원보다 더 뜨거웠다.
정말 오기는 오는 걸까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111번 버스를 기다리면서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남도의 할머니들을 봤다.
한 명의 할머니가 정류장 의자에 앉고 곧바로 어떤 할머니가 오면서 아는 체를 하셨다.
할머니 1 "오랜만이네, 여기서 보네 잘 지냈소"
할머니 2 "숨만 쉬고 살어라"
할머니 1 "아들은 어쩠소"
할머니 2 "죽었소, 벌써 몇 년 됐는데, 할아버지 죽고 다음 해에 죽었소"
할머니 1 "오메 서운하네"
짧은 대화 속에 또 누군가 끼어들었다.
아드님이 돌아가셨다는 할머니 2의 손에 들려 있던 황태포를 보고 내 또래의 아줌마가 끼어들면서 물었다.
아줌마 "근데 황태포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할머니 2 "무쳐 무치면 쓰지"
아줌마 1 "어떻게 무쳐요"
옆에 있던 또 다른 아줌마가 끼어들었다.
아줌마 2 "뭣으로 무쳐 , 물엿으로 무치지"
곡성 영화 "뭣이 중헌데" 같은 대화였다.
할머니 두 분은 아는 사이인듯하고 아줌마 두 분 모두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본 사이들이었지만
네 사람의 말잔치는 버스가 오도록, 아니 도착해서 버스에 오르는 순간에도 계속되었으니
황태포를 무치는 방법에 대해서 대화는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시끄럽던 정류장이 버스가 오자 황태포와 함께 할머니 두 분과 아줌마 두 분 모두 순삭 했다.
주제의 일관성이 없던 그들의 대화에서 잠깐이지만 삶과 죽음을 보았다.
두 분이 돌아가셨고 황태포는 물엿으로 무쳐라는 걸 알게 된 남도의 말잔치였다.
4. 불일암의 후박나무
후박나무 아래에 의자를 놓고 사색을 즐겨하셨고 좋아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모셔져 있는 곳이 생전에 법정스님이 좋아하던 곳 "후박나무" 아래라고 한다.
무소유란 물건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옥상 창고에 많은 책들이 있을 때는 그것들을 버리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끌어안고 살았으나 버리고 났더니
대출금 완제한 것처럼 속이 시원하기가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남아 있는 무소유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법정스님 말씀처럼 물건이 본래 내 것이 아니었으므로 없어져도 서운할 게 없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다.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본래 하나의 물건도 없다.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마음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다.
5. 송광사와 교토 료안지
내가 보았던 교토의 절들은 카레 산스 이식의 정원이었다.
물을 쓰지 않고 돌과 모래만으로 정원을 표현한 것인데 은각사도 카레 산스 이식 정원이었고 료안지도 그렇고
은각사에서 본 정원도 카레 산스 이식 정원이다.
불교 선종의 영향을 받은 종파의 절들은 카레산스식의 정원을 하고 있는데
불완전한 인간이 끊임없는 참선을 통해서 진리에 다가가야 된다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근원한 정원이
바로 카레 산스 이식 정원이다.
료안지의 석정의 돌들도 전체는 15개이지만 어느 각도로 보아도 한 번에 15개가 다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깨달음을 통해서 15개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도 료안지의 석정을 보러 갔을 때 열심히 방향을
바꿔가면서 15개를 세어 보았으나 15개를 다 셀 수 없었다.
발가락 양말을 신고 옆자리에서 떠들던 일본 남학생의 발가락 개수만 정확히 열개라는 걸 세고
돌아왔을 뿐이다.
송광사 대웅보전 앞마당은 텅 비어 있었다.
아기자기한 돌들과 모래의 고무래질로 완성된 교토의 카레 산스 이식 정원과는 달리 우리나라 절마당에
흔하게 있는 석탑조차 없었다.
이유는 단순 명료했다.
조계산에 둘러 싸여 가운데에 얌전히 앉아 있는 송광사가 연꽃 봉우리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절마당에
무거운 석탑을 놓았다가는 꽃이 가라앉기 때문에 절마당을 비워 둔 것이라고 했다.
오밀조밀한 정원을 추구하는 교토의 카레 산스 이식 정원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나는 석탑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는 송광사 절마당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