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清水の舞台から飛び降りる

-키요미즈 노 부타이 카라 토비오리루/밑져야 본전, 죽기 아니면 살기-

清水の舞台から飛び降りる

키요미즈 노 부타이 카라 토비오리루/밑져야 본전, 죽기 아니면 살기

뭔가 큰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길 일이 있을 때 쓰는 일본의 속담이다.


교토의 대표적인 문화 유산, 청수사의 높은 무대는 절벽위에 세워져 있다.

본래 위치가 절이 들어 앉기에 부적합한 자리였으나 벼랑의 가파름을 역으로 이용해서

139개의 기둥이 떠바치는 형식으로 앞으로 너른 무대를 만들어 주변 경치를 절 안으로 끌어 들인

경치의 끝판왕을 만들었다는 청수사의 무대는 공사중이어서 직접 무대에서 경치를 보는 것은 못했지만

높이에서나 주변의 풍광에서 압도적이었다.


높이가 약 15m에 해당되는 청수사의 무대에서 아래로 뛰어 내릴 각오를 한 다는 것은

가족을 헤치고 황산벌 전투에 나섰던 계백장군의 포지션 쯤 되어야 할 만한 대사인것같아도

내가 즐겨 보는 "사자에상" 만화에서는 주인공인 사자에상이 송이 버섯 한 송이를 사러 갈 때도

쓰는 말이고 좀 비싼 물건을 사고 싶을 때 습관처럼 하는 말이다.

죽기 살기로 할 만한 일을 결단에 옮길 때 쓰는 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청수사 무대에서 뛰어 내린 사람들의

생존률은 생각보다 높았다고 한다.


생존률을 따지기 전에 청수사의 무대는 아찔해서 거기서 뛰어 내릴 각오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서운 결심이긴 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 교토편에서 사진 발췌


나는 그런 각오를 하고 교토에 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혼자만의 외국에서의 생활에 설레일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진과 태풍과 무더위를 겪으면서, 국민 연금때문에 구약소를 두 번 왔다갔다 일처리를 하면서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사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생각해봐도 교토의 여름 더위는 끔찍했고 히가시야마 구청 연금과 직원들의 일처리 방식도 답답했다.


40도 살짝 아래이거나 40도쯤 되는 여름 무더위는 정신줄 놓기에 딱이었지만

나는 다녀오지도 않은 군대 정신으로 학교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 안에 강박적인 뭔가가 있는지 정해진 대로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불편해서

시험이 있든 없든 공부는 새벽 한 시까지 매일 했고 알바 출근 시간도 어느 일본 아줌마들보다

항상 일찍 출근을 해서 스스로 시간을 손해보고 살았다.

하지만 그것은 청수사의 무대에서 뛰어 내릴 각오에 견줄만한 일은 아니었고 그저 내가

정한 규칙이었을 뿐이었다.


한 시간 휴게시간을 이분 전에 들어왔던 일본 아줌마들과는 달리 나는 집에서 식사하고

이십 분 전에 다시 출하부에 들어와서 일을 시작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내가 그렇게 하는 게 편했기 때문에 했던 일인데

어느 날 小野(오노)상이 나에게 "고상은 항상 일찍 출근을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세요"라고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세상의 누군가는 보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모를 것 같아도 그렇게 누군가는 내가 하는 일들을 보고 평가한다.

세상이 그런 것이다.


小野(오노)상은 재일교포 2세였다.

그 사실은 빵집 아줌마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녀의 한국 이름은 경미였고 아버지의 고향은 제주도였으며 한국식으로 하면 강경미가 되는

나와 동갑인 아줌마였다.


첫 출근 날이었던 2018년 4월 16일

두시까지의 시간에 늦을까 봐 뛰다시피 걸어서 빵집 휴게실 3층까지 올라갔을 때

혼자 조용히 앉아있던 그녀를 봤다.

오늘 첫 출근을 했는데 나는 한국 사람이라서 빵집 일을 잘 모르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했다.


앞뒤 메는 방법이 이상했던 빵집 앞치마 입는 방법을 가르쳐주면서 직접 끈을 메어 주면서

오노상이 "저도 한국을 여러 번 다녀왔어요. 지난번에는 사수도를 다녀왔네요"라고 말을 했다.

"사수도" 라니 우리나라에 나도 모르는 섬이 새로 생겨났나

어느 바다에 떠 있는 섬인지는 모르지만

"사수도"는 처음 들어 본 섬 이름이라 그냥"아 그러세요" 건성으로 대답했는데

오노상이 "저는 재일교포예요. 제가 재일교포라고 한 건 비밀로 해주세요"라고 조용히 말을 했다.


처음 본 나에게 자기가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는 건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國밍 아웃이다.

- 국적을 밝힌다는 의미로 커밍아웃에 숟가락 얹은 말이다-


일본에서 재일교포라는 것은 밝히기 힘든 콤플렉스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함께 일한 지

오래된 빵집 아줌마들에게도 자기가 한국사람인 것을 일부러 밝힐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사수도 라고 말했던 이상한 섬 이름이 제주도 였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고

나랑 둘이만 있을 때는 서툴지만 한국말을 쓰려고 했던 오노상은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모두 한국사람이었다.

심지어 학교도 우리나라 정부에서 교토에 세 운 교토 국제 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아마 오노상이 한국인 학교에 다닌것은 부모님의 뜻이었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는 한국말을 곧잘 했지만 졸업하고는 많이 잊어버렸다고 했다.

중 고등학교 과정을 국제 학교에서 마쳤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일본에서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편한것 보다는 불편한 게 더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 같았다.

차라리 중국 사람이거나, 또다른 외국 인이었어도 불편했을까 싶다.

한국사람이라서 불편하고 감내했어야 될것들이 부모 세대에서부터 많았던 것을 보고 자랐을 것이고

차피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는 편한것은 1도 없음을 잠깐 살아 본 나도 알았는데 그들은 오죽했을까 싶다.

그러니 오노상이 비밀로 해달라는 말이 서글펐다.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는 일본에서 강 경미였던 이름은 남편 집안의 성을 따라 小野(오노)가 되었고

서류상으로는 아마 그녀는 일본인이었을것이지만

市本(이치모토)상이 퇴근 시간에 끝내 주지 않고 이리저리 잔머리 써가면서 잔업을 시킬 때

내가 울면서 한국말로 하소연을 했던 이도 강경미(오노)였고 이치모토에게 그러지 말라고 정식으로

항의를 하라고 내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 주던 사람도 강경미(오노)였다.


지금에야 일부러 이민을 가고 선택에 의한 이주이지만 오노상의 부모님 세대에서

일본으로 와서 살았던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고 일본에 와서도 힘들었을 것이다.


清水の舞台から飛び降りる

키요미즈 노 부타이 카라 토비오리루/밑져야 본전, 죽기 아니면 살기

실제로 일본 사람들은 떨어지면 죽는지 아닌지 호기심으로 뛰어내렸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봤자 말 그대로 죽기 아니면 살기, 또는 다치는 정도였겠지만 재일 교포들은

청수사의 무대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살았을것이다.


옆 사람이 떠드는 소리의 감정 처리 선까지 아무런 어려움없이 그대로 해석이 되는 내 나라에서

사는 일과 몇 번을 생각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을 외국에서 사는 일의 경중이 같을리가 없다.


키요미즈 노 부타이까라 토비오리루의 심정은 일본인들에게 보다는 재일 교포들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다


아직도 보로니아의 출하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이 글을 읽지 못 할 경미씨에게 이 글을 마음으로 전한다.


이전 13화Part2. 망설임에는 미학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