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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Apr 19. 2020

먼저 빰을 때리면 이긴 걸까?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소위 일진이라는 아이와 소위 범생이라는 아이가 싸움에 휘말렸다. 일진은 키가 작고 왜소했고, 범생은 큰 키에 덩치가 컸기에 육체적으로만 보고 평가를 하면, 범생이 싸움에서 이길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오래전 기억이라, 누구의 잘못으로 시작되었는지 혹은 어떤 뒷 배경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내가 확연히 기억하고 있는 건, 키 작은 일진이 키 큰 범생이 빰을 한 대 후려갈기고 난 뒤의 일이다.

이런 난리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 하나가 나서서 싸움을 말리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숨 죽인 듯한 침묵이 흘러서, 두 명의 싸움이 더 부각될 뿐이었다. 물론 나도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그리고 일진의 그 따귀를 맞고 싶지 않아 가만히 그들의 타툼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어쩌면 별 대수롭지도 않을 일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는 건, 빰을 때리고 난 뒤에 발생한 일 때문이다. 빰을 한 대 일방적으로 받은 범생은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조금 당황한 듯은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옅은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일진에게 맞았다는 부끄러운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

타인의 빰을 후려갈기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던 일진은 주먹으로 책상을 한 대 더 내려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손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는 범생을 위협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범생이 일진에게 말했다.

"다 좋은데, 너 피 흘리는 손부터 치료하고 다시 싸우자."

그 뒤로 어떻게 사건이 진행이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싸움은 그렇게 흐지부지 맥없이 종료되고 말았다.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던 상황의 그 범생은 어떻게 그렇게 평온한 얼굴로 자신을 때린 자의 다친 손을 걱정할 수 있을까?

 

이 고등학교 때의 사건은 이후로도 나에게 많은 질문을 남겼다.


1. 먼저 선빵을 날려, 빰을 때린 애는 이긴 걸까? 진 걸까?    

누군가는 일진이 이겼다고 말할 것이다. 병신같이 얻어맞아 터지는 놈이 바보라고 말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물론 신체적 피해를 당하긴 했지만, 먼저 손을 내민 범생이 이긴 거라고 말하는 '달라이 라마' 급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모르겠다. 누가 이겼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2. 싸움에 휘말리면, 누가 나를 도와줄까?

그 둘의 싸움에서 모두가 침묵으로 일관을 했듯이, 내가 만약 저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누가 내 편을 들어줄까? 특히, 내 편을 들어 육체적 혹은 경제적으로 피해가 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물론 예상 답은 우울 정도의 예측일 뿐이다.


3. 나에게 악질로 대하는 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때로는 일방적으로, 악의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분하고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싸움을 걸어왔다면, 나도 되갚아 줘야만 했다. 내가 100의 피해를 봤다면, 상대는 그 이상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50의 피해를 봐야 적성이 풀렸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타인에게 먼저 손을 내민 적은 없었다. 싸움은 이겨야만 했다. 선의의 경쟁이라면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싸움을 걸어왔다면 나도 그만큼 되갚아 줘야 했다. 내 지식과 힘이 닿는 데까지 말이다.

나는 아직도 그 10대의 범생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4. 누군가는 범생이 이겼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일진의 논리로 흘러간다.

누구나 다 안다. 범생의 행동이 더 멋지다는 것을 말이다. 선한 행동으로 악한 싸움에서 이겼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속세에는 그런 게 없다. 범생처럼 살았다면, 우린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최소한의 정의가 갖춰진 세상, 범생이 싸움에서 이겼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혹은 적어도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올바른 삶을 살아갈 용기를 가진 자이길 바란다.


5. 살면서 누구를 존경할 것인가?

세상에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 꽤나 있다. 존경할 대상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같은 상황에서 주인공만 교체를 하면 된다. 즉, 범생과 일진의 싸움에서, 내가 범생의 상황이라면 똑같이 행동했을까?

답은 "아니다!'이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 나는 그 상황에 놓인 내 처지가 부끄러웠을 것이고, 분을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면서도 싸움을 받고 일진을 반격할 용기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피가 나는 걸 보고 인가응보라고 속으로 기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 10대의 범생을 존경한다. 그의 상황에서 나는 그처럼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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