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교토式생활,교토食생활

교토클라쓰

학교 수업은 9시에 시작해서 50분씩 4교시가 진행되었고 사이사이 쉬는 시간이 10분이었지만

2교시가 끝난 후에는 15분의 휴게 시간이 주어졌다.


15분 휴게 시간!!

인간이 15분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지 반 아이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점심시간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2교시가 끝난 다음에 근처의 편의점으로 뛰어가서 간식을

사 오거나 저녁거리를 사 오기도 했다.


학교 옆에 있던 100엔 균일 로손 편의점에는 과일이나 채소도 100엔 균일로 살 수 있는 게 많아서

양파나 양배추 당근등을 사와서 그걸 싸게 샀다고 꺼내 놓고 자랑하는 시간까지 15분안에 다 포함이 될 정도로

2교시 후 15분은 우리 모두에게 유용한 시간이었다.


나는 주로 보로니아에서 가져오는 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가지고 가서, 쉬는 시간에 먹었기 때문에

나랑 짝이 되는 애들은 보로니아 식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를 강제로 일주일간 먹게 되는 특혜를 누렸다.

누구나 내 짝이 되면 일주일동안은 나의 올드보이가 되어서 보로니아식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를 실컷 먹었다.


교토에는 역사가 오래되고 맛있는 빵집들이 많았다.

사실 보로니아는 40년도 안된 명함도 못내밀 역사인거고 역사가 오래 된 신신당이라는 빵집도 있었고

개인이 운영하는 맛있는 동네 빵집이 많이 있는 곳이다.


히라이선생님은 자기가 사는 동네 "니시진"에 있는 톰소여라는 빵집의 빵이 맛있다고 했고

결국 자기가 사는 동네의 빵집이 가장 맛있는 빵집이 되는 곳이 교토였다.


교토는 오래전부터 농사,가내수공업, 장사등에 종사하는 가정이 많아서 엄마들이 아침을

차려주는데 시간을 많이 쓰지 못하다가 식빵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빠르게 아침을 해결할 수 있게 되어서

아침을 식빵으로 먹는 가정이 많아졌다고 한다.


식빵의 가장자리를 빵의 귀(パンの耳)라고 해서 식빵의 양 끝 단단한 부분은 잘라서 버려야 되는 데

아줌마들은 그걸 버리지 않고 사이좋게 골고루 나눠서 그날 함께 일한 사람들과 나눠 가졌고

(사실 가장 맛있는 부분아닌가)


그날 빵을 자른 사람은 조금 더 가져 갈 수 있다는 묵인되는 룰이 있었는데 내가 알바에 들어가는 시간대가

식빵 자르는 일부터 시작일때가 많았기 때문에 식빵귀를 나눠주는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을 때가 많았다.


물론 어쩌다 하마다상이 관리자로 들어오는 날이면 식빵귀는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신칸센타고 직행

하마다상은 가차없이 식빵 귀를 버렸다.

직원할인제도가 있으니 필요하면 40% 할인 받아서 사 먹고, 식빵귀는 가져가지 말고 버리세요가

하마다상 이야기였고 그건 백번, 천 번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식빵귀 버리는 일은 하마다상이 있을

있을 때만 지키는 걸로!!

하마다는 가끔 출하부에 왔기 때문에 우리들은 열심히 빵을 자르고 나눠 가졌다.


후지모토 아줌마는 초코빵만 보면 정신못차리고 좋아해서 후지모토 아줌마는 초코빵의 귀

한카이 아줌마는 담백한 프랜 식빵과 커피 식빵의 귀

타카하세상도 초코빵의 귀

다른 아줌마들은 적당히 나눠서 비닐봉지에 넣어서 바구니에 두면 알아서 챙겨가면서 고맙다고

꼭 인사를 하고 가져갔다.


집에 가져 온 식빵의 귀는 에그샌드로 만들어서 학교 간식으로 싸가지고 다녔다.

남들은 비싸게 사서 먹었던 보로니아 식빵을 질리도록 먹었지만

알바 첫 날에는 고작 네 시간 맡았던 버터 냄새에 입덧할 때 처럼 속이 메슥거려서 죽을 맛이었다.

김치를 좋아하지 않던 내가 그날은 얼마나 김치가 먹고 싶었으면 남편하고 보이스톡을 하면서

총각 김치를 먹어 보라고 시키기까지 했었다.

어떤 맛인지, 다 아는 김치의 그 맛이 그때까지의 내 일생을 두고 가장 먹고 싶었던 날이었다.

버터냄새에 속이 뒤집히게 일하고 오면 저녁에 맥주 한 잔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호로요이 - 과일별로,계절별로 한정상품이 늘 있었던 도수낮은 맥주


6시에 알바를 마치면 근처에 있던 24시간 프레스코 슈퍼에 들러서 호로요이 한 병과 저녁 찬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가서 식사에 곁들여서 호로요이 한 병을 마시는 게 내 하루에 대한 보상이었다.


호로요이 한 잔에 버터냄새 털어내고 달달한 술김에 새벽까지 2차,3차는 공부로 달렸다.


복숭아맛 호로요이부터 키위 호로요이 등 한정이라는 단어를 달고 슈퍼에는 늘 호로요이의

새 상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교토에서 지내는 동안 맥주는 가끔은 물처럼도 마셨다.

날씨가 너무 더웠고 습했던 교토의 여름을 나기에는 맥주만한 게 없었다.

교토의 지형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분지라고 쓰고 불지라고 읽고 싶을만큼

뜨겁고 습한 동네였다.


알바쉬는 날이면 호로요이를 마시면서 음주보행

저렇게 호로요이를 마셔대다가 남편하고 아들이 왔을 때는 산토리맥주공장에 견학신청을 해서 맥주를 마시고 왔으니 정리를 하다보니 어지간히도 마셔 댄 일본 맥주다.


가장 맛있었던 맥주는 삿포로 맥주공장에 가서 마셨던 세 잔


2019.03 삿포로맥주공장에서 마신 생맥주

교토에서는 내 손으로 김치도 만들어 먹었고 학교의 담임선생님인 미하라선생님이 부탁해서

김치 레시피도 적어주고 까나리 액젓까지 나눠 드렸다.


수원에서는 엄마가 준 김치도 다 못먹고 버릴 때가 있었는데 교토에 있으니 좋아하지도 않았던 김치가 어찌나 먹고 싶었던지 인터넷으로 보고 김치 깍두기를 담궈 먹었다.


교토에서 처음 담궜던 김치&깍두기

김치 담글 재료를 나르느라 딸이 공항에서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굵은 소금을 가지고 들어 올 때는 공항에서 소금보따리를 꺼내서 확인까지 한 후에 들어 올 수 있었다는데

검색대를 통과할 때 소금의 하얀덩어리가 마약처럼 보였었나보다 했다.


마약을 소지한 소녀가 될 뻔했으나 그것은 왕소금


내가 없는 수원집에서는 남편이 각종 재료를 몽땅 때려넣고 끓이는 잡탕찌개라는 신메뉴를 개발했다고 했고

아들은 라면을 많이 먹어서인지, 잡탕찌개 덕분인지 얼굴이 뒤집어져서 피부과에 다닌다고 했지만


속상한 마음도 잠시

혼자 살아도 할 일은 언제나 많았다.

매일 나오는 숙제에, 테스트,수업준비에 공부하면서 혼자 사는 일이 만만치가 않았다.


비록 만엔에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지만 저걸 알바해서 내가벌었구나

기특하네 싶어서 현금을 인출해서 다시 보게 된 만엔짜리 지폐다.


내 손으로 김치

내 손으로 엔화

음주보행


교토에서만 누려봤던 특별한 추억, 교토 클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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