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의외의 복병

외로움을 이긴 빨래

2018년 나는 햇빛 쏟아지는 집이 그리웠다.


그 집은, 내가 얻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시라카와 쵸의 원룸은 일조량이 야박한 집이었다.

낮에 들어가도 창문 쪽으로부터 일 미터 정도만 야박하게 들어오던 햇빛 때문에 우울하던

말 뿐인 2층 원룸에서 지내다 보면 수감 생활하는 것 같은 답답한 기분이 들어

나오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겨우 일 미터쯤 들어오던 햇빛으로는 수건 한 장 양말 두 짝 제대로 뽀송뽀송 말릴 수가 없어서

늘 덜 마른 수건과 드라이기로 억지로 말린 양말을 신었다.


내가 쓰고 있는 다음 블로그 "나경 아줌마 이런저런 이야기" 교토 일기 카테고리에도

"신고 나갈 양말 한 짝만 있어도 행복하다"라는 일기가 있다.

밖에 나가면 살을 뜯고 들어 오는 햇빛도 집안에서는 귀하디 귀해서 돈 주고 사 올 수만 있다면

물처럼 사 오고 싶었던 귀한 햇빛이었다.


물도 햇빛도 모두 나에게는 일용할 양식과도 같았다.

요도바시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을 배송받아서 집에 쌓아두면 엔화 쟁여놓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인터넷으로 주문을 할 때 내가 원하는 배송 시간대를 택할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게 이용했다.


물은 무게 때문에 두 박스 이상 주문할 수 없다.


빨래는 어쩔 수 없이 동네 빨래방을 이용했는데 항상 세탁기는 노는 법이 없이 늘 돌아가고 있어서

갈 때마다 기다렸다가 잽싸게 세탁물을 밀어 넣지 않으면 세탁기 돌려오기도 쉽지가 않았다.


コインランドリー. 내가 이용하던 코인 란도리

아이들 어렸을 때 잠깐이지만 세탁기를 두대 놓고 산적이 있었다.

세 명 다 어렸고 둘은 연년생이어서 자고 일어나면 빨래, 한 나절 놀고 나면 빨래

빨래와의 전쟁을 날마다 치르고 살았었다.

건조대도 모자라 남편이 거실에 매어준 빨래줄에 아이들 옷을 부지런히 돌려서 널었다.

세탁기 두 대에서 돌린 빨래를 운동회날 만국기 걸듯 착착 널어서 말렸다.

잡지에 나오는 예쁜 집 이야기는 먼나라 이야기 같았다.

아기들 똥이나 밟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여섯살이었던 큰 애가, 다 큰 어른처럼 보였을 정도로 세살,두살 연년생 육아에 제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2000년 전주에서 살 때 이야기이니까 벌써 20년 전 일이다.


교토의 원룸에서는 빨랫줄을 매어두었어도 빨래가 마르지 않았다.

공평하지 못한 햇빛은 내 집에는 들어오지 않았고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있던

내 방의 건너편에 있는 집에는 은혜롭게 비쳤다.

월세의 차이는 곧 일조량의 차이였다.

같은 건물이었지만 내방은 야칭(월세) 3만9천엔에 관리비가 5천엔이었고

바로 앞집은 야칭(월세) 6만엔에 관리비가 5천엔

방 싸이즈와 일조량의 차이였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시차는 없지만 일본이 한 시간 정도 일찍 해가 지기 때문에

가뜩이나 햇빛은 부족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훨씬 이른 시간에 내 방은 깜깜해졌다.

빨래를 어떻게든 말려야 되는데 말릴 재간이 없었는데 부족한 일조량의 집에서 살다 보니

저절로 궁리가 생겨서 여름이면 에어컨 바로 아래쪽으로 옷걸이를 걸고 말렸고

겨울이면 히터 바람으로 말려서 다음 날 일용할 양말 한 짝을 챙기는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나의 일이었다.


외로움이라든가 향수라든가 그런 정신적인 부분에서 힘들었던 것 보다도

빨래를 개운하게 해서 햇빛에 바짝 말려서 입지 못하는 스트레스때문에 우울할 때도 있었다.


사람이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는 것은 그렇게 의외의, 예상치 못한 변수에서 발생한다.

"내 방에는 너무 부족한 일조량"


부족한 일조량은 곰팡이를 만들었고 곰팡이 균을 죽이려고 슈퍼에서 사 온 강력한

곰팡이 제거 스프레이는 벽에 생긴 곰팡이는 없앴으나 작은 방에서 옷으로 까지 튄

곰팡이 제거제가 옷 색깔을 락스처럼 빼버렸다.


벽에 뿌리지 마자 곰팡이가 거품과 함께 사라지는 신기한 풍경을 보고 신이 나서 마구 부려댄 게

원인이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가비토리라는 곰팡이 제거 스프레이로 곰팡이를 없앴으나 일조와 환기가 좋지 않았던

집이었기때문에 결국 이사 나올 때 다시 스멀스멀 생겨난 곰팡이 때문에 집얻을 때 냈던

보증금(시키킨) 1만엔은 청소비 명목으로 돌려 받지 못했다.


일년 동안 교토에서 혼자 살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하는 질문이 정해져 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데 외롭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나는 외로움보다는 빨래가 힘들었다.

수원으로 돌아가면 세탁기에 빨래를 개운하게 돌려서 옥상에서 뽀송뽀송하게 말려서

각 잡히게 개고 싶은 상상을 하면서 교토 원룸의 야박한 일조량을 견뎠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햇빛이 그리웠다.

북반구의 사람들이 햇빛만 나면 무조건 밖에 나가서 일광욕을 한다는데

정말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일본속담에 はなよりだんご 花より団子 하나요리 당고라는 말이 있다.

꽃보다는 경단이라는, 정서나 풍류보다는 실질적인 것이 더 중요하는 의미이고

우리나라 속담으로 치자면 금강산도 식후경쯤이 비슷한 말일것 같다.


내가 딱 그랬다.

미리 앞서서 걱정했던 일들의 모든 우선 순위를 제치고 의외로 빨래해서 널고 말리고의

단순한 생활이 잘 되지 않는 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살아봐야 아는 것들이 그렇게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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