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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Jul 28. 2020

작은 동물원, 우리 집


스리랑카에 사는 작은 즐거움 중 하나는 마치 어디 정글 깊은 곳에 작고 허름한 오두막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조금 과장이 심한가? 그럼 뭐 정글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느 수목원 뺨칠 정도로 많은 나무속에서 사는 정도는 된다. 여기서의 삶이란 매일매일이 캠핑을 나온 것 마냥 설렌다. (물론 도시인의 삶을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살던 곳은 스리랑카의 작은 동네의 여느 집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렇지만 열대우림 같은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많은 동식물들이 우리 동네 주민에 합류하게 되었다. 


동물원 철장 안에 갇혀 야생의 습성을 잊어가는 동물의 그 무료한 몸짓이 아닌 진짜 야생 속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낮은 지붕 위로 높게 자란 나무줄기를 잡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힘이 넘치는 원숭이는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이다. 이름 모를 수많은 새들, 사계절 없이 피어대는 꽃들, 그 사이를 오가며 맨발로 뛰어다니는 동네 꼬마들까지, 여긴 동물과 인류가 공존하는 소소한 파라다이스라고 해도 나무랄 게 없다. 아참, 어린아이만 한 뱀도 종종 만나게 된다. 동물과 자연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았던 나는 이 모든 주변 동물들이 신기하고 무섭기도 했다. 



어느 날 어디서 원숭이 가족 한 무리가 내려왔는지, 새끼부터 제법 덩치가 큰 어미 원숭이가 우리 집 베란다 밖에서 연신 망고를 열심히 먹어대고 있었다. 신기해 쳐다보던 나에게 겁을 주려고 ‘으르렁’ 거리는 소리에 난 정말 겁을 집어먹고, 손에 잡히는 빗자루를 소심하게 잡아들었다. 그러나 곧 내 소심한 모습이 부끄러워 잡았던 빗자루를 바닥에 슬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바라보았지만, 그 원숭이 가족은 여전히 자신의 손에 든 망고를 쥐고선 으르렁거렸다. 그 망고는 노랗게 잘도 익었다.


원숭이는 정글에 먹을 게 떨어지면, 이렇게 근처 동네로 내려와 먹을거리를 찾는다. 사람에게 딱히 피해를 주진 않지만, 어린아이에게 위험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동네 주민들은 원숭이를 보면 폭죽에 불을 붙여 위협한다. 공중으로 힘없이 날아오른 폭죽은 요란한 불똥을 만들어내다, 재빠르게 도망가는 원숭이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고, ‘쾅’ 소리를 내며 터진다. 소리에 놀란 원숭이들이 혼비백산해 어디론가 흩어진다. 원숭이가 지나가는 곳마다 나무 잎들이 사방으로 흩날리면서 떨어진다. 이렇게 원숭이의 동네 습격은 폭죽으로 일단락된다. 

그러나 이 폭죽의 효력이 3-4일 지속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원숭이는 베란다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긴 꼬리의 끝을 말아 올리며 나를 보자 또 ‘으르렁’거 린다. 귀여운 녀석들이다.



밤길은 또 어찌나 어두운지. 스리랑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밤거리는 정말 홍콩의 밤거리처럼 휘황찬란하다. 여기 가로등은 수은 램프가 아니다. 도시를 벗어난 외곽의 샛길에는 주로 형광등이나 삼파장 램프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것도 충분치가 않아 불빛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많다. 그리고 이것도 가끔은 정전으로 인해 동네 전체가 암흑천지가 되기 십상이다. 비가 오면 가끔 정전이 되지만, 번개가 치는 날은 영락없이 전기가 나간다. 

불린 쌀을 넣고 취사 중이던 전기밥통이 완료되기 전에 전기가 나가버리면, 밥통을 잡고 울어야 할 판국이 벌어진다. 그래도 어느덧 정전에 익숙해지면, 촛불 하나 밝히고도 김장을 담그기도 하고, 반쯤 익은 전기밥솥의 밥을 꺼내 가스레인지로 마저 익히는 기술도 터득하게 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몇 번 당황하고 몇 번 울고 나면 모든 것에 적응하게 된다.


전기가 나간 날은 어쩔 수 없이 일찍 잠자리에 든다. 물론 잠이 올 리가 없다. 잠이 오지 않으면 책이라도 읽어야 금방 눈이 감길 텐데, 이거 전기가 없으니 책도 못 읽고, 책을 못 읽으니 눈도 감기지 않는다. 눈만 뻐끔뻐끔거리다 잠이 찾아오길 기다린다. 

숙면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인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친 모기장 밖에는 어느덧 반딧불이 세 마리가 저공비행을 시작하지만, 이내 모기장에 부딪혀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반딧불이 축제도 있는 모양이지만, 여기선 어두워지면 볼 수 있는 게 반딧불이다. 길을 걷다 밤하늘에 듬성듬성 박힌 별을 보다가, 고개가 뻐근해 올 때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나무줄기의 풍성한 잎들 사이에 촘촘히 박힌 반딧불이가 빛을 발하고 있다. 마치 나무가 숨을 내쉬는 것처럼 나무 주위에서 불빛을 강하게 발했다가 약해지고 다시 강해지길 반복한다. 거의 사람이 한 번 숨을 내쉬는 패턴의 시간과 같은 속도다. 

이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마치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것 마냥 신기하다. 자연과 교감을 한다는 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일까? 


밤을 지우려 만들어낸 낮보다 눈부신 가로등과 레온 사인들로 우리네 삶의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밤하늘 한번 쳐다볼 여유를 빼앗은 건 아닐까? 24시간 눈부신 도시에서 살아온 생경한 풍경의 스리랑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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