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은 성급하다-
한국 사람은 (셋카치:성급함)
일본어 학교를 다닐 때 내가 싫어했던 선생님이 나한테 한 말이었다.
그것도 실실 웃으면서, 딱 저렇게 말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될 단어가 바로 "실실"이다.
정말 카오리 선생님은 한쪽 입술만 살짝 올리고 실실 웃어서 사람을 기분 나쁘게 했다.
"韓国人はせっかちじゃないですか。 한국사람은 성급하지 않습니까"
이름이 향(香)인 일본식 발음으로는 카오리 선생님이었다.
사람이 느낌이라는 게 있고 눈치라는 게 있는 한,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지, 아니면
호감 정도는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데 카오리 선생님은 한국사람들을 싫어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매일 내주는 과제에 빨간 펜으로 틀린 부분을 체크해서 주는 것만 봐도 체크표시가
신경질적으로 차갑게 쳐져 있는 게 마음으로 느껴졌었다.
대부분 선생님들은 한자 쓰기가 틀렸다면 틀린 부분에 세세하게 동그라미를 쳐서 자기가 틀린 부분을 알 수 있게 해 주셨는데 카오리 선생님은 그냥 통으로 틀렸다는 표시만을 했기 때문에, 오답 체크만 봐도 그 선생님이
불친절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채점 방식이야 나한테만, 한국 학생들한테만 그런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는 공평했으나
수업시간에 각 국민들에 대한 국민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에 기껏 발표를 시켜놓고
한국 국민들은 성격이 급하지 않나요 라고 본인의 의견을 말해서 기껏 한 발표 내용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 적이 있다.
성격이 급한 게 나쁜 건가요 라고 묻고 싶었을 만큼
급한 성격은 나쁜 것인 것처럼 뉘앙스를 가지고 말했던 카오리 선생님 때문에
せっかち(셋카치):성격이 급함이라는 단어는 외울 필요도 없이 곧바로 가슴에 새겨졌던 단어였다.
카오리 선생님은 어떤 발표를 했어도 그걸 듣고 수긍할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한국사람은 성급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믿고 싶고 그렇게만 평가를 하고 싶어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웃긴 건, 그렇게 평가를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우리나라에 한 번도 놀러 온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들은 대로, 들리는 대로 평가했다는 점이다.
내가 좋아했던 미하라(三原) 선생님은 2000년 초반에 서울 동부 이촌동에 산 적이 있었다는데
그 당시에 딸이 어렸었는데,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자기 가방을 끌어당기면서 빈자리가 났을 때
아이와 함께 앉으라고 했었다면서, 매우 놀랐지만 그게 한국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이었던 것 같다면서 지내면 지낼수록 한국이 좋았다고 하셨다.
미하라 선생님은 나는 몰랐던 일본 여자들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는데 그건 이랬다.
이빨은 토끼 이빨에, 안경을 끼고 카메라를 메고 있는 이미지가 바로 일본 여자들에 대한 한 때
이미지였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 그런 패션 같은 게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는 게 미하라 선생님 말씀이셨는데
본인이 앞 니를 토끼처럼 팍 내밀고 리얼하게 흉내를 내서 선생님의 흉내가 빈폴의 자전거처럼
가슴에 팍 하고 꽂힐 지경이었다.
본인이 일본 사람이면서도 가끔은 일본을 디스 할 때는 확실하게 해서 아이들은 미하라 선생님을 좋아했었다.
일본을 디스 해서 좋아한 게 아니라, 선생님의 솔직함이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카오리 선생님의 경우에는 일본 우월주의 같은 게 온몸에 세팅이 되어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한국 이야기가 가끔 나올 때면 대놓고 까대는 미묘한 뉘앙스가 있었기 때문에
카오리 선생님을 싫어했었다.
똥 싼 바지처럼 생긴, 엉덩이 부분이 아래로 축 늘어진 이상한 바지를 주로 입고 다녔던 카오리 선생님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민망한 패션을 보면서 나야말로 일본 아줌마들은 패션 센스가 너무 없다고 까고 싶었지만
카오리 선생님을 제외 한 나머지 선생님들은 대부분 깔끔하게 신경 쓴 듯 쓰지 않은 듯 차려 입고
다니셨기 때문에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경험하고서 평가하는 것과 경험하지 않고 평가하는 것은 다르고
위험하기까지 한 편견이 될 수 있다는 걸 카오리 선생님은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다른 건 모르겠고 버스를 탔을 때만큼은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격이 급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가 내릴 정류장에 도착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벨 누르고 한 정거장 전부터 일어서서
내릴 준비를 하고 노인이든 애들이든 나이에 관계없이 미리미리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성격이 급한 건지
준비성이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두들 준비 땡의 자세로 도열 지여 있는 걸 보면 나도 미리 내릴 준비를 하지 않으면 기사 아저씨한테 혼 날 것 같은 기분인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교토에 있을 때는 반대였다.
버스를 타고 벨 누르고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기사 아저씨가
큰소리로 말했었다.
"자리에 앉아주세요"
본능적으로 미리 일어나 있는 습관이 배어 있던 나로서는 1. 완전히 정차 후 2. 자리에서 일어 섬의
매뉴얼을 지키는 게 너무 어려웠다.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던 버스에서 먼저 일어서서 내릴 준비를 했을 때 기사 아저씨가 나한테
위험하니까 앉으세요 라고 말했을 때 창피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리고서야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버릇을 고쳤다.
내가 본 일본 사람들은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후에 내릴 준비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심지어는 붐비는 버스 안에서 가장 마지막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버스가 정차한 후에 느릿느릿 뒷자리에서
사람들을 헤치고 앞 문으로 와서 내리는 걸 본 적도 있었다.
나로서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으나,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 기다려줬고, 가장 속이 탔을지도 모르는
기사 아저씨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봤다.
유학생 아이들조차도 일본 버스 매너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학기 중에 한국에 볼 일이 있어서 잠시 다녀왔던 남자아이가 며칠 만에 와서는 한다는 말이
한국에서 버스를 탔는데 어떤 남자아이가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걸 보고 기사 아저씨가 큰소리로
"학생 내릴 거야 말 거야?" 화를 내는듯한 소리로 묻는 걸 보고서
자기가 한국에 와 있구나 싶었다면서 웃었을 때 같은 반 한국 아이들 모두 웃었던 것이
공감의 표시였을 것이다.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후에 내리는 신기술을 득템 한 후에 한국에서 놀러 온 지인들과 5번 버스로
은각사를 찾아갈 때 내가 지인들에게 다음 정류장이 은각사야 했을 때 함께 탔던 일행들이
벌써 내리려고 일어서는 걸 보고 내가 잡아 앉히면서 "앉아있어, 완전히 멈춘 다음에 일어서야 돼"
했었다.
피를 나눈 민족애가 들끓었지만 일본에서는 통하지 앉는 매너이니, 잡아 앉혔지만
그들 모두 나한테 그랬다.
"앉아 있는 게 더 힘들었어,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편하지, 그거 생각보다 힘들더라"
그래서 습관이 힘든 것이다.
나는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더 좋아해서 어디 갈 일이 있으면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바깥을 보고 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잠시 일본에서의 경험이 있으니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보는 일도 버스 탔을 때 신경 쓰는 일 중에 하나이다.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나이가 어리든 많든 내가 본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미리미리 카드를 찍고
내릴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버스에 본 어떤 남학생 같은 경우에는 세게 달리는 버스에서 미리 준비를 하는 바람에 뒤에서부터 타타다닥하고
뛰다시피 앞으로 튕겨져 나오다가 가까스로 내리는 문 기둥을 잡고 브레이크를 잡는 걸 본 적도 있었다.
뭐랄까,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게 내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웃을 수만은 없다는 게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는 것 하나만을 봤을 때는 확실히 일본 교토 사람들에 비해서 한국 사람들이 성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각자 처한 환경대로 사는 거지 우리는 성급하기 때문에 잘못된 거고 교토 사람들은
느긋하기 때문에 옳은 거다 딱 갈라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교토에서 버스를 탔을 때는 일어서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면서 버스가 정차한 후에 일어섰고
지금은 미리 적당한 타임에 일어서서 내릴 준비를 하는 편이다.
자기만의 잣대로 옳고 그름이 어디있겠는가
그냥 그땐 그게 옳았고 지금은 지금 하고 있는 게 맞다.
카오리 선생님 아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