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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May 24. 2020

혼자됨의 즐거움

가끔 친구들은 묻는다

“스리랑카, 거기 생활이 어때?”

그런 질문을 받으면 일단 “여긴 그냥 덥다가 어느 날은 무지막지하게 더워.”라는 시작 한다. 그 덥고 습한 날씨가 스리랑카 생활의 전반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좋긴 한데, 근데 가끔 외로워서 그게 좀 그래..."

외로움은 해외봉사의 숙명과도 같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개발로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다니다, 이제는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바로, '더 이상 이 외로움을 견뎌낼 자신이 없는' 자신과 마주할 때이다.  

외로우면 친구를 만나거나, 고양이를 키우거나, 그것도 안 되면 여자 친구를 만들라고 조언을 할 수도 있다. 아, 물론 맞는 말이다. 근데 그것도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친구는 내가 사람을 가리는 성격이라 쉬이 생기질 않고, 고양이는 키우다가 정들면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때 데려갈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못 키웠고, 여자 친구는 한국에서도 만들기 어려웠다고 말하고 싶다. 

이쯤 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도 참 까다롭다." 

"응, 좀 그런 편이야." 이젠 그런 말들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떻게 하겠는가?

스리랑카에서 살아남기

스리랑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론 봉사에 전념하느라 바쁜 사람도 많지만, 외로움과 싸우거나 외로움과 친구가 되는 길을 택해야 한다. 

한국을 벗어나면 한국처럼 24시간 놀아대는 문화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해가 지면 무섭게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자취를 감춘다. 제 아무리 놀고 싶다고 한들, 혼자서 길거리에서 놀 수는 없지 않은가? 

다행히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물론 그렇다고 대인기피증이 있거나,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을 꺼리는 건 아니다. 다만 혼자 있으면 마음대로 옷을 벗거나 다리를 책상에 올려도 되고 발을 만지작거리다가도 음식을 집어도 되지만, 타인이 동석한 자리에서 어지간해서는 그런 행동을 하기 힘들다. 아마 그랬다간 상대방은 다시는 나를 만나려들지 않을 것이다. 


고급 취향은 한국에 버리고 오라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차를 마시러 갈 때는 어떤가? 개인적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보통 길을 가다가 눈의 띄는 아무 곳으로 들어가 아무거나 먹는다. 하지만 내가 아는 지인들은 모두 미식가다운 기질을 가지고 있어, 그들과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약간 복잡하고 성가시다. 그들은 음식의 맛과 질은 물론이고 풍미를 돋우는 분위기까지 고려한다. 이보다 더한 사람은 식당에서 사용하는 접시까지 신경을 쓴다. 

이런 까다로운 사람 같으니라고. 이런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여긴 스리랑카가 아닌가. 아니, 도대체 왜 그런 고급 풍미를 여기까지 와서 고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현지인들을 보라. 그저 위생만 좀 신경 썼다면 그나마 다행인 곳에서 식사를 하지 않나. 

아, 그리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메뉴 고르기는 어떤가? 메뉴를 못 정하고 데이트에 나오면 어김없이 ‘이러고도 남자가 맞는가?’라는 비난을 들어야 한다. ‘뭔 남자가 뭘 먹을지 생각도 안 하고 데이트를 나오냐?’라는 비난 말이다. 이렇게 성평등이 시간이 갈수록 고취되어 가는 시대에 살면서 이런 핀잔을 받는 남성의 입장은 억울하다. 

복잡한 메뉴를 고르는 일은 내겐 정말 곤혹스럽다. 내가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고 선택을 하면, 아니 뭘 그런 걸 먹으려 하냐고 핀잔을 듣기 일쑤다. 

'아, 그럼 선택을 하라고 하질 말던가.' 

메뉴판을 들고 나는 생각한다. 

‘이걸 시키면 사람들은 욕할까?’ 전전긍긍해하면서 말이다.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차라리 혼자 식탁을 차지하고 내가 맘에 드는 음식을 먹는 편이 속 편하다. 그나마 스리랑카의 음식점은 다양한 메뉴를 구비하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활용하라

여하튼 스리랑카에서 지낸 지 오래된 봉사단원들은 나름대로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여가시간에 주로 청소를 한다. 그래서 일부러 집도 큼직한 걸로 구했다. 집이 크면, 청소할 곳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청소는 마치 명상과 같아서 빗자루로 쓸고 걸레질을 하다 보면 어느덧 콧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하면서 외로움과 같은 복잡한 감정에서 해방된다. 나도 가끔 복잡한 일이 생기면 책상 서랍을 죄다 꺼내 방바닥에 쏟아버리고, 다시 하나하나 정리를 하곤 했었다. 나중에 다 정리된 서랍을 보면, 내 머리도 깔끔한 서랍장처럼 정리된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다른 봉사단원은 요리에 취미를 붙인다. 비록 혼자 먹는 음식이지만, 예쁜 노리타케(Noritake, 일본 자기 회사)나 단코투와(Dankotuwa, 스리랑카 자기 회사) 그릇에 음식을 반듯하게 담아내고 와인 잔에 생수까지 곁들여서 먹는다. 난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또 어떤 이들은 서핑에 빠진다. 섬나라의 이점을 살려 마음만 먹으면 거의 일 년 내내 서핑을 즐길 수도 있다. 여름에는 동부에, 겨울엔 남부에 서핑에 적합한 파도가 일고, 바다가 아름다워진다. 히카두와(Hikkaduwa), 웰리가마(Welligama), 아룬감 베이(Arungam Bay)에는 서핑으로 유명한 비치가 있어, 시즌이 다가오면 보드를 둘러맨 서퍼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다. 파도 위에서 멋지게 균형 잡고 보드를 타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독특한 취향이 극대화되기도 한다

이건 조금 다른 특이한 경향이긴 한데, 어떤 이들은 특정한 기호식품에 빠지기도 한다. 이 기호식품은 주로 술과 담배에 한정되는데, 이상하게 한국에선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이 어느덧 맨 정신으로 살아가길 포기한 사람처럼 술을 퍼마셔대기 시작한다. 또 한국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사람이 무섭게 담배를 피워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술을 마시던 사람이 술을 끊고, 담배를 피우던 담배를 끊는 반대의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 TV 드라마 ‘로스트(LOST)’를 보면, 이상한 섬에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주인공들이 특이한 행동을 보이는데, 내가 보기엔 그 드라마의 실제 섬이 스리랑카가 아닐까 싶다. ‘아, 한국에선 안 이랬는데.’라며 술을 마시고, ‘아, 한국 가면 끊어야지.’하면서 담배를 피운다. 

그렇게 논리적이지 못한 추리로 생각해 보건대, 이런 특정 기호식품에 집착하는 경우는 한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기호 행위가 가능했지만, 스리랑카에서 지내게 되면서 기호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선택할 수 있는 기호 행위가 많지 않기 때문에 광기에 가까울 정도의 빈도로 발전하는 것 같다. 하긴 한국만큼 우리의 다양한 기호 행위를 만족시켜주는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오늘도 나는 혼자 다닌다

화창한 어느 날이었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다 집주인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언제나 내 일에 관심이 많은 아주머니다. 집안일이 지겨워지면 꼭 나를 염탐하려고 두리번거린다.

‘이 녀석이 또 어딜 가나.’ 표정으로 묻는다. 

“헬로우, 아루너. 오늘은 어딜 나가는 거야?”

“아, 날씨가 너무 좋아서 네곰보(Negombo)에 놀러 가요.” 

“누구랑 가는 거야? 설마 혼자 가는 건 아니지?” 

오지랖이 넓으신 우리 주인집 아주머니는 걱정이 태산이다. 이게 다 나 때문이다.

“혼자 가는데요.” 

순간 아주머니의 얼굴에 의아함이 묻어나면서 정색을 하며 말한다.

“헉, 네곰보에 혼자 갈 수는 없어. 아루너.”

‘뭐지. 네곰보에 내전이라도 터졌나.’라는 의문에 물었다. “아니 왜요?”

순간 돌아오는 대답에 풋 하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혼자 가면 심심하잖아.”

혼자 가도 절대 심심하지 않다고, 걱정하는 주인집 아주머니를 설득하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해외봉사의 반은 혼자서 지내는 외로운 시간과의 대면이다

어떤 이들은 혼자서 밥을 못 먹는다. 또 어떤 이들은 혼자서 여행 다니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한다. 그러나 혼자됨은 때론 나에게 나만 집중해서 생각할 시간을 준다. 남에게 듣기 좋게 일부러 맘에도 없는 칭찬을 하거나 관심에도 없는 대화를 한다고 나오는 하품을 가릴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너무 혼자 지내면 정신에 이상이 오겠지만, 때로는 이렇게 혼자되는 시간에 조용한 침묵을 즐겨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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