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로니아에 취직했을 때 하마 다상이 나한테 준비해서 제출하라고 한 서류 중에
국민연금 수첩이 있었다.
아니 나더러 일본 국민연금 수첩을 가지고 오라니
내가 일본 국민도 아니고 더구나 나는 학생비자로 왔기 때문에 일본의 국민연금 수첩 따위는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외국인 근로자를 처음 채용하는 하마다 상의 입장에서는
본인도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서 확답을 주지 못했다.
하마다 상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입장에서 받아둬야 될 서류 목록 중에 국민연금 수첩 복사본이 있었기 때문에
나한테 말한 것이고 해결은 내 몫인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일본의 회사에서도 근로자와 비율을 나눠서 연금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복사본 수첩이 필요했던 것이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어디에 취직을 해도 급여통장 복사본은 요구를 하지만 국민연금 수첩을 보여달라고
하지는 않지 않은가!
아니 국민연금에 수첩 따위부터가 없는 게 우리나라다.
모든 것이 전산으로 처리되는 세상에 수첩이라니
나중에 국민연금 수첩의 실체를 보았을 때는 웃음밖에는 나지 않던 그 비주얼에 정말 깜짝 놀랐다.
나도 가지고 있었던 국민연금 수첩이다. 다이소에도 없을 법한 비주얼이다.
영화에 나올 법 한 돼지엄마의 일수 수첩처럼 생겼다.
내 것은 짙은 파란색이었었다. 오렌지색이 있는 줄은 몰랐네
오렌지색이건 파란색이건 저게 돈을 내라는 수첩이니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이라고 해도
하나도 반갑지 않을뿐더러 실제로 보면 손바닥만 한 사이즈로 뭐하러 일부러 돈을 들여 저런 조잡한 수첩을
만드는지 이상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건 내 식대로 생각하는 것이고 일본인들에게는
저 수첩이 있어야 되는 게 당연한 일인 것이다.
저 수첩이 있음으로 해서 자기가 국민연금에 가입이 되어 있다는 증명이 되는 셈이니
알지도 못하는 전산망에 있을 내 이름 석자보다는 내 손에 쥐어주는 수첩 한 권의 의미가 더 큰 것이다.
일본의 감성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수첩과는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일본 사람들은 물건의 결제방식 대부분이 현금이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보니까 외국인들만 가끔 카드 결제를 했고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현금결제를 했다.
학교 수업 시간에 미하라 요시코 선생님께서 일본인들이 현금결제방식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주제로 잡고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었다.
재난재해가 많은 나라이다 보니 지진이 일어나면 동반되는 게 정전이고 정전이 되면 카드결제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다 보니 옛날부터 재난에 대비해서 일정액의 현금을 집안에 두기도 했고 카드 사용에는
개인 정보가 따르기 때문에 개인의 소비생활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서 현금 소비를 선호한다라고
했지만 그런 이유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런 것이고 미시적인 관점
실 생활에서 보면 답은 더치페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주말에 만나 회화 수업 자원봉사를 해 주던 일본의 고등학교 선생님과 겨울 방학하던 날 식사를 하기로 해서
만났을 때 나는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나갔다.
먼저 밥을 먹자고 하면 먹자고 한 사람이 돈을 내는 게 우리나라 정서이다 보니 나는 편하게 생각했는데
식사를 한 후에 주섬주섬 자기 지갑에서 돈들을 꺼내는 걸 보고 나도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내 밥값만큼만 냈다.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아니 황당했지만 이후로도 계속해서 만났던 우리 셋은 만나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면 꼭 셋이 똑같이 나누어서 냈는데 가끔은 맥주를 더 마신 사람이 500엔을 더 내기도 했었다.
한 사람이 카드를 긁고 다른 사람들이 N/1만큼 계좌로 넣어주거나 만나자고 한 사람의 밥을 한 번 사거나
하는 것이 우리나라 모임에서의 계산 방식이라면 일본은 언제나 더치페이를 선호했고 그것은
내가 만났던 두 사람의 중년 일본 사람들과의 계산방식에서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젊은 대학생 아이들도 마찬가지였고 빵집 아줌마들과 식사를 할 때도 그랬다.
정확한 더치페이가 정답
그러니 지갑에 현금은 필수!!!
내가 돈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에게 빌려 달라고 하는 것부터가 민폐가 되는 것이고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 국민 교육인 일본인들에게는 현금 소지는 당연한 것이고 불문율인 것이다.
일본인들이 현금결제방식을 좋아하는 것과 국민연금 수첩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수첩과 현금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눈에 보이는 현물(現物)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수첩을 만들어서 배포했다가는 우리들이 낸 국민연금을
또 저렇게 쓸데없는 곳에 쓰느냐고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데모라도 하겠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자기가 국민연금에 가입해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 국민연금 수첩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소중한 것이고 그것이 일본인들의 일처리 방식인 것이다.
아날로그적인 감성
급여받을 통장외에 국민연금 수첩이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에 구약소(구청)에가서 직접 해결을 해야 했다.
나는 외국인이고 학생 비자로 와서 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일단 가입을 해놓고 학생이기 때문에 수입이 없음으로 해서 학생 납부유예 신청을 해두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국민연금에 가입 신청을 하고 학생 납부유예 신청서까지 작성을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한 달 뒤에 집으로 날라 온 두툼한 낱장 12장의 고지서와 국민연금 수첩이 들어간
종이 보따리로 나의 평화는 깨져버렸다.
우리나라는 같은 금액을 내야 되는 납부고지서라고 해도 해당 달에 한 장씩만 오지만
일본은 친절하게도 12장을 보내준다.
16,200엔 지로 영수증 12장의 압박감은 나에게는 곧 지진
이런 망할 놈의 새끼들-.-
내가 16,200엔을 내자고 납부유예 신청을 한 줄 아느냐고 욕을 욕을 해주고 싶었지만 욕까지 하기에는
나의 일본어는 언제나 너무 고급스러워 어쪌껴
한 달에 16,200엔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16만 2천 원인데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연금을 그만큼 안 냈던
내가 일본까지 와서 그 돈을 누구 좋으라고 내겠어
미쳤냐 이 자식들아
분기탱천해서 날을 잡고 구약소에 갔으나 흥분한 나와는 너무나 다르게
담당 공무원은 이건 일괄적으로 보내는 고지서였고 다음에 한 번 0원으로 고쳐져서 갈 거니까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해석을 해 보면 이렇게 된다.
학생 납부유예 신청을 했기 때문에 나는 패스시키고 안 보내도 되는데 원칙대로 일괄 금액으로 한 번 보낸 후
다음번에는 면제금액으로 한 번 더 보낸 다는 뜻이다.
생략해도 될 과정까지 눈으로 확인시켜주고 문서화해서 일처리를 하는 것이
일본 사람들의 일 처리 방식인 것이다.
우리의 판단 잣대로 보면 융통성이 없음이 일본 사람들의 일 처리 방식이고
일본에 오래된 노포들이 많은 것도 융통성 없음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노포 老舖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
교토에서는 30년 된 가게는 노포라고 할 수도 없다.
이마미야 진자 앞에 있는 아부리 찹쌀떡 가게 교토의 노포 중의 노포다.
떡을 숯불에 구워 하얀 된장소스에 발라서 먹는 저 떡을 수학여행 때 교토에 와서 먹고
어른이 된 이후에 또 교토에 와서 먹고 싶을 만큼 잊을 수 없는 맛이라고 한다.
1000년이 된 가게에서 파는 아부리 찹쌀떡을 먹고 30년이 넘은 보로니아의 빵
둘 다 먹어봤지만 다시 찾아가서 먹고 싶지는 않은 맛인 걸 보면 나는 확실히 일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천년이 넘는 소박한 가게를 가지고 있고 융통성 없이 한 자리에서 같은 모양으로 가게를
이어가고 있는 고집이 부럽기는 하다.
아날로그적 감성은 아날로그적 행정으로 이어져 1000년 떡집이 건재하는 한 국민연금 수첩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고 현금결제도 여전하겠지만 떡은 다시 먹고 싶지 않아도 불편했던 일처리 과정은
확실함을 위한 과정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코로나 19에 대한 일본의 재난지원금이 우리나라보다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