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그 해 여름은 뜨거웠다.

몸서리 처지는 교토의 더위

2018년 여름을 보낸 교토는 무척 뜨거웠다.

교토의 지형이 분지이기 때문에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울 것이라는 일본어의 예문도 문법 공부할 때 많이

등장하는 예문이다.


京都は盆地ゆえに夏は暑く, 冬は寒い.

교토는 분지이기 때문에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라는 해석이지만

아니 아니 절대로 저건 틀린 말이다.

교토는 분지이기 때문에는 맞는 말이지만 여름에는 덥고는 여름에는 사람을 죽일 만큼 덥고

겨울에는 그다지 춥지는 않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여름 날씨 다 거기서 거긴 줄 알았다면 그건 오산이다.

2018년의 교토 더위를 내 종아리가 기억하고 있다.


학교를 가기 위해 8시에 집에서 나오면 이미 도로는 뜨거워져있었다.

미리 예열시켜놓은 오븐처럼 길바닥이 뜨거워서 치마를 입고 걸어가면 한낮처럼 길바닥의 반사열이

종아리를 태웠다.

양산을 쓰고 모자를 쓰고 팔토시를 사서 끼웠던 여름은 내 인생에서 그때가 처음이었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종아리가 뜨거워져서 도로지옥을 벗어나 교실에 빨리 들어가고 싶게

만들었던 교토의 여름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내 인생 최악의 여름이자 더위였다.


위에서 내리쬐는 햇빛은 양산과 모자로 어떻게든 막아보았으나 지면의 반사열은 피할 수 없는 복병이었다.

양산으로 모자로 가리고 다녔어도 교토에서 여름을 보내고 눈 밑으로 엷게 기미가 생겨서 거울을 보고

악 소리를 냈던 2018년의 여름은 그야말로 "인생 더위"였다.


더위는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보로니아 빵집은 더위로 인해서 일시적으로 매출이 줄어 알바 시간이 단축되었다.

5월까지 매출이 급증했던 보로니아의 매출이 더위로 인해서 푹 꺾여 버린 것이다.


5월 초에 바빴던 골든위크 기간을 보내고 빵집이 소강상태가 되어서 최소한의 인력만을 남기고

나처럼 4시간을 일했던 아르바이트생들은 회사 측의 입장에 의해서 알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알바에도 급이 있어서 나처럼 4시간을 일하는 사람들은 우선 배제시키고 최소한의 인력만으로

출하부의 일을 해나가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경력자인 한카이상과 후치모토상 타카하세상 오노상 정도의 알바 엘리트 집단만을 남겨두고

4시간짜리들은 우선 아웃 대상이 된 것이다.


일 거리가 없어지면 다음 달 급여는 줄어들게 뻔한 일이고 알바로 생계까지 책임져야 되는

다른 일본인 아줌마들은 돈 걱정을 했다.

키타무라(北村)상 카미쓰나(上砂)상

두 명의 아줌마들은 나처럼 4시간을 일하는 파트였는데 둘 다 이혼을 했고 아줌마 가장이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에게 시간을 줄이는 것은 심각한 일이 되는 것이지만 더위는 일본인들의 빵사랑도 한풀 꺽어버려서

모처럼 한가한 보로니아가 되었다.


매월 말일이면 8시 전에 중앙상호신용금고 은행에 들러서 급여 통장을 찍어 보면서

찌찌직 하고 들리는 통장 기장 되는 소리에 기분이 한 번 좋고 늘 내 생각보다 많이 들어와 있던

엔화에 또 한 번 마음이 부자가 된 것처럼 좋았었는데 여름 더위로 인해 춘궁기가 아니라

하궁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동네 가게마다 붙어 있던 알바 모집 공고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찾게 된 곳이 Bamboo(밤부)라는 일본식 식당 겸 술집이었다.


타운 워크라는 알바정보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내가 살았던 동네의 어지간한 가게에는

알바 모집 종이가 붙여져 있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할 곳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그 일을 내가 익숙하게 잘 해내는 과정이 어려울 뿐이지 나이와 외노자에 대한 편견은 우리나라보다

덜 하다고 느꼈던 일본에서의 알바 생활이었다.


덥다 덥다 이런 더위 또 있을 까

학교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서는 순간 심호흡이 한 번 필요했고 돌아오는 길에 또 한 번의 마음가짐이 필요했던

여름이어서 선생님들은 熱中症(ねっちゅうしょう)에 걸리지 않게 끔 수분 섭취를 많이 하고

체력관리를 잘하라고 말씀하셨지만 학교에는 정수기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참 좋았던 물 인심이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갔던 관공서라고 해봐야 은행과 히가시야마 구약소 두 군데 밖에는 없었지만 그 두 곳 모두 정수기가

비치되어 있지 않았었다.

물론 학교도 그랬기 때문에 학생들은 편의점에 들러 자기가 마실 물을 사 들고 오는 게 중요한 일과였다.

뉴스에서도 熱中症(ねっちゅうしょう)이라는 단어는 늘 나왔고 우리 반의 뚱뚱했던 중국인 소상의 경우에도

더위에 지고 말아 결국 며칠 결석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으니 그 해 여름의 더위는 인생더위였던것같다.


굳이 일본어 예문을 들지 않고서라도 멀리에서부터 교토를 만두피처럼 싸고 있는 산들을 보면

교토는 분지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있다.


일본 사람들의 아날로그적 감성 중 하나가 바로 엽서 문화인데 더위가 절정에 다다를 즈음

しょちゅうみまい 暑中見舞(い) -쇼츄우미마이- 라는 엽서로 안부를 전하고

8월 8일까지 안부 엽서를 보내지 못했다면 残暑見舞い-잔쇼미마이 라는 안부 엽서를 보내는 것이다.

남아 있는더위에 몸 조심하시라는 엽서다.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라는 짧은 연하장인데 한여름에 연하장을 주고 받는 문화로 보아

일본의 여름 더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간다.


덥고 습기가 많은 날씨로 방에는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했고 찬물을 틀어도 미지근한 물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40도에 근접한 교토의 폭염 속에서 지내다가 어느 날 32도 기온이 떨어졌을 때

추워졌다고 생각했었다.

가을이 왔나 봐 추워졌어 라고 느낀 게 32도였다.

거짓말같은 이야기같으나 유감스럽게도 사실이다.

7,8도가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으니 순간 춥다고도 느끼는게 사람의 뇌 구조더라는 말씀이다.


여름에 교토를 여행한다고 하면 말리고 싶다.

여행의 퀄리티가 떨어질게 분명하기 때문에 교토는 가을에 가는 걸 권하고 싶다.

사계절을 지내 본 결과 교토는 가을이 딱 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종아리부터 뜨끔거려오는 교토의 무더위

몸서리가 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