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현 Jul 12. 2016

나약함과 마주하기

안나푸르나의 위로길

때로는 걸음을 멈출 것


산을 오르는 일이란, 높은 곳에 알맞은 몸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험한 환경에도 견뎌낼 수 있도록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했고, 고산증에 걸리지 않도록 서서히 고도를 높여 내 몸이 적은 산소에도 숨을 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엉망이 된 자신을 보살필 줄도 알아야 했다.

‘나는 왜 몰랐을까? 높은 곳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때로는 몸을 낮출 필요도 있고, 때로는 기다려야 하고, 때로는 나를 점검해야 하고, 때로는 나에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어리석게도 그 단순한 사실을 몰랐다. 무작정 오르기만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인생이란
무작정 달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모르지만 아직은 모르지만, 인생이란 무작정 달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험한 곳에서도 견디어낼 수 있도록 조금씩 자기 자신을 만들고 보살펴야 한다. 언젠가 우리는 달려야할 순간이 올 것이고, 그때 우리는 집중해서 달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안나푸르나를 오르면서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오랫동안 운영해 오던 사업을 정리했다네. 내 젊음을 바쳐 성공을 이뤘지만 막바지에 어려운 상황이 닥쳤어. 나 혼자라면 끝까지 포기를 하지 않았겠지만, 가족들 때문에 재산을 더 이상 잃기 전에 사업을 정리해야만 했어.”

나이가 가장 많았던 분은 사업을 정리하고 은퇴를 한 후에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그의 옆에는 곱게 나이든 아내가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삶이 무료해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뭔가 열정도 식고, 재미도 없고 말야.”

동네에서 작은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해 온 중년의 아저씨는 인생이 지루해서 무작정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5년간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있었어요. 절 버리고 내 친구 놈에게 갔죠.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여자 친구도 내 친구 놈도요.”

그리고 나보다 2살이 어렸던 청년은 여자 친구와 오랜 친구를 동시에 잃은 고통을 잊어보고자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미처 몰랐지만, 이곳에 온 우리들에겐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


나약함과 마주하기


지루하고 지치는 걸음 속에서 난 참 많은 질문을 품었다. 그리고 곱씹어 생각하길 반복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끝내 대답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결코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던 그 고통에 점차 익숙해져 갈 때쯤, 나는 작은 용기는 얻었다. 그게 우리가 산을 오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허약한 내 몸에 찾아오는 고산증처럼 우리는 삶의 한계를 짧게나마 맛본다. 우리의 나약함과 마주한 순간, 그리고 끊임없이 포기하고 싶어지는 고통의 순간을 넘기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겸손한 용기를 얻는다.


“이제는 중년이 된 내가 다시 무얼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지. 더 이상 젊지도 않고 패기도 잃어버리고 말이야. 이대로 늙어가면서 시간을 좀 먹을 뿐이라고 생각했지.”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던 중년의 아저씨가 말했다. 그는 늘 불평이 많았다. 그는 늘 먼저 지쳤고, 늘 늦게 출발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 같아. 늘 자신이 없었어. 내가 뭘 제대로 할 수나 있겠어? 라고 스스로 체념하며 살았던 거 같아. 그런데, 이제는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아. 이제는 나를 조금 더 믿을 수 있을 거 같아.”


그리고 여자 친구를 떠나보냈던 청년이 말했다.

“그녀를 완전히 용서를 할 수는 없어요. 솔직한 심정으로요. 아직도 미워하는 마음이 남아 있죠.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 있던 미련은 떨쳐냈어요. 히말라야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서 내 미련의 온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음이 느껴져요.”


인생이라는 거대한 히말라야 앞에서


산을 오른다. 우리는 쉽게 지치고 만다. 포기를 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길을 걸을 것인가? 순간순간의 자기 결정에 대한 후회와 자기 설득이 반복된다. 우리는 수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한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산을 오르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고통과 마주하기 위해서, 날 것의 나와 마주하기 위해, 조금 더 솔직해진 나를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히말라야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우리는 그곳을 넘을 것인가? 쉬운 길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을 던진다.






안종현 작가의 여행에세이 <위로의 길을 따라 걸을 것>은 끊임없는 상처 속에서도 삶을 계속 여행할 위로와 용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