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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Nov 02. 2019

부끄러움의 상실

누군가는 와인처럼 늙고 싶다고 했다. 오래된 와인처럼 잘 숙성되길 기다려 깊이가 있는 맛을 마침내 가진 와인처럼 늙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문구는 늘 와인 바에 가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나쁜 와인을 아무리 오래 두어도 좋게 숙성되지 않는 것처럼, 나이만 먹는다고 생각 깊은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 주위에는 어른 같지도 않은 다 자란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어른이기에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들은 어른인가? 그저 나이 든 사람인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또 어이가 없게도 대체로 당당하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만큼 답답한 사람도 사실 없다. 

우리는 늘 그런 나이만 먹고 늙은 사람들에게 착취당하며 살아왔다. 어쩌면 저렇게 살아야 이 험한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참 많다. 

우리 주위에는 꼰대가 많다. 그들은 좋은 시절에 태어나 좋은 시절은 다 누리고 이제는 우리를 착취한다. 그저 나이만 많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리고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는 그런 예의 없는 꼰대들에게 너무 착하고 비굴했다. 힘없고 어린 자도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십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늘 나이 든 세대가 미래 세대의 환경을 망쳐 놓았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도 어른들을 무조건 존경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곱게 늙을 것인가? 말도 안 통하는 꼰대가 되어갈 것인가? 물론 담배도 과한 음주도 하지 않고, 거의 매일같이 헬스장에서 살다시피 하기에, 내 나이를 들은 사람들은 조금 놀란다. 다들 20대 후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내 자랑이다.) 그리고 외국 사람들은 동양인들의 나이를 좀체 가늠하질 못한다. 

나의 실제 나이에 놀란 외국인들을 만나면 난 장남 삼아 말한다.

"사실 성형수술의 도움을 좀 얻었죠."

그리고 그들은 놀란 눈으로 그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인다. 

"역시 성형 선진국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군요!!"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언제가 '이제는 곱게 늙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다. 어떻게 곱게 늙을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답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답글을 달았다. 

"부끄러움을 잃지 않을 것"

부끄러움, 확실히 나는 나이가 들면서 그 부끄러움을 잊어가고 있다. 

정확히 그분이 말한 '부끄러움'은 아니지만, 나는 나이가 들수록 부끄러움을 상실하고 있다. 젊을 때의 나는 까만 봉지를 들고 다니는 것도 부끄러울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았다. 동네 슈퍼에 갈 때는 언제나 말끔히 차려입고 나갔다. 동네 슈퍼에서 지인을 만나던 만나지 많던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남의 시선을 너무 신경 썼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변했다. 나는 이젠 하루 정도 수염을 깎지 않아도 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누두 해변에 가서 아무렇지 않게 훌러덩 옷을 벗고 남들처럼 자유로이 수영도 한다. 그렇게 남들의 시선도 그냥저냥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이런 류의 부끄러움은 잃어도 된다. 남의 시선의 의식해 본연의 나다움을 해치는 부끄러움은 없어도 된다.

그러나 그 어르신이 말씀하신 "부끄러움"이란 다른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대체로 부끄러움을 잃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가진 가치나 도덕의 기준마저 그 상실 속에 포함되서는 안 된다는 말'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늙어서 뻔뻔해진다. 돈과 명성, 나이를 동시에 가진 사람이 겸손한 것을 보기는 사실 힘들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잃어가는 것들이 많다. 피부의 탱탱함, 남자에게 그렇게 중요하다는 스태미나, 시력, 기억력, 창의력, 의지, 체력, 새벽잠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잃어간다. 그중에 우리는 부끄러움마저 잃어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끄러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르신의 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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