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5월 8일이 어버이날이지만, 일본은 ははのひ [母の日] 하하노히
어머니의 날이다.
그것도, 5월 8일로 꼭 단정짓지않고,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어머니의 날이 된다.
5월 5일 こどものひ (子供の日) 고도모노 히, 일본의 어린이날은 남자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날이고
여자 아이들의 어린이날은 3월 3일 ひな雛祭り 히나마쯔리로 대신한다.
딸이 있는 집은 빨간 단을 쌓고 히나닌교라는 인형을 장식하고 치라즈시로 축하 음식을 해서 먹는다.
히나마쯔리때 장식했던 인형을 빨리 치우지 않으면 결혼이 늦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여간 5월 첫 주에는 일본의 모든 연휴가 모여 있어서 골든위크라는 말이 생겨났고
시댁가는 사람들, 여행가는 사람들
각자 사정으로 모두 바빠서 2018년 골든위크때 보로니아 빵집 빵순이로 알바를 하느라
일본 빵집 귀신이 될 뻔했었지만
정직하게 찍히는 중앙상호신용금고의 알바급여 통장은 골든위크 기간에 노예처럼 일했던
힘든 시간들을 싹 잊게 해줄만큼 시원했었다.
치료중에 가장 좋은 것이 금융치료고, 엔치료는 알바로 생긴 어깨 통증에 파스같았던
2018년 골든위크 기간 빵집 알바
그래도 다시 돌아가서 하라면 못할것이다.
어버이날이 지난 주, 친정과 시댁, 아버지 산소까지 일박이일이 바빴다.
살아계신 엄마랑은 치킨에 맥주를 마셨고, 아버지 산소에는 카네이션과 커피
시아버지께는 용돈을 드렸다.
여동생 집 문제로 엄마가 적금깨서 여동생한테 주고 났더니 옆구리를 누가 도려낸것처럼
허전하더라는 살벌한 말씀을 하신것으로 봐서, 돈은 옆구리고 버티는 힘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갑에 돈없으면 돈 쓸일없어도 괜히 기운도 없고 사람만나기도 싫어지는 것을 엄마 말이 아니래도
이미 충분히 아는 나이가 됐기 때문에 공감100이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그렇게라도 자식을 도울 수 있어서 기뻤다며, 그래서 아버지 연금으로 적금을 붓는
어른들의 바보같은 행동 1과 2를 실천하고 있는 거다.
어른들의 바보같은 행동 1.연금으로 적금붓기 2. 연금으로 부은 적금타서 자식한테 주기
돈에 관해서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을까
아무리 수의에 주머니가 없다고해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주머니가 없어서 돈을 못채우겠나!
돈이 없어서 주머니를 못채우지!
우리 시아버지도 돈에 관해서는 확고한 주관이 있으신 분이다.
자식들한테 돈없다고 손벌리는 일도 없지만 자식들한테 돈을 주는 일도 없는 분이시라
오로지 내돈내산, 본인의 힘으로 노년을 보내고 계신 중이다.
"희망라사" 시아버지가 젊어서 하셨던 양복점은 면소재지 중심가에서 멋쟁이 시골 양반들에게
맞춤 양복을 제공하고 시아버지가 지금까지 자식들에게 아쉬운 소리하지 않고 살게해준
원천자금이 되어 주었다.
시아버지가 양복점을 하셨다는 흔적은 남편이 바느질과 다림질을 나보다 잘하는 걸로
증명이 된다. 애들 교복이며 바지단 터진거, 자기 옷 바느질 하는 거 남편은 모두 스스로 한다.
테일러집안의 장남답게 바느질하는 모습과 다림질하는 모습이 참하다.
물려받은거 없이 재봉틀 한 대로 시골 양복점에서 마련하신 노후는 이름이 희망라사여서 가능했을까
희망하나로 창업하신 양복점으로 집도 사고, 땅도 잠깐 샀다 팔으셨다하고
시어머니가 밭농사 싫으시다고 팔으셨다는 전설로만 전해지는 익산 시외의 땅-.-
어머니 진짜 왜 그러셨어요. -.-

그래도 자식들도 공부시키고, 지금까지 그 돈으로 노후를 보내고 계신걸로 보아
이름값 톡톡히 하고도 남은 "희망라사"다.
이십 팔년전 결혼했을때만 해도 누가 나를 부를 때 희망라사 큰 메누리라고 하던데
이젠 희망라사는 사라졌고 처분하지 못한 재봉틀은 창고방에서 옛날 바빴던 시절을
혼자서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인생에 좌회전 우회전은 없고 직진만이 있는 분이 우리 시아버지시다.
따뜻한 말 한마디 듣기 어렵고 배려하는 말 같은 건 없는 분이신데
이번에 용돈을 드리고 반전이 일어났다.
"나 돈 있다. 니가 준 돈은 너무 많고 너도 애들 데리고 사느라 힘든데 이렇게 많이 줄 필요없다"
50만원을 용돈박스로 만들어서 드렸는데 액수를 들으시고 지갑에서 이십만원을 다시 꺼내서 주시는데
저 분이 나의 시아버지 맞나 잠시 의심을 했지만
작은 눈, 마음껏 희어버린 흰머리 내 시아버지가 맞았다.
"너도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하는데 이렇게 많이 필요없다"
돌려받은 돈보다도 한번도 시아버지에게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것같다.
이십만원과 함께 건네 온 그 말씀으로 나는 우리 시아버지가 굉장히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오은영박사에게 상담을 받았을리도 없는데 혼자서 어느새 알아서 변해버린 금쪽이 시아버지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멀리 가지않고도 나만 봐도 아는데
시아버지께서는 확실히 달라져서 어른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고보니, 몇 달 전에 있었던 시댁에서 있었던 가족 묘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아버님, 저는 아버님이랑 함께 묻히기 싫으니 저는 빼주세요"라고 가족 묘지에서
큰며느리 빼달라는 차돌같은 소리를 했을 때 시어머니는 분노하셨지만
정작 시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런게 바로 달라진 건데 그땐 잘 몰랐고,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다지 좋을 일도 싫을 일도 없는 시어른들이지만
그래도 시댁 가족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불편한것이 나의 경우였다.
시동생 둘이 있는데 한 사람은 얼굴도 마주치기 싫을 정도로 싫고 또 한사람은 만나면 반갑고
가깝다고 느껴지나, 코드는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다보니 시댁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결혼하고 지금까지 편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완고한 고집쟁이 시아버지도 마음이 물러져서 따뜻한 말씀을 해주시는 걸로 봐서
우리 시아버지 오은영박사에게 우리 몰래 상담받고 온 게 아닌가 싶지만
오은영박사가 누군지도 모를 시아버지에게 그건 억울한 말이고
확실히 우리 시아버지는 달라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