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ove an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현 Jul 30. 2021

비건과 페미니스트의 자기소개

비건이 비건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간단하다. 물어볼 것도 없이 자신의 첫인사에 자기가 비건임을 밝힌다.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 저는 필립이고 비건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럼 페미니스트는 어떻게 그 사람이 페미니스트라는 걸 알 수 있을까? 그것도 간단하다. 역시 물어볼 것도 없이 자신의 소개에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알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카트리나이고, 페미니스트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라고 말이다.


왜 그럴까? 

왜 그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비건임을 그리고 페미니스트임을 미리 알리려고 할까?

물론 나는 비건도 페미니스트도 아니기에, 이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비건에게 당신은 왜 비건이라고 소개하는 거요? 거 묻지도 않은 질문을 말이요?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처음 본 사람에게 말이다. 물론 우리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메뉴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었으면 그 소개가 타당하다. 비건임을 알려서 자신의 음식 먹는 취향을 상대에게 알리는 건 좋은 정보이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메뉴를 고를 때 신중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요리를 직접 해야 하는 상황이면 특히 유용한 정보다. 그러나 식사와 무관한 만남이었는데도 그렇게 자신을 비건이라고 소개하는 것에는 '비건임이 자랑스럽다'라는 뉘앙스가 깔려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럼 페미니스트는 왜 그럴까?

이건 나도 모르겠다. 비건과 같이 '페미니스트임이 자랑스럽다'라는 뉘앙스도 있는 것도 같다. (물론 모든 페미니스트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우가 상당히 잦아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 누군가가 '나는 페미니스트'요.라고 소개를 하면 나는 상당히 위축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 사람은 지금부터 내가 어떤 페미니즘에 반하는 발언을 하는 순간 싸울 준비가 되었다는 말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즉 전투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뭔가 말조심해야 할 거 같아.라는 소극적인 대화의 태도를 가지게 된다. 

물론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가진 젠더 롤을 없애고 성평등을 완벽에 가깝게 이루자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다만 페미니스트들의 사회를 정복할 듯한 태도의 날카로운 공격을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다. 특히 한국사회의 페미니스트는 뭔가 잘못되었다. 자신이 당한 불평등에 대한 보상의 심리는 상당히 강하지만 성평등이 이루어진 사회에서 가져야 할 의무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또 이 글로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여하튼 비건과 페미니스트들의 소개에 나는 늘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왜? 왜? 비건임을 밝히는 거지? 왜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거지?라고 말이다.

내 이론은 이렇다. 비건과 페미니스트들은 상대적으로 타인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혹은 선진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요즘의 비건은 종교적 이유보다는 지구온난화를 위해 자신의 음식 섭취 습관을 바꿔서 지구온난화를 완화하는 일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감?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닐까? 따라서 여전히 고기를 먹는 인간은 시대에 뒤쳐진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은 아닐까? 

페미니스트 역시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나는 깨어있는 여성이요.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는 선진 여성입니다. 기존 남성들이 구축한 사회적 틀에 순응하는 기존 여성들과 달라요.라는 자부심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건과 페미니스트는 분명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에 대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즉, 비건은 지구온난화를 위해 고기 먹는 사회를 고기를 먹지 않는 사회로 바꿔야 한다는 사명이 있고,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중심의 사회를 흔들어 성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싸워서 이겨야 할 상대가 있는데 그게 누구인지 잘 모르니 자신의 소개에 자신이 비건임을 페미니스트임을 미리 밝혀두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당신이 조용한 비건이고 페미니스트라면 내 이론은 그냥 개인적이고 쓸데없는 생각으로 치부해 주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현준 건축가의 글쓰기 한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