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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일본 생일, 한국 생일

음력 10월 3일이 남편 생일이라 지난 주 주말에 미리 당겨서 생일을 보냈다.

아들 셋에 딸이 하나 인 집에 장남으로 시댁 가족들 중에서 생일은 가장 늦은 음력 시월이다.

그것도 동생 생일보다 불과 하루 늦은 생일이니

자라면서 미역국은 동생 생일에 끓여놓은 것 다음 날 뎁혀 먹었던 미역국이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양복점 하시는 아버님 돕고 거기에 딸린 사람들 밥해주느라 어머니도 밥으로 따지면

백종원만큼 할 말이 많으실 거다.


진정한 삼시 세 끼의 원조가 우리 어머니지 싶다.


아버님은 양복점을 하셨다.

면사무소 근처 번화가에서 희망라사라는 양복점을 30년 넘게 하신 것 같다.

기성 양복이 나오기 전 양복점이 얼마나 바빴을 지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짐작도 안 되지만

양복점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몇 명이었고, 명절이면 잠도 못자고 미싱을 돌렸고, 어머님과 아버님이

저녁에 집에 돌아 오셔서 돈을 쌓아놓고 세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는 남편의 말이

아주 뻥은 아닌게

희망라사라는 양복점을 해서 3남 1녀 대학교육도 시키고 지금 살고 계시는 너른 집도 사고

자식들에게 용돈달라 소리도 하지 않으시고 자립적으로 살고 계시는 걸로 증명이 된다.


하지만 그 많은 돈이 우리에게는 한 푼도 건너오지 않았다는 것은 유감이라면 유감이나

대신 우리도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기특한 짓은 하지 않고 있으니 쌤쌤이라 할 수 있겠다.


희망라사 식구들 밥해주느라 어머님은 고달팠을 것이다.


양복점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그렇다치더라도,두 번은 같은 음식 안 드시는 욕 나올 만치

입맛이 까다로운 시아버지의 식성을 맞추려 어머님은 한 평생 노고가 크신 분이다.

남들보기에 고급스럽게 생기셨다거나, 저 사람은 입맛도 까탈스러울것같아 라는

샤프한 첫인상을 주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도 아주 먼,

삼시세끼 그 밥에 그 나물을 차려서 주어도 군말없이 드시게 생긴 외모를 하고 있으시면서,

밥에 관해서만은 아직도 갑질을 하고 살고 계신다.

어머님이 여기저기 아프시면서, 많이 누그러졌다고는 하나, 며느리가 해 준 음식이 간이 맞지 않아도

드러내놓고 맛이 있다 없다 평가를 주저하지 않으시는 입맛에 관한 한 꼰대 시아버지시다. 


응팔에서 덕선이가 언니 생일 다음에 있는 자기 생일에 자기도 생일 따로 차려 받고 싶다고

크게 우는 장면이 있는데 우리 남편이야말로 미역국도 새로 끓여주지 않았을, 울고 싶은 생일이었을텐데도

시어머니 속 한 번 제대로 썩여 본 적 없는 착한 아들이었으니 본인 생일이라고 미역국 따로 끓여 달라는

맹랑한 소리는 할 줄도 몰랐을테고, 우선 남편의 뇌에는 반항과 저항의 DNA가 없다.

일제시대에 태어났더라도 독립운동은 못했을 인간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어머님이 따로 끓여주지 않았을 미역국을 결혼 후 부터는 남편의 생일이면 나에게 전화를 거셔서

"미역국 끓여줬냐, 미역국 먹었냐?" 점검을 하셨다.

이십 년 넘게 한결같이 하셨다.

남편 생일에 나한테 전화를 하셔서는 "미역국은 먹었냐" 고 물어보셔서 아직 순진할 때였는지

"어머님 제 생일은 지나갔는데요" 라고 백치미 뚝뚝 흐르는 대답을 한 적도 있었다.


내 생일에는 한 번도 못받아 본 전화를 아들 생일은 어딘가에 문신을 해서 새겨 두셨는지 음력 생일 잊지도 않고

잘 챙기시는 게 짜증이 나서 둘째가 고 3이었을 때 드디어 어머님의 미역국 전화를 수신차단했다.


때는 2016년 가을 음력 시월


어머니 "미역국 먹었냐?"

꼴통 며느리 나 "어머니, 은진이가 고3이라 우리집은 미역국 안 먹어요"

어머니 "....."


고 3있다고 미역국 대신 무를 넣고 끓인 소고기 무국을 먹었지만 그 해 우리집 고 3은 결국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했다.

반격의 시어머니 같았다면 나한테 한소리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어머님이 아무 소리 않고 지나가준

덕분으로 아직까지 고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역국 때문에 절연할 뻔 했던 2016년을 기점으로 어머님은 이제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미역국의 안부를 행기시는 듯 하다.


현명한 시어머니시다.


2018년 가을 교토에서 혼자 생일을 맞았다.


토상이랑 짝꿍을 할 때였는데 쉬는 시간에 내가 토상한테 "오늘 내 생일이야" 그랬더니

둘째 시간 끝나고 15분 주는 긴 쉬는 시간에 근처 편의점에 가서 작은 케잌을 사다 주었다.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처럼 생일이라고 해서 정해진 음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케이크 정도 먹는 게 생일 음식이다.

우리나라는 한 해가 지나가면 나이를 먹지만 일본인들은 자기 생일이 지나가야 한 살을 더 먹는게 다르고

축하하는 날이면 먹는 せきはん [赤飯] 팥밥정도가 생일에 먹는 음식 정도가 된다.


      

せきはん [赤飯] 팥밥


팥밥은 생일에만 먹는 음식이 아니라, 입학 축하나 하다못해 자녀의 첫생리를 축하하는 날에도

지어주는 밥이기 때문에 생일에만 먹는 음식으로 보긴 어렵고 넓은 의미로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해먹는 일본 가정식이다.


팥밥을 해먹지도 않았고, 미역국을 끓여먹지도 않았던 혼자 맞았던 생일을 2018년도 교토에서 보냈지만

내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같은 한 해를 보내고 있다는 마음에 오히려 특별한 마음이 들었던 생일이었다.


남편도 주말부부라서 공주에서 혼자 맞이하는 생일일것이다.


어머님 전화가 왔을 지 안왔을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살아 온 날들 중에서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 되기를

바 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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