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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Aug 09. 2020

어떻게 '정치적으로 옳게' 표현할까?


요즘 샘 오취리가 SNS 상에서 도마에 올랐다. 한국에서 가장 호감이었던 외국인 방송인이 순식간에 가장 비호감으로 변해가는 온갖 설전들을 보고 있으니,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가 완벽에 가까운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만 봐도, 그는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인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지금 그는 엄청난 혼란에 빠져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설전들이 오고 가지만, 그를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짧게 말해서 그의 행동에는 오해를 살만한 것도 있고, 흑인으로써 할 만한 발언도 있었다.


지금 일어나는 현상들은 여러 인종들과 살아가기 시작한 변화된 한국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한 때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정도로 우리끼리 살아온 국가였다. 지금은 UN에서 '단일 민족'이라는 단어가 타 문화권이나 인종을 배척하는 단어로 이해되기에 사용을 자제하라고 권고한 이후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단어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 민족끼리 살 때는 이런 흑인에 대한 대우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이제는 국제화 시대에 많은 인종들과 섞여서 살아야 하는 시기에 도달해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도 다른 인종을 조금 더 올바르게 대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폴리티컬 커렉트(Political Correct)라는 용어가 있다. 한국말로 '정치적으로 옳게' 표현하자는 뜻이다.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부르지 말고, 장애우로 부르자는 한때 방송가의 논란이 대표적인 폴리티컬 커렉트에 해당한다.



정치적으로 옳으냐(Political Correctness)는 우리 사회에서 소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좋게 표현하자는데 그 주된 목적이 있다. 즉, 조금 더 포괄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데 그 의미가 있다.


여러 가지가 있다. 흑인을 두고 '검둥이, 니거'라고 표현을 하면 아주 불쾌한 표현이다. 동성애자를 '호모, 패것(faggot)'라고 부르면 그들에게 불쾌한 표현이다. 선진국을 제외하고 아직은 덜 선진국인 국가들에게 '후진국, 제3세계' 등으로 부르면 그들 국가를 업신여기는 표현이다. 따라서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라고 부른다. 선진국은 아니지만 개발이 진행 중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논란이 진행 중이다. 그 만큼 어떻게 표현을 해도 조금은 불만이 남는 것이 <폴리티컬 커렉트>이다. 인터넷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한남, 한녀와 같은 용어는 당연히 정치적으로 옳은 표현이 아니다. 표현에는 혐오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정치적으로 옳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는 상당히 어렵다. 그리고 때론 '이거 너무 한 거 아닌가?' 혹은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단어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이런 논쟁이 변화하고 다시 적당한 용어를 찾아 변경되는 경우가 잦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상점들이 어느 순간부터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 대신, '해피 할리데이'라는 문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도 정치적으로 옳은 표현을 구사하기 위함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왜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단어가 되었을까?

이는 크리스천(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많고 다른 종교인 혹은 비종교인에게도 통용되는 날이 되도록 표현하기 위함이다.


정치적으로 옳게 표현하는 것은, 때론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때로는 표현되지 않아야 할 정보들이 있다. 스웨덴에서 뉴스를 보면, 10대 소녀가 길을 가다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치자. 그때, 총을 쓴 사람이 무슬림이라고 치자. 이때 우리나라의 뉴스였다면, 총을 쏜 사람이 무슬림으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스웨덴의 뉴스에는 범인의 인종을 전혀 밝히지 않는다. 그건 정치적으로 옳은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때로는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다. 왜냐면 그런 정보로 인해, 원하지 않은 무슬림이라는 인종이 박해의 대상일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가 초기에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던 것을 해당 지역에 대한 혐오로 번질 것을 우려해 'COVID19'로 고쳐서 부른 것도 이 유형에 해당할 것이다.  

이런 정보의 미전달은 과한 조치일까? 혹은 적절한 조치일까? 이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치적으로 옳지 않게 표현하는 것'은 대부분 무지에서 온다. 내가 이렇게 표현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쁠 것이라는 걸 모르고 하는 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샘 오취리가 비난한 어느 고등학생의 흑인 패러디 사진은, 고등학생이 이런 행동으로 흑인이 기분이 나쁠 것을 몰랐다는 무지에서 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샘 오취리가 말한 무지를 넘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고등학생의 분장을 살펴보면, 흑인을 희화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흑인처럼 보이기 위해서 분장한 것에 불과하다.

아래의 사진을 보자. 이게 흑인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 분장한 '블랙 페이스, Black Face'의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이런 분장을 한 것도 아니고, 흑인처럼 진지하게 보이고 싶었던 학생들을 비판한 샘 오취리는 너무 과하게 비판한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흑인이 아닌 이상, 그 대상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헷갈리는 이유는, 소수의 사람들이 우리의 표현으로 어느 정도 불쾌할지 우리는 그들이 아닌 이상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정치적으로 옳게 표현(Political Correctness)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자신이 사용하는 단어가 의도치 않게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꾸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즉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적인 자리나 공적인 문서를 작성할 때는 특히 조심해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정치적으로 옳은 단어가 너무 모호하고 너무 센스티브한 것은 아닌가 싶은 것들이 많다는 점은 못마땅하다.




<참고, Reference>

https://www.idareact.org/political-correctness-and-freedom-of-speech/

http://montanafamily.org/politically-correct-christmas-2/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9/feb/09/blackface-ralph-northam-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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