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현 Jun 04. 2020

졸업식, 애들이 운다

스리랑카의 아날로그 졸업식

학교에 들어서자 새하얀 옷을 단정히 입고, 아침부터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이 보인다. 

오늘은 졸업식이다. 호마가마 기능대학으로 파견되어 온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의 수업과정이 있지만, 대부분이 1년이기 때문에 이렇게 처음 맞이하는 졸업식을 보게 되었다. 

이곳의 졸업식은 참 아날로그적이다. 그리고 참 간결하다. 축하해주러 온 부모님과 친지, 친구들도 없다. 그저 그들만의 조촐한 졸업식일 뿐이다. 

처음 저 아이들을 보았을 때, 이 얼굴이 저 얼굴 같아 보이고, 피부색도 어두워 표정마저 어두워 보였는데, 이제는 하나하나 개성을 가진 생김새와 피부색의 명암 차이도 보인다. 그만큼 얼굴 보면서 가까이 지내온 세월이 적지 않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빈번한 행위는 익숙함과 친숙함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정이 들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가까이서 보니, 오늘따라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멋을 부린다고 애쓴 모습마저 귀여울 뿐이다. 다 큰 아이들이지만, 내가 가르친 애들이라 그런지 왠지 어린아이들 같기만 하다. 

남자아이들은 머리에 잔뜩 젤을 바르거나 코코넛 오일을 발라서 윤기가 흐른다. 그 윤기는 지나치게 흘렀다. 여자아이들은 새하얀 사리를 입고 화장도 곱게 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어색한 장신구는 엄마 목걸이이거나 옆집 아주머니에게 빌려온 것이 분명하다. 졸업식이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은 만국 학생들의 공통된 사안인가 보다.


졸업식의 모습, 상당히 아무것도 없다.
졸업식날, 선생님은 이렇게 학교 근처에서 수확?한 꽃을 선물로 받는다.

애들이 운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아쉬운 마음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느라 아이들은 헤어질 생각이 없다. 그러다 결국 한 여학생이 울음을 터트렸다.

괜히 어떻게 할지를 몰라 내가 물었다. 

“왜 울어?”

“슬프니까요?”

내가 다시 물었다.

“왜 슬퍼?”

“오늘이 마지막이잖아요. 선생님은 안 슬퍼요?”

“왜 슬프냐. 난 기쁜데...”

“기쁘다고요? 어떻게 기쁠 수가 있죠? 여기서 이젠 수업도 못 듣고, 친구들하고 헤어져야 하고, 슬픈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나는 조금 뜸을 들이고 대답했다. 

“그야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해봐. 이젠 너희들은 직장을 구할 것 아니냐. 그리고 연애를 시작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결혼도 하고, 애도 낳을 거고... 얼마나 좋니? 이 모든 것들이 시작되는 날인데 어떻게 안 기쁠 수가 있겠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이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거야. 선생과 제자가 아닌 더 편안한 관계. 만나서 차도 마시고 어디 놀러도 가고 하면서 말이야. 그래도 안 기뻐?”

그렇게 말하자, 우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미소를 보여준다. 처음 만났을 때 서로를 경계하고 조심하던 사이가 이렇게 정이 들었다. 이렇다하게 가르친 것도 없이 보내는 선생의 마음은 부끄럽기만 하다. 



(시간이 흘러 흘러, 약 8년이 지난 아이들은 직장에서 어엿한 일꾼이 되었으며, 결혼을 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낳기 시작했고, 살이 무턱대고 찌고 있다. 다 예상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는 멀리서 아주 가끔 안부를 물으며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됨의 즐거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