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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Jun 10. 2021

난민이 남긴 작은 쓰레기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타국의 정부는 정기적으로 ‘너 왜 아직도 여기 있어?’라는 불편한 신호를 보내오기 때문이다. 그 신호 중의 하나가 바로 비자다. 2년 과정의 석사를 위해 온 유학이지만 비자는 1년 단위로 나온다. 그래서 첫 1년이 지나고, 다시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말뫼(Malmö)에 있는 이민국을 찾았다. 비자를 신청해서 즉각 나오는 법도 없다. 운이 좋으면 3개월 전에 나오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경우도 많다. 비자가 나오지 않으면 스웨덴에 꼼짝 못 하고 갇혀서 살아야 한다. 이처럼 이민자에게 비자 문제는 자국에서는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큰 골칫거리다.

 말뫼에 위치한 이민국을 찾아가는 길도 멀다. 자연스럽게 ‘스웨덴에 이민오는 건 쉽지 않지… 그렇고 말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구석진 곳에 있다. 늘 삐딱한 나기에, 웬만하면 찾아오지 말라는 의미로 이런 구석진 곳에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심히 의심이 간다. 


버스도 자주 없어 미리 도착하려고 일찍 왔더니, 예약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버렸다. 터치 화면의 버튼을 눌러 체크인을 하고, 대기실 구석에 앉았다. 이민국은 스웨덴 공공기관 중에서 가장 우울한 곳이다. 어느 시골의 버스 대합실을 연상시킬 정도로 의자만 많다. 시설은 ‘사람이 기다리는 것’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마음이 애초에 없는 단조로운 공간이다. 대체로 사연을 가진 난민들로 늘 북적인다.   

이와는 달리 공무원들이 일하는 곳은 따로 유리문을 통과해야 나오는 쾌적한 곳이다. 그곳엔 등짝이 넓은 남성이 풍채를 자랑하며 항시 대기하고 있다. 괜히 말썽 부릴 생각이란 말라는 의미가 담긴 덩치다. 그런 공기 안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을 잠깐 들여보았다. 세상은 늘 그렇듯 끔찍한 뉴스로 가득했다. 모조리 내 능력 밖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인상만 찌푸리는 행위뿐이다.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 속에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른 이민자들의 표정을 살펴보는 게 더 흥미롭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검은 히잡을 쓴 여성들, 허름한 청바지를 입은 남성도 보였다. 백인보다는 주로 중동에서 온 사람들로 아시아인은 내가 유일했다. 주로 가족 단위의 난민들이 많았고, 손에는 지원 양식으로 보이는 문서를 하나씩은 꼭 들고 있었다. 그 당시 스웨덴은 그나마 난민자격을 인정하는 빈도가 높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유럽의 각국을 돌다가 스웨덴으로 온 난민 신청자(asylum seeker)들이 많았다. (현재는 COIVD-19로 국경이 닫히면서 난민의 이동 수도 급격히 줄었다.)



UNHCR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2천만 명이 넘는 난민이 있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이 난민 신분으로 망명을 신청하지만, 그중 소수만이 공식적으로 망명이 허락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스웨덴에는 2가지 종류의 난민이 존재한다. 공식적인 난민과 비공식적인 난민이 그렇다. 난민 자격을 받으려고 기다리거나 거주하는 비공식 난민도 많기에 집계가 되는 난민의 수보다 훨씬 많은 난민이 있는 셈이다.

2015년 시작된 난민의 폭발적인 증가는 스웨덴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스웨덴은 전례 없이 많은 난민을 받아들였는데 그 정점은 2016년이었고 그 후로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2019년 자료에 의하면 스웨덴은 총 약 25만 명의 난민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내가 스웨덴으로 이주한 것이 2016년의 일이니, 가장 난민으로 성황일 때 스웨덴을 찾은 셈이다.

대합실의 많은 난민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30살 중반 정도로 보이는 흑인 여성이었는데, 유모차에는 작은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초초해 보였고 안절부절못하는 행동으로 보아 중요한 결정을 기다리는 걸로 보였다. 그녀는 유모차를 중심으로 짧은 반경 안에서 왔다갔다하길 반복했다. 그러다 잠시 의자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길 반복했다. 

잠시 후에 그의 대리인으로 보이는 백인 여성(아마도 난민을 돕는 NGO 단체이거나, 난민을 돕는 경비를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변호사일 가능성이 높다)이 유리문을 통해 걸어 나왔다. 그리고 무언가를 흑인 여성에게 속삭였는데, 다른 사람의 대화 소리에 묻혀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흑인 여성은 몇 마디 말을 전해 듣기도 전에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도 적절한 상황은… 물론 아니었다. 추정을 하자면, 흑인 여성의 난민 자격 신청이 거부된 결정을 지금 막 알게 된 것으로 보였다. 그녀의 울음소리로 아기가 깨어난 것은 물론이고, 순식간에 대기실의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녀의 결정이 자신의 결정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난민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세상 서럽게 우는 모습에 괜스레 나까지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슬픔도 내 스마트폰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처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범위의 사건이었다. 나 또한 초라한 이민자이지 않은가? 그렇게 서럽게 울던 그녀는 잠시 후 어린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스웨덴 정부는 이렇게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먼 이국 땅을 찾아온 사람을 거절하다니, 약간 매몰차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그녀가 남기고 간 찢어진 서류, 눈물을 닦은 휴지 몇 조각이었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작은 쓰레기가 남겨져 있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마음이지만, 이게 스웨덴의 난민 정책에 대한 현실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난민을 돕는 행위는 분명히 숭고한 일이나, 난민은 스웨덴의 가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녀가 남긴 건 작은 쓰레기였지만, 이걸로 보아 그녀가 스웨덴에 남아도 부딪힐 스웨덴의 많은 가치들을 예상하게 만들었다. 난민을 돕는다는 건 단순히 거주를 합법적으로 허락하는 것 이상의 행위이다. 난민의 정착을 돕는 경제적 비용도 들지만, 난민과 스웨덴 사람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 그렇다고 난민을 무조건 막고 거절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왜곡해서 듣지는 마시길 바란다. 우리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어떻게 난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해 스웨덴의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난민을 대거 유입했을 때 발생하는 여러 가지 현상을 잘 들여보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스웨덴에서 난민의 수는 시리아 출신이 가장 많고, 아프가니스탄이 그 뒤를 이어 많다. 스웨덴은 유럽에서 독일, 프랑스를 이어서 난민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다. (전 세계적으로는 미국 뒤를 이어서 4번째로 많은 난민을 받았다.) 그러나 총인구 대비로 따지면,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난민을 받았는데, 전체 인구의 약 2.5%에 달하는 난민을 받아들였다. (독일은 1.4%, 프랑스는 0.6%, 미국은 0.1%에 불과하다.) 

이렇게 무리해서 난민을 받아들여야 했던 이유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국제사회에 도의적 행위를 한 것으로 풀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면에는 스웨덴에 필요한 저렴한 노동력을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는 가치 절하식 진단도 있다. 사실, 나는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는 것보다는 두 가지 관점이 모두 맞다고 생각한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춘 판단이었을 것이라는 게 내 짐작이다. 나는 순진하게 스웨덴이 단순히 도의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난민을 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스웨덴에는 늙어가는 인구를 돌보고 공장에서 일할 저렴한 인구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이민자와 함께 성장하는 역사를 가진 국가인데, 이번엔 동유럽이 아니라 중동에서 대거 이민자가 유입되었다는 점만 틀릴 뿐이다. 누군가는 ‘스웨덴 늙은이 엉덩이에 묻은 똥을 누군가는 닦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이 연금생활자를 보살피는 인력이 될 의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인구 대비 상당히 많은 난민을 갑자기 받아들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저항에 부딪히는 건 당연하다. 현재 스웨덴에는 시리아에서 온 난민이 상당히 많아졌다. 그리고 난민으로 인한 과도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 공공서비스의 마비 등이 일어나자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스웨덴의 난민정책 혹은 이민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로 이들은 난민의 증가로 인해, 스웨덴의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주장하며, 스웨덴 생활의 안전이 급속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인과관계는 사실 찾기가 힘들다.) 논쟁은 또 다른 논쟁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분열은 당연히 찾아오는 수순이다.

2015년 터키 해안에서 숨을 거둔 채로 발견된 3살 시리아 어린아이를 기억하는가? 이 사건을 계기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졌고, 유럽에 대한 난민의 정책은 급속도로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이 사건은 무척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난민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이 사진 앞에서는 어떤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인간이라는 자가 할 짓이 안될 금수만도 못한 행동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사진 한 장이 불러일으킨 이미지의 파급효과는 너무나 거셌다. 


[2015년 3살 난민 아이가 터키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The Guardian)]


연일 미디어들은 시리아 난민을 유럽이 받아들여 바다를 건너다 소중한 목숨을 잃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왜 유럽만 그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우리 모두가 같이 힘을 합쳐서 해결할 일이 아닌가?) 그렇게 대거 난민이 유럽의 땅을 밟기 시작했고, 많은 유럽인들이 그들을 반겼다.

그 당시 연일 TV에 다뤄지는 난민 문제를 보면서 두 가지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가 공항에 막 도착한 난민의 무리를 향해 어떤 유럽인이 빵 한 조각을 던진 사건이었다. 물론 배가 고플 것이라 생각한 호의적이고 친절한 행위였다. 그러나 그 빵을 받은 난민은 화가 난 표정으로 빵을 되돌려 던졌다. 여기서 나는 호의적 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 호의적 행위가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건 난민을 인터뷰한 내용이었는데, 리포터가 공항에 도착한 난민에게 “난민으로 인정되면 유럽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라고 물었고, 2명의 인터뷰이가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석사를 마치고 왔는데, 이곳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싶습니다!” 그 두 명은 아주 유창한 영어로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시리아 난민이 영어를 저리 잘할까? 그리고 박사 과정이라고?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난민이 영어를 잘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박사 과정으로 진학을 하고 싶을 수도 있다. 각 난민은 다른 이유로 망명을 신청하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전쟁으로 인한 삶의 터전의 상실, 혹은 종교 정치 성 정체성 등에 따른 신변의 위협 등 다양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했던 ‘급박한 생명의 위험에 처했던 난민을 구했다!’는 기대와는 다소 거리가 먼 인터뷰였다.

 나는 난민 문제에 대한 한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돕는 난민이 자격을 갖춘 난민일까?” 즉, 그들은 진짜 난민이 맞을까?라는 의문을 지을 수가 없다. 나 또한 이민자로 비자 문제를 늘 해결하느라 이민국과 다투는 경우가 잦았다. 나는 스웨덴에서 정한 이민법에 따라 모든 자격을 갖추고 모든 공식 문서를 가진 이민자였음에도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경고 레터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난민 중 일부는 문서나 신분증이 없이도 난민 자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너 같은 경우는 그냥 북한에서 탈출해서 온 정치적 난민이라 말하는 게 비자받기가 훨씬 쉬울 걸? 급하게 오느라 문서랑 신분증은 못 챙겨서 달아났다고 말하고 말이야.”

농담이었지만, 현 난민의 사태를 잘 반영해주는 농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민 문제에 대해 2018년 달라이 라마가 스웨덴을 방문했을 당시의 발언을 주목해 보자

"(전쟁이 끝나면 언젠가는) 난민은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재건해야 합니다. (refugees should return to their native countries to rebuild them)"


[2018년 스웨덴 말모의 한 컨퍼런스에 참석한 달라이 라마 (The Local)]




<참고 자료>

1. UNHCR, https://www.unhcr.org/refugees.html?gclid=Cj0KCQjwzYGGBhCTARIsAHdMTQz6bJNBJuBKD68ZmqLHSy7Gd1uhoXiN6Wplal14f9VJQ72y0_MaAsQaApaPEALw_wcB&gclsrc=aw.ds

2.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523293/immigration-to-sweden/

3. Over­views and statistics from previous years

https://www.migrationsverket.se/English/About-the-Migration-Agency/Statistics/Asylum.html

4. Over­views and statistics from previous years

5. Sweden Refugee Statistics 1960-2021 

https://www.macrotrends.net/countries/SWE/sweden/refugee-statistics

6. 난민 수용국가 최대 4개국의 난민의 수와 인구대비 백분율 

7. The Guardian (2015), 'Shocking images of drowned Syrian boy show tragic plight of refugees',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5/sep/02/shocking-image-of-drowned-syrian-boy-shows-tragic-plight-of-refugees

8. The Local (2018), 'Europe belongs to the Europeans' (2018) https://www.thelocal.se/20180913/dalai-lama-europe-belongs-to-the-europ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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