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피부미남
학교에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나는 학생들에게 신기함의 대상이었다. 교정을 걷고 있을라치면, 많은 이들이 시선이 피부에 닿아 따끔거린다. 그 시선들이 나에게 내려 꽂히는 걸 온몸으로 느끼곤 했다.
현지인들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은 피부색에 관한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검은 피부를 가진 스리랑카 인들이 나의 피부색이 아주 많이 부러워했고, 그 부러움의 대상을 만지는데 머뭇거림이 없었으며, 감탄사를 말로 뱉어내는 것에 부끄러움도 없었다.
“피부가 너무 하얗고 예쁘네요.”
이런 말은 곧잘 듣곤 했었다.
살면서 피부관리를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거니와, 스리랑카의 습도 때문에 로션도 바르는 걸 중단한 상태였다. 살면서 한 번도 내 피부가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이 못난 유전자는 중학교부터 대학교 때까지 반복된 여드름으로 모공이 눈에 선명히 보일 정도로 거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남자가 아닌가? 그것도 응? 대한민국 공군(?)을 병장으로 제대한 늠름한 예비역이 아닌가? 그런데 뭐... 피부가 좋다고요?
자존감 상승이 필요하다면, 당장 스리랑카로
이곳 스리랑카에서 하얀 피부색은 마치 소중한 하나의 재산과도 같다. 얼굴이 잘생기고 못 생기고를 떠나서, 일단 피부색인 밝다면, 당신은 이곳에서 미남으로 통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평생을 자기가 못생겼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한국에서 무참히 무시당했던 자존감을 되찾기 위해 스리랑카를 한번 다녀오길 권한다.
30살이 넘은 동네 아저씨 같은 외모의 남자가 '피부가 너무 하얗고 미남이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처음엔 심하게 거부감이 들 정도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입술은 또 왜 그렇게 핑크 핑크 해요?
‘입술색이 핑크색이다’, ‘치아가 고르다’, ‘머리카락이 부드럽다’ 등 이제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창의적인 칭찬을 해댄다. 그러면서 꼭 내 팔 등을 만지거나, 머리를 만지면서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민망하다. 눈알만 굴린다.
“네? 뭐라고요?”
서른이 넘은 남자가 듣기엔 참으로 거북스럽기만 한 칭찬이다.
그나마 선생님이나 직원들은 다소 점잔을 빼고 나를 대하지만, 학생들은 장난의 수위가 높다. 하루아침에 신기한 사람이 된 기분은 때로는 락스타라도 된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학교 교정을 걸으면 인사하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가끔은 미스코리아 식으로 손을 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왠지 희귀 동물이 되어 구경거리가 된 것만 같아 어리둥절한 때도 많았다.
다시 못생겨지는 나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나라의 뜨거운 햇빛에 견디다 못하고 내 피부색은 점차 검게 변해갔다. 이러한 변화에 나는 나름 만족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그들이 늘 나에게 퍼붓었던 피부색에 대한 칭찬도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생활한 지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어느 날 현지인처럼 새까매진 나를 발견한, 주인집 아주머니가 말했다.
"가만있자. 너... 요즘 왜 이렇게 못 생겨졌냐?"
라고 나가는 사람 잡고 다짜고짜 타박할 정도였다.
왜 피부색이 그렇게 중요해요?
그들에겐 얼굴이 희면 잘생긴 편이고, 피부색이 어두우면 못생긴 축에 속한다. 왜 그럴까? 복잡하게 생각하면 피부색에는 인종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스리랑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싱할라 족은 2번째로 큰 민족인 타밀족에 비해 피부가 밝은 편이다.
"그러니까 타밀족은 검정, 우린 초콜릿 색이죠. 아니 밀크 초콜릿 색요."
그들은 그렇게 민족을 가르는 방법 중의 하나로 피부색의 명암을 먹는 것에 비교할 정도다. 브라운과 검정은 엄밀하게 다른 겁니다!,라고 말이다.
또 한 번 더 복잡하게 생각하면, 피부색에는 사회적 혹은 경제적 계급의 차이가 존재한다. 피부색이 밝다는 건 그 사람이 오피스에서 일하는 화이트 칼라의 그룹에 해당한다. 즉, 피부색이 검다면,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 계급임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피부색에는 사회적 혹은 경제적 계급의 차이가 은근히 드러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