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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May 07. 2020

그들의 삶 속으로

실론티의 나라

우리나라에서 스리랑카는 실론티(Ceylon Tea)로 유명하다. 이 실론이라는 이름은 1505년 포르투갈이 식민지를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국명이다. 이후 네덜란드, 영국 식민지 시대까지 사용되었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지금의 스리랑카로 나라 이름을 변경했다. 한 국가의 이름 뒤에 Tea(차)가 붙어서 대명사가 될 정도로, 영국이 남긴 홍차 산업은 아직까지 전 세계로 수출될 만큼 건재하다. 

이 나라 사람들의 홍차 사랑은 대단하다. 현지인들은 일어나자마자 차를 마시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일을 하는 중간에는 꼭 티타임이 있고, 먼 길을 가다가도 꼭 휴게소에 들러서 차를 한 잔씩 마신다. 그 더운 열대지방에서 아이스티도 아니고, 뜨거운 홍차를 마시려면 어지간히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 달달한 홍차는 설탕이 무지막지하게 많이도 들어간다. 그러나 더운 날씨에 그 달달한 홍차를 마시고 나면 피로가 싹 가신다. 정말 신기하게도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일상이 되어 간다.

스리랑카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현지인 가정집에서 홈스테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주인집 아저씨는 매일 아침마다 끼리떼(우유를 섞은 홍차, milk tea)를 대접했는데, 그 맛은 정말 잠이 달아날 정도로 달았다. 아마도 우유 반과 설탕 반에 홍차를 우려냈음이 틀림없었다. 

차를 마시는 습관 때문에 학교에서도 수업 중간에 한 번씩 차를 마시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 이 시간이 되면,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교내 휴게실로 가서 수다를 떨면서 차를 마신다. 학생은 선생 흉을 보고, 선생은 학생 흉을 보니 차 맛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홍차 한잔의 즐거움

홍차 한잔에 8루피다. 설탕을 빼고 마시면 설탕 값을 빼주기 때문에 더 싼 가격에 마실 수 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80원이다. 스타벅스나 커피빈에서 한잔 마실 돈으로 여기선 대략 60잔을 마실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물론 이 찻집의 환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커피 프랜차이즈 점과는 차이가 크다. 차의 질도 떨어지고, (품질 좋은 차는 대부분 수출이 되고,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찌꺼기 같은 저품질의 차를 현지인들은 마신다) 편안한 소파 대신 딱딱하고 녹슨 철재 의자에 앉아야 하며, 귀를 즐겁게 하는 라운지 음악 대신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음을 견뎌야만 한다. 

그래도 나름 운치가 있고 유용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이용해 동료 선생님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에서 돌아가는 사소하지만 알면 있으면 유용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사들이 차를 마시는 독립된 공간을 나오면, 학생들이 간식과 차를 마시는 커다란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학생들과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교류가 가능하다. 딱딱한 수업에서 벗어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신난 아이들의 머리도 쓰다듬어 주다 보면 어느새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그렇게 서로 머쓱하던 사이는 어느새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차를 마시는 시간엔 단지 차만 마시는 게 아니다.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봉사활동이란 먼저 현지인들과 근거리에서 부대끼며 살을 맞대는 친밀감이 필요하다.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를 형성하는 순간, 공식적인 업무를 넘어선 개인적인 정보와 친밀감이 넘나들기 시작한다. 이것은 봉사활동을 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들의 삶을 우리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일단 발을 들여야 한다. 그들의 삶 속에 먼저 들어가야 한다. 그게 봉사의 첫 출발점이다. 

그래서 난 이 시간을 무엇보다 기다린다. 현지인보다 치밀하게 차 마실 시간을 기다린다.

“우리 차 한잔 마시러 갈까요?”

이렇게 주변의 선생을 모아서 차를 마시고 현지 간식도 챙겨 먹고 나면, 혼자 몰래 빠져나와 계산을 치른다. 여러 사람이 마시고 먹는 값은 100루피도 안 된다.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 정도다. 이것도 남아서 늘 40-50루피는 거슬러 준다. 


많은 한국 봉사자들이 위생을 이유로 학교 매점에서 차를 마시길 꺼려한다. 

물론 이곳이 조금 (혹은 아주) 더러운 편이다. 여러 사람이 사용하던 컵은 대충 물이 담긴 양동이에 잠깐 넣었다가 씻어내는 게 전부다. 생수 대신 위생이 염려되는 지하수를 이용해 차를 우려낸다. 여기저기 지저분한 환경에서 그렇게 식욕이 끓어오르지는 않는다. 딱 설사가 걱정되는 그런 환경이다. 

오래된 벽은 구정물이 튀어 더러워진 지 오래지만 페인트칠을 하지 않았다. 선반에는 먼지가 쌓여가고 있지만, 손이 닿지 않아 청소도 하지 않는다. 스리랑카 어디를 가도 있는 개미는 줄을 지어 부지런히 먹을 것을 나르고, 가끔 보이는 바퀴벌레까지 주변을 기어서 다니거나 날아다닌다. 식욕을 확 떨어뜨리기에 충분한 세상의 거의 모든 요소는 다 갖추고 있다. 

아쉽게도 한국인 봉사자들은 스리랑카에 딱 하나 있는 커피빈(미국 체인 커피숍)의 추종자들이다. 물론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지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 그들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도시의 편리함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생을 이유로 현지인과의 티타임을 거부하는 건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행동에서 소통의 장벽이 생긴다. 그깟 차 한잔 같이 안 했다고 현지인과 단절이 생길까 싶지만, 사실 그런 사소한 일에서 현지인들은 우리 외국인 봉사자와 거리를 느낀다. 그들과 나의 다름을 스스로 부각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기호를 즐기는 행위는 서로에 대한 긴장과 경계를 해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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