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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Jun 28. 2020

그놈 산지바의 집

스리랑카 해외봉사기


어느덧 학교가 방학에 들어갔다. 

3주간 주어진 방학이다. 그냥 보낼 수 없기에 머라도 해야했다.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스리랑카의 최초 고대 왕조 도시인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와 두 번째 고대 왕조 도시인 ‘폴로나루와(Polonaruwa)'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행 일정을 설비반 선생님인 히로시니에게 말했더니, 자기네 반 산지바(sanjiba)라는 학생이 폴로나루와 근처에 산다며 소개해 주었다. 아무래도 어설픈 동양인 혼자서 가는 여행이라 영 못 미덥고 걱정이 되었나 보다. 그 당시에 이미 30을 넘은 나는 젊음의 상콤함을 잃어버린 성인이었지만,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은 모든 것이 서툰 어린아이와 같다.  

콜롬보에서 약 6시간을 버스로 달렸다. 불편한 의자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 덜컹거리는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허리가 망가지거나 엉덩이 뼈다 죄다 바스러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스리랑카의 첫 왕조 도시, 아누라다푸라 

아누라다푸라는 고대 불교와 함께 성장한 종교와 정치의 도시다. 불교의 도시답게 웅장한 다고바(스투파와 같은 형태의 구조물, 부처의 유품과 같은 불교 보물을 보관하는 탑)는 그 당시 피라미드 다음으로 세 번째로 높은 구조물이었다. 스리랑카의 고대 건축물 또한 대단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폐허가 된 불교사원과 왕궁의 터는 이제 그 형태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다고바의 웅장함은 건재했다. 

건조지역의 뜨거운 태양이 만들어낸 거친 표면을 가진 다고바는, 마치 어릴 적 아빠를 올라다 보았을 때처럼 무척이나 컸고 무표정이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를 좀처럼 짐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종교건축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나약한 인간 따위가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런 인간을 포용할 자세가 되어있음을 은근한 메시지로 전한다. 

'무릎을 꿇어라 인간 자식아... 그럼 받아는 줄게...'

뭐 대충 이런 메세지 아닐까? 



산지바는 어디에 있을까?

아누라다푸라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산지바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 폴로나루와로 내일 출발한다고 알리려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놈의 산지바는 어디에 있을까? 왜 이렇게 연락이 힘들까? 

여정으로 피곤했던 나는 크게 상관치 않고 잠에 빠졌다.

다음날 서둘러 폴로나루와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다행히 버스가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하자, 바람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그나마 견딜만하다. 

그러나 곧 매연 때문에 얼굴에 먼지가 소복이 쌓여갔다. 흰 옷으로 대충 닦으면 옷에는 검정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도로 위의 매연들 그게 다 내 얼굴에 묻어있었던 셈이다. 더위로 질질 흘려내리는 개기름과 섞인 매연은 짬뽕된 땟구정물이 되어 얼굴 표면을 흐르고 있었다.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내 하얀 피부, 그 곱던 피부가 다 상하게 생겼다.

버스는 달리면서 거리의 사람들을 하나둘 수거해 나간다. 딱히 버스 정류장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다. 그저 사람이 길 위에서 손을 흔드는 그곳이 정류장이 된다. 그렇게 길 위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을 조금씩 태우더니, 버스는 조금의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 찼다. 늘 그렇지만 이 현지인들이 타는 버스에서 나는 오늘도 유일한 외국인이다.  

버스 안은 몸 돌릴 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하다. 확인하고 싶지 않은 서로의 체취는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들은 양파를 심하게 많이 먹은 것 같았다. 그 카레에 들어가는 수많은 향신료가 그들의 체취를 통해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내 마늘 냄새도 이렇게 지독할까?라는 잠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만든다.

길은 곧지 않은데 운전기사가 어찌나 밟아 대던지 선반에 올려놨던 가방이 모조리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한 중년의 남성은 졸다가 머리 위로 떨어진 가방에 깜짝 놀라 깼다.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았지만, 이내 잠에 다시 빠져든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인 버스 안 풍경이다. 누구 하나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늘 있어온 일이기 때문이다. 난폭한 운전 기사는, 불평불만이 없는 얌전한 승객을 태우고 달렸다. 


폴로나루와에 반쯤이나 왔을까? 

지루하고 비슷한 풍경에 지쳐가고 있을 때, 산지바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루너 선생님, 지금 어디예요?”

“나 지금 폴로나루와에 가고 있는데.”

“아, 안돼요. 폴로나루와로 가지 말고 우리 집으로 오세요.” 다급해진 목소리로 산지바가 말한다.

서툰 영어와 싱할라로 말하는 산지바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버스 안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과 지나가는 차들의 소음으로 정상적인 대화조차도 알아듣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산지바는 폴로나루와까지 가지 말고, 중간에서 어느 사거리에서 내려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가다가, 어느 타운에서 내려서 다시 어떤 버스로 갈아타면, 자기네 집으로 올 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초행길인데. 현지어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버스 체계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외국인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면서 그 복잡한 과정을 헤치고 자기 집으로 찾아올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산지바... 어이가 없다!

“나는 그냥 폴로나루와로 갈련다. 산지바. 내가 어떻게 네 집을 찾아가냐? 그냥 내일 폴로나루와에서 만나자.” 사실 어딜 찾아가기에도 늦은 시간이었다. 밖은 곧 어두워질 텐데, 길이라도 잃으면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될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이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몇 분 후 다시 전화가 온다. 산지바다. 

‘그쪽으로 가지 마라. 우리 집으로 와라. 무슨 버스를 타고, 무슨 타운을 지나, 무슨 타운으로 와라.’

이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이렇게 10번이 넘게 거절하면, 산지바는 10번 넘게 다시 제안을 한다. 어이쿠, 이게 뭐하는 짓이람.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무슨 이딴 놈이 다 있담...'

분을 삼키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오는 전화를 무시하고 폴로나루와로 간다. 도착해서 유적지 근처에 위치한 숙소에 방을 잡고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니, 그날의 피곤함이 조금 가시는 기분이다. 정신상태가 안정이 되니 산지바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 보고 싶다는 애에게 내가 너무 심했던 걸까?' 

이런 미안한 마음에 침대에 던져두었던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고선, 산지바에게 전화를 걸었다. 산지바에게 숙소의 도착을 알리자, 다소 실망한 목소리로 내일 숙소 앞으로 아침 8시까지 오겠다고 한다. 내일 잠시 얼굴만 보고 난 유적지나 보러 가겠다고 하니, 알겠다고 한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눞자마자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약속시간 전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가방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그러나 8시에 오기로 한 산지바는 어찌 된 영문인지 9시가 넘도록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보니 전화가 먹통이다. 10시가 넘자 기다리길 포기하고 폴로나루와 구시가지에 분포한 유적지로 향했다.

콜롬보를 포함한 서부와 남부지방이 습한 지역이라면, 아누라다푸라와 폴로나루와가 속한 북부와 동부지방은 건조지역에 해당한다. 공기가 건조해서 그런지 태양의 뜨거운 기운이 살갗에 그대로 전해 온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 하고 막히고, 등에서 땀줄기가 흐른다. 

원시림 속에 듬성듬성 위치한 유적을 찾아가는 길은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스투파를 중심으로 형성된 명상의 공간(한 사람이 들어가 기도하기에 딱 맞는 크기)이 수없이 펼쳐져 있다. 지붕은 사라지고 없고 남아있는 기둥은 부러지거나 잘려 나간 상태다. 많은 스투파와 그 보다 많은 승려의 주거지 및 명상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을 둘러보면서, 새삼 이곳이 불교국가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을 느낀다. 아직도 동네의 중심에는 흰 스투파가 있고, 주요 사거리에는 보리수와 불상을 모셔둔다. 밤이 되면 부처의 머리 주위에는 요란한 색들의 전등이 깜빡이며, 어둠을 헤매는 사람들의 밤길을 밝혀주고 있다. 


그놈 산지바

정교한 불상과 화려한 기둥의 조각을 보며 감성에 젖을 무렵, 전화가 온다. 그놈 산지바다.

“아루너 선생님. 지금 어디예요?"

“응, 나 지금 폴로나루와 올드 타운에서 유적지 둘러보고 있어."

“아 그래요? 우린 게스트하우스 앞에 막 도착했어요. 이쪽으로 올 수 있어요?"

이런, 갑자기 답답해져 온다. 가슴이...

“나 지금 이거 봐야 하는데. 입장료하고 트리윌 기사한테 돈을 이미 줘버려서, 지금은 갈 수가 없어. 왜 이렇게 늦은 거야?"

그렇게 거절을 했지만, 또다시 쉴 새 없는 전화 걸기 공세가 시작된다. 이놈은 정말 스리랑카의 더운 날씨보다 더한 놈이다. 

‘젠장. 또 시작이군.'

여러 번의 전화를 받고 거절하길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유적을 보고 싶은 마음은 사라져 버렸다. 유적의 반도 돌아보지 못하고 결국 산지바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어휴, 비싼 내 입장료와 교통비...


트랙터를 타고 느리게 아주 느리게 달려온 산지바

게스트하우스 앞 길목에 선 산지바가 눈에 들어온다. 산지바 옆에는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 트랙터가 어정쩡하게 길가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난 왜 이렇게 애가 늦었는지 짐작이 갔다. 세상에 트랙터를 타고 온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와 동네 친구 세 명을 데리고서 말이다. 농촌의 벌판에서나 달려야 할 트랙터가 2차선 포장도로를 달렸으니 반나절이 걸릴 만도 하다. 하지만 도대체 그 트랙터를 끌고 여기까지 올 생각을 한 산지바는 뭔가.

트랙터를 끌고 나타난 산지바


산지바가 준비한 커리 도시락을 같이 먹고 나는 콜롬보로 가겠다고 말하니, 산지바가 또 억지를 부린다.

“어머니가 집에서 저녁 준비하고 계신데, 그거 드시고 가셔도 될듯해요. 콜롬보행 버스가 밤 10시에 있거든요." 

이렇게 한사코 나를 붙잡는 산지바와 트랙터 뒤에 앉아서 말끔히 나를 쳐다보고 계시는 산지바 아버지와 그 친구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그들은 신기한 나에게 뭐라고 말은 하지 못하고, 시선만 나에게 둔 채로 끊임없이 속닥거리고 있었다.

그 시선을 등지고 거절할 용기가 없어, 여기서 집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니 한 시간이면 족하단다. 그럼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구나 싶어 또다시 승낙을 해버리고 말았다. 런치팩을 먹고 나니 12시 반, 스리랑카의 해는 높다. 차양도 없이 덜컹거리는 트랙터를 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 온다. 

‘그래 가보자. 니들도 이러고 왔을 텐데, 나라고 못 가겠나.' 

그러나 트랙터 위에 올라앉은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내 결정을 후회했다. 상태 좋지 않은 도로와 트랙터의 상태가 더해져 엉덩이 살은 진동을 견뎌내지 못했다. 등뼈까지 진동이 전해진다. 덜덜덜 소리를 내는 오래된 트랙터. 햇빛은 내려 꽂혀서 엄청나게 덥다. 불쾌지수가 덜컹거리는 트랙터 따라 올라갔다 내려가길 반복한다.

‘아아... 이게 뭐하는 짓이람...' 

산지바는 집에 가기 전에 기막히게 좋은 절이 있다며, 우리가 그곳을 꼭 방문해야 한다고 졸랐다. 우리는 이렇게 더운 날에 굳이 산꼭대기에 위치한 절을 찾아내 올라갔다. 산지바는 땀을 많이 흘렸으니 가던 길에 강가에 들러 목욕과 수영을 해야 된다고 졸랐다. 우리는 동네의 현지 사람들이 한가득한 강가에서 같이 목욕과 수영을 했다. 산지바는 뭔가를 계속 졸랐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젠장! 이놈, 조용히 집에 갈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제대로 속았다. 

‘썩을 놈.’

오후 5시가 되어서야, 트랙터는 느리게 산지바의 집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1시간이면 도착한다던 말은 2시간이 지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뭐 항상 이런 식이지.’ 조금 더 참아보기로 했다.


트랙터는 주요 도로에서 벗어나 좁고 구불구불한 논두렁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넓은 논 위를 건너오는 바람 시원하다. 이렇게 넓은 논이 대부분 기계의 도움 없이 직접 사람의 손으로 길러진다. 일 년에 삼모작까지 가능하다고 하지만, 수확량은 적어 보였다. 달린 알갱이가 적어 가벼운 벼 줄기는 바람에 쉬이 쏠리며 바람의 방향대로 흔들린다. 평화로운 농촌마을이다. 느린 트랙터에 지친 외국인 한 명과 현지인 네 명이 논두렁을 달린다. 

저녁 6시가 넘어서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털털거리며 달리는 트랙터는 뒤에 오는 모든 차에게 추월을 허락하며 느려 터지게 가고 있다. 길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설상가상으로 전조등이 고장나 버렸다. 스리랑카의 가로등은 삼파장 램프를 대충 달아 놓은 게 전부다. 그것도 대부분 사거리 같은 동네 주요 길목에만 설치되어 있어, 실상 도로 위는 암흑천지다. 그런 상황에서도 산지바는 라이트 없이도 갈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린다.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이놈,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다. 제정신이 박힌 애가 이런 생각을 할 리가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촌 길의 오른쪽에는 논두렁이 펼쳐지고 왼쪽에는 농수로가 흐른다.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서면 논두렁에 쳐 박히거나 농수로에 잠기거나 둘 중에 하나다.

순간 배낭에 넣어 둔 휴대용 손전등이 생각나 꺼내 들었다. 이 손가락보다 약간 큰 손전등이 스리랑카 길거리의 가로등보다 밝다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놀랐다. 한국에서 보내온 이런 사소한 제품에 애국심마저 생기려고 한다. 그렇게 손전등은 트랙터의 라이트를 대신해 밤길을 밝혀 주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이 시골길에 지치고 짜증 나길 반복한다. 나오는 욕을 참고, 또 욱하는 걸 산지바 아버지를 보고 참길 반복한다. 그러다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스리랑카의 어딘지도 모르는 시골길의 밤하늘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깜깜해서 더 반짝반짝 빛나는 별무리를 보는 순간이었다.

‘아, 저게 그 은하수구나. 말로만 듣던.'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본 은하수였다. 순간 지치고 짜증 났던 마음이 수그러든다. 금방이라도 얼굴에 쏟아져 내릴 기세의 별들은 하늘이 좁을 만큼 촘촘히 박혀있다. 거대한 우주의 밤하늘을 보고 있자니, 거대한 지구에 비해 점처럼 사는, 별것도 아닌 내가 느껴진다. 별일도 아닌 일에 감정싸움이나 하고 있는 속 좁음에 살짝 부끄러워진다.

그렇게 하늘을 쳐다보는 나를 보고 산지바가 말한다.

“거 봐요, 우리 집에 안 갔으면 이렇게 예쁜 별도 못 보고 콜롬보로 갔을 거잖아요."

허허...이 녀석 뻔뻔함의 극치를 달리는 놈이다. 그래 네 말이 옳다.

“근데 집에는 언제 도착하는 거니?"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그 소리만 4시간째다. 시간 개념이 없는 건지, 거리 개념이 없는 건지. 이놈 참, 답이 없다. 산지바네 집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10시발 콜롬보 버스는 이미 물 건너갔다. 간신히 다스렸던 마음이 다시 답답해 온다.


산지바네 집

집에 도착하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옆 동네로 시집간 고모와 고모부, 옆집에 산다는 삼촌 내외분, 그리고 누구의 아들딸인지 모를 아이들이 좁은 집에 가득하다. 식구의 얼굴 속에는 산지바의 표정과 눈, 코, 입 모양이 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멀뚱멀뚱한 시선들이 나에게로 꽂힌다. 산지바의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접시에 담아 앉으니, 이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외국인이 와서 손으로 밥을 먹는 모습이 연신 즐거웠나 보다. 떠듬떠듬하는 싱할라도 신기했나 보다. 식사와 담소가 길어져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처음 방문한 집은 할머니네 집이고, 산지바네 집은 조금 더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단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믿었는데. 

트랙터는 산지바네 식구들을 태우고 다시 어디론가 향한다. 도중에 삼촌댁에 들러 잠자는 식구들을 깨워 인사를 하게 만든다. 간식을 대접받고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겨우 산지바 집에 도착했다. 

산지바네 집은 그야말로 형편이 없다고 말해야 될 것 같다. 창은 구멍만 있고 창문과 창틀은 없었다. 지붕은 차라리 덮개라고 해야 할 수준이고, 바닥은 모래알이 넘쳐 운동장 같았다. 또 전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등불로 불을 밝혀야만 했다. 생각보다 열악한 집 환경에 놀랐지만, 최대한 놀란 기색을 감추려 노력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주인도 집 짓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 집은 짓기 시작한 지 삼사 년은 지나 보였다.

‘아. 이런 곳에서 산지바가 살고 있었구나. 나라면 이렇게 사는 게 부끄러워 아무도 데려오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이 녀석 참 밝게 자라줬구나.’


생각해보면 

산지바는 단순히 외국인을 가족들에게 자랑하고픈 마음으로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다. 농촌에 사는 가족들은 외국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참 단순한 이유로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건 어이가 없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뭐 내가 그렇게 대단하기에...’라는 겸연쩍은 마음이 생기게 했다.

성격이 밝으신 산지바 어머니는 다음에 올 때는 꼭 이틀 밤을 자고 가란다. 내가 짧게 지내다가는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떠나는 나의 손에 앞마당에서 딴 망고를 한 아름 건네신다. 들고 갈 걱정이 앞설 만큼 무지막지하게 무거운 양이다. 그 어머니의 씀씀이가 지나치게 고맙다.


손에 묵직한 망고는 또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이렇게 속 좁은 난 봉사의 자세가 된 사람인가? 내가 그들이 살아가는 삶 속으로 충분히 들어가지 못한다면, 난 단지 이방인에 불가하지 않은가. 좀 더 깊이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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