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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Jul 31. 2020

코로나, 스웨덴이 옳았던 것일까?


드디어 덴마크가 스웨덴에게 국경을 전면적으로 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웨덴의 남부 주인 스코네 주만 열어주었는데, 어제부로 스웨덴 전체를 대상으로 입국을 자유로이 허용했다. 스칸디나비안 국가 중에서 스웨덴이 아마 마지막이 않았을까 싶다. 코로나 때문에 스웨덴은 이웃 국가에서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해 왔다. 다들 스웨덴을 향해 국경을 닫았을 때, 스웨덴은 여전히 국경을 열어 두었다.

"저거 바보 아냐?"

내가 그런 스웨덴을 두고 한 말이다.

우리나라 같았음 하루 만에 보복을 한답시고 국경 닫기를 강행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경쟁적으로 국경을 닫던 시대였다. 그러나 스웨덴은 그러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COVID-19)으로 전 세계가 발콱 뒤집어지고 몇 달이 흘렀지만 여전히 세상은 코로나로 몸살 중이다. 내 주변에서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이렇게 큰 영향이 내 삶에 깊숙이 들어올지 누가 알았겠는가?

스웨덴이 집단면역과 비슷한 방법으로 이 전염병을 대처했을 때 많은 이들이 스웨덴을 조롱거리고 삼고 비판하기 바빴다. 나도 스웨덴 사람이라면 조금 답답한 구석이 있어서 반은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지만, 그러한 세계적 조롱거리를 당하는 스웨덴을 보니 왠지 안쓰러웠다. 미우나 고우나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스웨덴 아닌가?

한국의 많은 지인들이 걱정했다.

"거기 난리라던데, 항상 몸 건강해요."

그러나 나는 너무나 평온한 상태였다. 주변에는 마스크 쓰는 사람조차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곳이 여러 국가에서 코로나를 대신 걱정해 주는 나라가 맞나? 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 코로나가 잠잠해지려는 시점 혹은 코로나에 이제는 무감각해지려는 찰나에 드는 생각이 있다.

'아마도 스웨덴의 결정이 옳았을 지도 모른다...'라는 의문과 같은 모호한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스웨덴은 집단면역이 아니라, 자기 의료체계에 알맞은 선택을 했을 뿐이다.

그들이 가진 제한적인 의료 시스템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처럼 대량으로 그것도 신속하게 코로나 진단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코로나 이전에도 의사, 간호사의 수가 모자랐으며, 일반적으로 여기에서 의사를 만나 상담하기는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어 의사를 만나기 전에 간호사에게 간단한 의견을 묻기 위해서 나는 아침 8시가 되기 5분 전부터 전화를 해 대기줄에 서야 했다. 그러면 '당신 앞에 지금 23명의 사람이 있고, 아마도 30분 후 기다리면 너 차례가 될 거야.'라는 기계음이 나온다.

그리고 짐작건대, 코로나 비상사태에도 의료진들은 휴가를 가고 육아를 위해 일찍 퇴근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택한 아주아주 제한적인 대처 방법이 놀랍지 않았다.


2. 시민 의식이 높은 국민에게 자유를 제한하지 않았다.

초기에 일본이 이런 말을 했었다. "일본은 시민 의식이 높은 국민이 많아서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의 수가 적었다." 뭐, 일본의 이런 황당한 자존감 높은 발언으로 어이가 상실하는 일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그 말을 듣고 우리나라 국민의 상당수가 어이없어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곳 스웨덴은 그 말이 맞다. 나는 스웨덴에 살면서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진다.

'저런 일이 만약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만 있었을까? 우리는 벌써 정부를 비판하고 대규모 대모를 하고 난리가 났을 텐데...'라는 질문을 말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스웨덴 정부처럼 코로나에 대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디어는 온갖 자극적인 뉴스를 생산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유튜브 채널은 좌와 우로 대립되어 갈등을 조장하고, 국민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스웨덴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도 침착했고, 너무도 정부를 신뢰하고 있었다. 간혹 나는 그런 그들을 보고 말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리더십에 대한 강한 신뢰감이 있다."

그 무지막지하던 바이킹의 민족이 현대사회에서 발전된 모습이 이렇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코로나가 극단적으로 치솟던 시점에 나는 마스크도 없이 헬스장을 다녔고 버스를 탔고 기차를 탔다. 스웨덴 정부는 자신의 시민들이 알아서 기침은 팔꿈치가 접히는 곳에다 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필요치 않은 여행은 삼가고, 자주 손을 씻기를 권했을 뿐이다.


3. 코로나에 걸려서 죽는 사람이 많을까? 코로나 대처로 망가진 경제로 죽는 사람이 많을까?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누가 더 많은 희생을 겪었을까?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일까? 혹은 코로나로 닫힌 경제로 망가진 경제 때문에 희생된 사람이 더 많을까? 물론 작은 희생도 가벼이 여기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전세적으로 국경을 닫아 경제를 마비시켜 버리면 어쩌자는 말인가?

아마도 이런 점에서 스웨덴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공포가 극에 달하는 시점에서도 냉혹하게 판단하고 침착했다.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공포에 질려 내리는 결정이 얼마나 큰 후유증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많은 비난에도 그리고 많은 조롱에도 스웨덴은 여전히 국경을 닫지 않았고, 대면 비즈니스에 대한 제한을 가하지 않았다.


4. 코로나로 인한 인종 갈등은 없었다.

해외에 살다 보면, 특히 아시아인으로 백인 사회에서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인종차별을 겪게 된다. 그건 세계에 최강이라는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도 발생한다. 특히 이번 코로나가 중국에서 발생했다고 하니 더욱 그럴 것이라는 건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나는 스웨덴에서 살면서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박해를 당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타운에는 나이가 많은 주민이 많이 산다. 교육도 상대적으로 덜 받은 사람들이 사는 작은 타운이기에,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은 동양인이 차별을 당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 외모가 중국인처럼 보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차별적인 행동을 한 적이 없다.

내가 당한 못마땅한 대우는 내가 아시안이 아니라, 이민자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일 것이다. 이런 일이야 이민자로서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니, 차별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들은 아마도 '인종이나 차별하는 인간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나 할 짓이다.'라고 고귀하게 스스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앞서가는 시대정신으로 작은 동양인은 별 소란 없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




얼마 전, 추미애 장관이 '소설 쓰시네'라고 국회에서 말했다가, 소설가 협회에서 공개사과를 요구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세상에... 서로가 갈등을 조장하고,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구나를 느끼게 한 사건이었다. 세상은 가짜 뉴스와 어지러운 설전들이 오고 가고 있다. 가끔 뉴스를 들여다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갈등들이 부각되고 있는 것을 본다. 이런 시기에 스웨덴이 당하는 왕따의 설움에도 보여주는 침착함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감사하고 있다. 물론 스웨덴이 좋아요. 복지국가 파라다이스에요. 라고 불러대는 이들처럼 스웨덴을 미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침착함이 부럽다. 많은 토론을 하고, 정해진 방향에는 묵묵히 따라가는 사회가 스웨덴에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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