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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건축가의 글쓰기 한계

책 제목은 왜 '공간이 만든 공간'일까?

by 안종현

얼마 전에 유현준 건축가의 <공간이 만든 공간>을 읽었다. 이 글은 그 책에 대한 개인적인 독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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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건축가가 쓴 책을 잘 읽지 않는다. 건축가들의 겉멋이 든 글솜씨를 읽다 보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학을 공부했고, 나름 유명한 건축가를 쫓아다니며 배우던 시절도 있었지만, 글쎄 보통 책을 쓰는 건축가들은 이상한 틀이 있어서 글이 상당히 고집스럽거나 틀에 잡힌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외국에 살다 보니 읽고 싶은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요즘은 그렇게 따지지 않고 구할 수 있는 책을 읽는 편이다.


건축가는 말을 잘할 줄 알아야 한다. 큰돈을 투자해 건물을 짓는 건축주를 설득하려면 어쩔 수 없이 말을 잘해야 프로젝트를 딸 수 직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들 앞에서 큰소리로 말을 하는 상황이 무척이나 고욕스러웠다. 특히 사투리가 강한 말투 (경상도에서 자란 나는 뉴스 아나운서와 똑같은 말투를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자랐다.)를 내뱉는 순간 코를 잘 배어간다는 그 서울사람들은 말도 듣기 전에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그런 내가 어느 정도 자신감 있게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대학교 1학년 때, 교수님이 나의 복부를 향해 날린 한 방의 효과가 컸다. 교수님은 건축가의 말은 타인을 설득하기 위함이라는 아주 근본적인 가르침을 주었고, 배에 힘주어 말하는 복식 호흡법부터 배우길 권했다. 그 교수님의 '한 방'으로 이제는 어디 가서도 아무 말이나 지껄여도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는 모르겠다. 이걸로 금전적 이득은 취하고 있지 않는 한에서 계속 지껼여 보고 싶으나, 그럴 기회도 많지 않다. 더욱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도 없을 것 같다.

의외로 말을 잘하는 건축가는 많지만, 글까지 잘 쓰는 건축가는 많지 않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아무래도 그 목적의 차이가 미세하게 있기 때문이다. 유현준 건축가가 딱 그런 경우인 것 같다. 그는 말은 잘 하지만, 글을 잘 쓰지는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말로 하면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임에는 분명 하나 글로 쓰면 안 되는 내용을 쓴 책이 바로 <공간이 만든 공간>이 아닐까 싶다.


도입부는 상당히 강렬하다. 처음엔 '이 사림이 건축계의 유시민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해박한 지식에 빨려 들었다. 그의 주된 요지는 기후와 자연환경이 농업에 영향을 끼치고, 농업은 다시 공동체 구성에 영향을 끼치고, 공동체는 개인의 특성에 영향을 끼치면서 건축에 영향을 주었다고 여러 가지 사료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무역을 통해 서로 섞이게 되는데, 그중에 동양의 도자기가 유럽에 끼친 아시아 문화의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게 서양은 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건축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왔고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에서 태생한 모더니즘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뭔가 조금 이상했다. 동서양을 이렇게 확연하게 구분 지어 버리는 것도 조금 불편했고, 동양의 건축이 공간적으로 더 나은 것이라고 말하는 약간의 국뽕 비슷한 단언도 조금 불편하다.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 이렇게 확언을 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밀 농사가 노동집약이 아닌 농업(개인이 작물을 기르는 방식)이라 서양에는 개인주의가 확립되었다, 라는 주장은 많이 어설프다. 밀 농사도 상당히 노동 집약적인 일이 아닌가? 단순 서양화에서 보이는 그림에서도 다수가 농사를 짓는 모습이 그려지고, 마을 단위의 공동체 모습이 서양에도 있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렇게 책은 논리적 개연성의 떨어진다.

특히 어떠한 자료도 없이 추측으로 끝나는 부분으로 마무리가 지어지는데, 모더니즘이 동양의 건축에서 영향을 받아 조금 더 열린 공간으로 발전했다는 주장은 정말 어이가 없다. 특히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꼬르뷔제의 빌라 사보아가 동양 건축의 영향이라는 건 글쓴이 자신도 어디에도 사료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모더니즘의 건축이 동양의 열린 건축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건, 동의할 수 없다. 개연성을 굳이 찾으려고 하니 이렇게 무리한 결론으로 도달한 것이 아닌가 싶다. 모더니즘은 많은 사회적 현상이 반영된 것이지만, 전후 값싼 주거가 대량으로 필요했던 시기가 건축기술의 발전으로 만난 단순한 결과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유현춘 건축가의 책은, 말로 하면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서는 안 되었다. 책으로 이런 주장을 펼치려면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는 자료가 충분히 있어야 했음에도 저자는 끼워 맞추기식 논리의 전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글쓰기를 이렇게 안이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조금 놀라울 따름이다.


일전에 어느 출판사의 편집자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유현준 건축가님의 글처럼만 써주세요!'

음... 글쎄다. 그렇게 할 지적 능력도 없지만, 그렇게 쓰면 안 될 거 같다는 게 그의 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


그의 글은 아래와 비슷한 현상이다.

우리는 세상을 실제로 있지도 않은 패턴에 따라 이리저리 가르고, 제일 처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기준으로 즉각적 판단을 내리고, 원래 갖고 있던 생각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취하고....('인간의 흑역사' 중에서)


개인적으로 유현준 건축가는 뭔가 새롭고 신선한 사고를 펼쳐야 한다는 강박감에다 자기 지식에 그만 자기 스스로 고취된 상태에서 책을 집필한 것이 아닌가 심히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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