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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Sep 27. 2016

물 위의 사원

스리랑카 건축여행기 #12

시마 말라카 (Seema Malaka)

Geoffery Bawa, 1976-78, Colombo, Sri Lanka



늘 '잘 사는' 나라의 건축물만 동경하면 살았던 저에게 제프리 바와의 건축은 소위 '못 사는' 나라에서 겪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작은  나라의 지혜로운 결과물을 공유합니다.   




세상의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


스리랑카 콜롬보에는 호수 위에 떠 있는 불교 사원이 있다. 이곳은 부처뿐만 아니라 시바와 가네쉬를 비롯한 힌두의 신마저도 한 장소에서 숭배되는 이상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불교신자를 비롯해, 힌두를 믿는 사람부터, 아무것도 믿지 않는 관광객도 이곳을 찾아온다. 종교가 있으면 숭배, 종교가 없으면 건물이 아름답기 때문에 찾는다. 혹은 그 둘 다 해당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사원의 이름은 시마말라카, 작지만 아름답고, 신성하며, 특별한 형태의 건물이 아름답다.


한 승려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무사지(Moosajee)라는 무슬림 사업가가 재원의 상당부분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교 사원을 짓는 데, 왜 하필 무슬림의 지원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사업가였던 무사지는 자신이 속해 있던 무슬림 지역사회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밉보이는 바람에 스리랑카에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에 무진장 화가 난 무사지는 자신이 떠나는 스리랑카에 불교가 발전하도록 자신의 돈을 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기부했던 것이다. 자신을 미워한 무슬림 사회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던 셈이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한 무슬림의 유치한 발상은 호수 위에 사원을 짓길 제안한 바와의 아이디어와 만나 기발한 현대식 사원으로 태어났다.  



성스러운 공간 속으로


한 낮의 뜨거운 날씨, 늘 변함없이 후덥지근한 스리랑카의 여느 보통의 날 이곳을 찿았다. 신 앞에 나약한 인간임을 고백하려는 사람들이 사원 입구의 다리를 건너고 있다. 물 위를 건너 사원으로 향하는 좁은 시멘트 다리다. 제프리 바와는 물을 양 옆에 두고 걸어가는 길을 자신의 건축물에 설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건 마치,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행위로, 건축물의 메인 공간으로 향햐기 전에 이루어지는 성스러운 기분 전환과 같다. 마치 중요한 데이트를 앞두고 샤워를 하고 프레쉬한 얼굴을 만들고 싶은 것처럼,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물에 둘러싸인 작은 길을 건너면서 뭔가를 씻어내는 의식을 치르게 된다.


다리를 건너면 호수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왠지 모르게 속세를 벗어나 약간은 다른 세상을 향해 걷고 있는 듯하다. 물이 몸에 묻은 더러움과 먼지를 씻어내듯 사람들은 조금은 깨끗해진 육체로 신성한 장소로 진입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다리를 건너 입구에 벗어 놓은 사람들의 신발들 사이에 나도 조심스레 신발을 벗어 둔다. 시멘트 바닥은 한낮의 열기를 흡수해 양말을 신어도 그 열기가 뜨겁다.




종교가 없는 삶이,

믿음 없는 인간이란


스리랑카 친구들을 가끔 나의 종교에 대해서 묻곤 했었다.

“종교가 어떻게 되요?”

“전 종교가 없어요.”

이렇게 열 번이 넘게 대답을 해본 결과, 아홉 번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아니 어떻게 종교가 없을 수가 있죠?”  

그들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다만 어떻게 인간의 삶이 믿음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를 태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뿐이었다. 뭔가 충격에 빠진 똥그래진 눈을 바라보고 나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종교가 없다는 게 이렇게 이상한 일이라니.




종교가 달라도 믿는다는 건 같으니까


스리랑카는 크게 세 민족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민족마다 종교가 틀리다. 민족구성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싱할라인(Sinhalese)이 약  70%에 해당하며 이들은 대부분 불교를 믿는다. 그리고 약 20%에 해당하는 타밀인(Tamils)은 힌두교를,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무슬림과 기타 민족이다. 불교가 우세인 동네의 사거리에는 보리수나무와 그 밑에서 눈을 감은 흰 불상을 두고, 밤이 되면 수많은 전구들이 부처의 머리 주위에서 화려하게 깜빡인다. 그리고 타밀 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곳에는 힌두사원이 있고, 무어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어김없이 모스크가 있다. 이도저도 우위 없이 다양한 민족이 섞여서 사는 동네에는 불상 옆에 힌두 신들의 상이, 또 그 옆에는 예수의 상을 위한 공간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들에겐 종교의 차이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 듯 보인다. 그저 자신이 무언가를 믿는다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이 보여주는 종교 간의 어울림은 우리가 보고 배울 점이 많다. 섞여서 살아가는 그들은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며 잡음 없이 잘도 살아간다.




스리랑카 최초의 현대식 사원


이 사원은 스리랑카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현대식 불교사원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승려들이 상주하지 않는 절이기도 하다. 기념비적이고 상징적인 경향이 강한 이 사원은 스리랑카의 최대 도시의 중앙에서 현대의 불교가 아직도 굳건함을 보여주고 있다. 시마 말라카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원 중의 하나인 강가라마 사원의 입구 앞에 있다. 사원은 출가한 승려들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원의 청색 기와가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넘실대는 호수의 잔잔한 물결 위에는 연인들이 발로 구르는 페달로 움직이는 오리들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중앙사당은 네팔의 불교사원의 양식을 차용했다. 내부는 길게 쪼개진 나무판을 배열해 바람이 통하고 그늘이 진다.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감고 연신 뭔가를 중얼거리는 노인의 얼굴이 주름으로 가득하다. 사당의 복도 둘레에는 수십 개의 부처상이 놓여 있다. 각자 다른 손 모양과 다른 미소를 띠고 있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사원


가운데 사당을 중심으로 오른 쪽에는 불교 의례를 위한 공간이, 왼쪽에는 보리수 밑 그늘진 곳에 불상을 둔 공간이 있다. 크게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지는 시마 말라카는 중심이 되는 사당의 앞으로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가 뻗어 있다. 사원의 배치가 독특해 보이지만, 실은 전형적인 싱할라 사원의 배치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러한 배치형태는 아누라다푸라의 고대사원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싱할라 고대건축의 특징은 가운데 메인 건물을 두고 사위로 작은 건물을 배치하여 연결시키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작은 믿음의 섬


작은 연결 통로를 지나 왼편의 보리수 사원으로 건너간다. 물 위의 땅에서 잘도 자란 보리수가 흐드러진 가지를 뻗고 있다. 보리수가 만들어 낸 그늘엔 부처가 명상에 잠겨있다. 보리수 사원의 네 모퉁이에는 힌두의 주요 신들을 모신 작은 사당도 배치되어있다. 사람들은 한 공간에서 부처와 다른 신을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롭다. 작은 믿음의 섬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알 수 없는 그들의 걱정과 불안, 얻고자 애쓰는 욕망을 염원하는 염원하기 위해 사원을 찾은 많은 순례자들을 지탱하기에 충분할 만큼 사원의 기초가 튼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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