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안종현 May 10. 2020

남의 나라에서, 스승이 되다

어쩌다 스승이 되었다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나의 지식은 언제나 불충분하다는 생각 했다. 누군가에게 나서서 나의 지식을 알려줄 만큼의 자신감도 없었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지식도 검증이 필요하거나 엉터리일 가능성이 높다고 치부하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 남의 나라 스리랑카에 와서 선생이 되어버렸다. 선생님이라는 직함, 그들은 영국 식민지의 영향으로 남자 선생은 SIR라는 호칭을 붙인다. 

비록 스리랑카에 와서 수업을 맡아 진행하고 있지만, 학생과 나 사이에 선생과 학생이라는 관계의 색이 끼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러므로 해서 학생들이 나를 친구나 형, 오빠처럼 스스럼없이 편안한 관계, 혹은 그 비슷한 관계로 여기길 바랐다. 선생이라는 직위는 때로는 나를 자만하게 만들 수도 있고 귀여운 아이들과 거리감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괜한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혁신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그들의 가난도 변함이 없었다. 많은 봉사자들이 현지에서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큰 포부를 가지고 오지로 떠나지만, 실상 우리 봉사자들이 많은 일들을 하지는 못한다. 그건 허구이며 허상이다. 마치 큰 혁신을 불러온 것처럼 보이는 NGO나 코이카의 빛살 좋은 선전문구는 과장이거나 허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허무한 해외봉사활동을 계속할 필요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그렇다!’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개인의 행동으로는 그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당장은 힘들 것이다. 해외봉사나 국제개발을 위한 국제적 동조는 우리가 다른 곳에서 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잃지 않게 해 준다. 

(부끄럽게도) 나는 국제개발에 대해서 상당히 회의적이지만, 이러한 연결된 존재의 감각을 가지고 꾸준히 그리고 집단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진정성은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던져야 한다. 국뽕으로 점철된 국제개발이 아닌, 소수 엘리트 집단에 의해 전달되지 않는, 소수 엘리트 집단이 수혜를 독차지하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숨은 목적(이익)이 덜 존재하는 국제개발이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이제까지 내가 봐왔던 국제개발이란 그저 허울 좋은 뒷돈에 불과한 것만 같았다. 우리나라 기업이 개도국의 신흥시장에서 더 잘 먹히기 위해 합법적인 혹은 도덕적인 것처럼 잘 포장된 <뒷돈>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합법화된 뒷돈... 그런 목적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국제개발은 섣불리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만다. 극단적으로 진짜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고, 오히려 이미 돈이 많은 사람들이 독차지하는 꼴이 되고 만다. 혹은 효율성 없이 낭비되기도 한다.

 


어느 날이었다

한 쌍을 지은 학생들이 공책보다 큰 거대한 나뭇잎을 내게 건네주었다. 난데없이 무슨 나뭇잎을 주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초대장이었다. 역시 이곳은 스리랑카구나 싶었다. 초대장도 근처 나무에서 잘 골라 딴 잎사귀라니. 그 위에는 손수 초대의 글을 써 놓았다. 녹색 바탕에 조심스레 쓰인 흰색의 글씨. 다만 현지어로 쓰인 글이라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편지를 건넨 학생에게 물으니 스승의 날 행사에 나를 초대한다는 내용이란다. 참석하겠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초대장은 학생이 선생에게 보이는 존경의 표시와도 같다. 그들은 일일이 선생을 직접 찾아가 이렇게 나뭇잎 초대장으로 참석을 요청한다. 이메일 초대장이 우편 초대장을 대신하는 시대에 이런 수고로움이 대단히 살갑게 여겨지지 않을 수 없다.

행사 참석에 있어서 외국인은 저명한 인사는 아니더라도, 지역사회에 자랑 아닌 자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장례식이나 제사, 결혼식 등에 초대받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런 경우 초대하는 이가 외국인 친구를 자랑삼아 지인들에게 소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별 유명인사도 중요한 사람도 아닌 나지만, 이곳 스리랑카에서 조금 잘 산다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은 특별한 취급을 받게 된다. 의도치 않았지만,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처음엔 상당히 불편하던 일들이 우리 봉사자들의 일상이 되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느다. 그렇게 우리는 일명 <연예인 병>에 걸린다. 자신이 무슨 높은 위치에 높은 사람인 양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런 상황은 상당히 위험하기도 하다. 


나에게 스승이었던 사람들

지금이야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나의 학창 시절 스승의 날은 걱정으로 가득한 날이었다. 어떻게 체면치레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형편에 내 어머니에게 부담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어떤 선물이 궁색하지 않고 적당한가에 대한 의논으로 부모님과 머리 맞대고 고민한 기억이 선명하다. 그날의 교실 아침, 선생님의 책상 위에는 알록달록하게 포장된 상자들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한때 내가 아주 존경하고 따랐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서도 그 선생의 따스함이 그리워 가끔 어머니에게 말하곤 했었다.

“엄마, 아무리 생각해봐도 초등학교 때 그 선생님만 한 스승이 없는 것 같아요. 참 다정하고 속 깊은 분이셨는데.”

이제는 내가 어느 정도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어머니는 그동안 숨겨 오셨던 비밀을 털어놓으셨다.

“애아, 사실은 그 선생. 그렇게 좋게만 생각할 사람이 못된다.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없는 살림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동안 네가 너무 좋아하고 어려서 말은 못 했지만, 철 바뀌면 무슨 행사 챙겨달라, 무슨 특별한 날 챙겨 달라고 하면서 선물이나 음식, 상품권, 때로는 돈까지 요구하느라 아주 정신이 없었단다. 나중에는 그 선생한테 오는 전화도 무서워지더라니까.”

이때까지 존경해왔던 스승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인간으로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그 선생님의 자상함은 어머니가 학교에 치맛바람으로 날랐을 정성에 대한 보답이었다. 맙소사, 나는 그런 속사정도 모르고 있었다니. 물론 대다수의 선생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의 어릴 적 선생은 돈을 매개로 한 스승과 제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무리 자상한 선생님을 만나든 그분을 진심으로 대하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선생도 직업의 한 종류로 분류되었고, 학생을 가르치는 게 하나의 일이 되어버린 세상에 무얼 더 바라겠는가?



나는 스승이 될 자격이 있는가?

이런 트라우마를 가진 나에게 이날 학생들이 보여준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사뭇 색다른 체험이었다. 행사장을 안내하는 미소를 가득 띤 학생, 입구부터 줄을 지어 선생을 맞이하는 학생, 정성스레 준비된 행사장의 모습, 선생을 위해 준비한 감사의 노래와 연극, 시 낭송 등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하나하나 풀어보는 것만 같았다. 돈으로 포장하지 않은, 그들의 정성으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행사는 코코넛 오일을 용기에 담은 작은 탑에 불을 붙이면서 시작된다. 심지에 불이 붙자, 방안 가득 코코넛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이 작은 불 조각은 방안의 열기를 더한다. 어제 초대받은 선생님들이 일일이 학생의 입으로 호명된다. 강단에 올라선 선생에게, 담당 과목을 대표하는 학생이 조그마한 선물을 주면서 자신의 몸을 최대한 바닥에 낮추고, 선생님의 발등에 손을 얹고는 존경을 표한다. 선생님의 인기에 따라 학생들의 환호 또한 다르다. 마지막 차례에 내 이름 ‘아루너’가 호명되었다.

아이들이 환호하기 시작한다. 일어나며 환한 웃음과 손인사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만, 왠지 모르게 어색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강단에 올라 내 발등에 손을 얹는 학생을 만류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 스리랑카의 격식을 차린 인사는 2년 동안 나를 계속 안절부절못하게 만들 정도로 부담스러운 예절이었다. 서둘러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와 앉는 순간 난 뿌듯함에 앞서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별다르게 가르치는 것 없이 받는 선생의 마음은 부끄럽기만 하다. 

조용해진 분위기가 되자, 나는 나에게 되물었다.

"이렇게 환영을 받아도 되는가? 이렇게 나는 스승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늘 부족했던 나에게 너그러웠던 스리랑카는 무언가를 주러 갔던 나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기만 했다. 

사실 내가 그들을 도왔던 것이 아니라, 망가진 나의 마음과 정신을 고쳐진 것은 그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의 삶 속으로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