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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봉봉 Dec 10. 2018

술 없는 금요일 EP 3.

갑(자기).분(위기).마(흔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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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서 만나 강남으로 이동한 나와 J는 평소 자주 가던 동네 카페에 도착했다.

주차공간이 꽤 넓은 곳인데 차를 댈 곳이 한 곳도 없다.

언뜻 보니 카페 안에도 자리가 없어보인다.

삼삼오오 모인 테이블도 있지만, 1인용 PC 족을 위한 바(bar)형 테이블도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금요일 밤이었다.


"히야, 금요일 이 시간에 이 넓은 카페가 만석이네?"

J가 신기함 반, 반성 반이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나 역시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우리만 빼고 다들 '술 없는 금요일'을 보낸 모양이다.

무엇이 되었든, 프로덕티브한 시간을 보내리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차 안에서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음에도, 카페에 자릴 잡고 앉으니 또 할 얘기들이 태산이다.

이런저런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늘어놓고나니 그 중 7할은 회사 이야기이다.

J는 최근에 과장으로 승진해서 새로운 업무 포지션에 배치되었고,

나 역시 비슷한 시기에 팀을 옮기게 되어 새로운 팀원과 업무에 대해 생각들이 많았다.


"그래서 과장다니까 좀 어때? 이제 니가 너희 부서에 공식적으로 허리가 된거잖아."

"죽겠다야. 예전에는 상무회의에 들어가도 이 정도로 압박이 느껴지진 않았는데,

이젠 뭐 피티 질문 나올때마다 수치같은 데이터들 백업을 내가 해야되거든.

진짜 다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회의 전후로 압박감이 들더라구."


J는 올해부터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주말에도 출근해서 일하는 모습도 종종 봤다.

항상 회사에서 능력도 인정받는 J였지만 이렇게 과욋공부를 하는 모습은 처음본다.

남미여행가려고 그 전에 다니던 회사도 그만 뒀던 J이다.

그렇게 free 한 인간이었는데,

3개월의 여행 후 돌아와 7개월의 구직 기간 후 다국적 기업으로 이직하는데 성공한 이후로

J는 정말 스스로를 갈아넣으며 일하고 있다.

물론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지쳐가고 있는 것을 스스로 느낀지 오래이다.


하지만 J가 이렇게 회사에서의 업무 퍼포먼스에 열을 올리는 것은

단순히 회사 내에서의 성공과 승진을 위한 욕망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회사가 절대 그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회사를 만약에 내 발로 나가지 않는다해도 길어봐야 마흔다섯? 그때 쯤이면 나와야 할거야.

그 생각을 하면 아직 부족하지 뭐."

외국계에 다니기 때문에 J가 바라보는 커리어 리듬은 훨씬 빠르다.

J의 상사였던 이사도 40대 초반이었고, 위로 올라갈 자리가 보이지 않자 이직했다.

그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J역시 그런 미래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제 내 또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7-8년차가 대부분이다.

어느샌가 모임을 나가보면 번듯한 회사에 계속해서 다니는 것보다

더 나은 연봉과 조건을 받아서 다른 회사에 이직하는 경우를 더 능력자라고 칭하는 풍토가 있었다.

회사 안에서의 퍼포먼스를 쌓아서,

다른 회사에 이를 인정받아 가는 것.

이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절대 대충 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 로스쿨 얘기했던거 기억나지?"

그러고 보니 두 세달 전 쯤 J가 갑자기 퇴사하고 로스쿨을 들어가 볼까 한다고 얘기해서 내가 보따리 싸들고 쫓아다니며 말린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초 포화 상태인 그곳에 왜 뛰어들려고 하냐며, 회사가 아무리 답답해도 그 길은 가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론 로스쿨 얘기는 다시 꺼내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그 얘길 다시 꺼낸다.

"난 아직도 진심이야. 회사는 진짜 길어야 15년? 그 정도면 수명 끝이라고 본다.

근데 그래도 남은 여생은 너무 긴데, 이직도 한계가 있을 거고.

결국은 내 전문성이 있어야 먹고 살거 아니야.

언제까지 회사 안에서 내 자리 찾아 이렇게 갉아먹으면서 일할 수 있겠어.

난 이런 고민을 마흔 다섯살에 하고 싶진 않아. 그 땐 이미 늦은거야.

지금부터 준비해야지."

조금은 느린듯,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여기까지 말하던 J는

이내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물론 아직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마흔 다섯. 지금으로부터 10년 하고도 조금 더 남은 시간. 우리는 정말 그 때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직 수명은 반도 넘게 남았으리라 추측하는데,

마흔 다섯이 지나면 회사 내에서 혹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우리가 서있게 될까?

그 때도 우리는 열정적일 수 있을까?

부족한 부분은 학원을 다니고, 주말에도 업무 파악을 위해 출근하고,

그렇게 해서 능력을 인정받아 다른 어느 곳으로 이직할 계획을 세우고.

그때도 그렇게 살고 있을까?

그런 에너지가 남아있을까?

업계는 그런 우리를 여전히 사들일 생각이 있을까?

참으로 막연한 고민들이다.

하지만 절대 좌시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도 J도 긍정적인 인간이지만 문제상황이 생겼을 때 손 놓고 있지 않는 스타일이다.

어떻게든 정면돌파해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누군가는 그런 방식에 대해서 '세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우리에 대해서 '열정적이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커리어란 아무리 우리가 정면돌파 하고자해도 쉽지 않은 것들이 다반사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절대 1+1=2 의 공식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혹은 문제의 실체가 전혀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회사 밖에서 이야기를 늘어놓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다.


이렇듯 기로에 서있는 것이 우리네 나이가 아닌가 싶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 크고 작은 계획을 세우는 32세.

욜로와 착실함의 기로.

그 안에서 찾아오는 가치관의 흔들림.

사춘기는 진작에 지난 줄 알았는데, 방황의 시기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다만 현대인의 삶에서 이런 방황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혼돈의 시기는 이제 익숙하다.

입시기간, 취업기간. 불확실의 시대를 계속해서 걸어온 우리는 혼돈과 방황에 익숙하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를 통해 나에게 맞는 가치관을 계속해서 재단하고 수정해왔고, 그런 마음의 근육이 있기 때문에 이 시기도 건강하게 헤쳐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기록해보고자 한다.

새로운 혼돈 속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나의 주변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혼돈을 뚫고 나가리라는 무모함은 뒤로하고

이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맞이하기로 해본다.


그렇게 어느 혼돈과 방황의 파도 속에서

그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과제를 떠 안은채

술 없는 어느 금요일은 흘러갔다.


- 어느 32세의 자문자답; 술 없는 금요일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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