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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하고 있는 일을 즐길 것!

겨울이 아직 이었던 2월에 원서를 내러 왔던 학교에 이렇게 더울 때까지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원서를 내러 교무실에 들어 갔을 때, 마침 점심 시간과 맞물려서 선생님들이 주문한 음식들이

배달이 되었는지 교무실은 짬뽕 냄새가 먼저 났고, 사람의 음성은 그 다음이었다.

선 냄새, 후 음성


석달만 일할 줄 알았다.

애초에 발령이 난 공무직 전담사가 석 달 정직 상태라서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함이었으니

석달 정직이 무사히 풀리고 복직할 때까지의 석 달동안이 나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이었으므로


교무실의 짬뽕 냄새에 필 받아서 평일 휴가 중이었던 남편과 함께

수원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좋아하는 백세짬뽕 집으로 가서 비싼 짬뽕을 먹고 집으로 돌아갔었다.

점심에 밖에서 둘이 특별히 먹으려고 했던 음식이 있었던것은 아니지만 냄새 하나에 훅 간 마음이라니!

세상 사가 가끔은 우연히 맡게 된 냄새 하나에 달라지기도 한다.


*여기서 알고보면 재미있는 일본어*

짬뽕은 일본어로도 짬봉이다. ちゃんぽん (챤뽀옴)


2018년 겨울, 히코네 성을 보러 혼자 갔던 히코네에서 역 앞에 있던 소화 38년(1963년)에 창업한

짬뽕집에서 먹었던 짬봉이 생각난다.

일본의 짬뽕은 우리나라식처럼 빨간 맛은 거의 없고 백짬뽕이 대부분이다.


펑펑 내리는 눈을 보는 일이 대구에서 눈을 보는 것 만큼 드문 교토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갔던

히코네에서 펑펑 내리는 눈을 만나 싸구려 운동화는 눈에 젖고 배가 몹시 고팠던 2시 쯤 먹었던 일본식 짬봉

창업한지가 오십년이 넘었건 안넘었건 그런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나에겐 춥고 배고픔을 함께 해결해 준 짬뽕집이었다.


히코네 역 앞에 있는 짬뽕집 - 우연히 들렸는데 소화 38년 서기로 치면 1963년 창업 한 집이었다.
1963년 창업치고는 평범한 맛이었으나,눈 맞고 덜덜 떨다가 두시에 먹은 짬뽕이 맛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일을 하고 있으면, 하루가 빠르고 금요일 저녁이 의미가 있어지며 한달이 금방이다.

남편의 급여에서 내 용돈을 덜어서 쓰는 것보다, 내가 벌어서 쓰는 것이 기분이 더 좋고 생색이 나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는 즐거움도 있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다보니 엉뚱한 발상에 웃을 일도 많다.


오늘은 어떤 아이가 나한테 뜬금없이 질문을 했다.

1학년 아이 "선생님 우리 교실에 나오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나 "그냥 집에 있었지" 건성으로 대답했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그럼 그냥 시민이셨군요"


그렇구나, 그냥 시민이었구나, 아줌마 주부 이런걸로 나를 해석하지 않고 1학년 엉뚱이는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해석했다.

"그럼 그냥 아줌마였네요" 보다 얼마나 근사한 이름인가




나같은 경우는 남이 낸 병가를 대신해서 학교와 계약한 대체직이지만 일본에서는

계약사원이라든가, 파견사원이라는 말을 쓴다.

"파견의 품격"ハケンの品格이라는 일드도 파견사원에 관한 이야기다.


일본에서는 채용을 할 때 처음부터 정규직이면 정규직이고 계약사원으로 고용이 되면 좀처럼 정규직이

안되고, 파견 사원은 파견사원을 관리하는 업체에서 필요한 사람을 보내주는 식으로 운영이 된다.


일본식 경영의 대표적인 시스템이 종신고용이지만 지금은 한 직장에서 퇴직때까지 있겠다는

직장인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일본의 기업=종신고용이라는 공식도 깨진지 오래다.

정년퇴직의 나이는 일본 나이로는 60세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나이로는 61세가 된다.


자신의 생일에 한 살 더 나이를 먹는 일본이기 때문에

일반 기업체의 경우에는 자기의 생일에 나이를 먹은 걸로 계산을 해서 본인의 생일에 정년 퇴직을 하게 된다.


생일날 우리나라처럼 미역국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생일 케키를 먹고 나와 오후에는 퇴직을 하게 되는 것이다.


2030년이 되면 일본의 공무원 정년 퇴직이 65살로 늘어난다고 하니 일본 공무원들은 좋겠지만

우리집 양반은 얄짤없이 앞으로 4년만 더 일하면 "그냥 시민"이 된다.


나도 뭐 잠정적인 퇴직 상태처럼 일 할수 있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있긴 하지만

일하고 싶을 때 어딘가를 기웃대보면, 자격지심인지 누가 내 나이만 들여다 보는 것 같고

나는 내 나이에 당당하나, 남들은 꼭 그렇게 안본다는 걸 굉장히 많이 느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좀 깨인 나라이긴 하다.

보로니아 빵집에서 일할 때도 사토우 할아버지가 우리처럼 앞치마 입고 빵을 잘랐고, 아라시 할아버지는

빵 배송을 하셨다.


내가 살 던 동네 훼미리 마트 편의점에서는 할머니가 편의점 알바를 하셨고, 할머니 편의점 알바생들을 보는 게

크게 어렵지 않은 동네가 교토였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이 약간 외국같기도 하지만, 도어락 대신 열쇠를 죽어라 가지고 다니고

카드 대신 동전과 현금으로만 거의 계산을 하는 아나로그적인 감성이 깔려 있는 걸 보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라가 일본같기도 하다.


정규직은 아니지만, 삼십분 일찍 나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혼자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조용한 교실에서 처음 들어 오는 아이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설레임


일을 하는 즐거움을 이제 알 만한데 그냥 시민으로 있으라고 누군가 어깨를 꾹꾹 누르는 것 같지만

오늘 하루가 감사한 수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겨울이 아직이었던 2월에 원서를 내러 왔던 학교에 이렇게 더울 때까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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