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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Oct 23. 2016

집, 구경할까요?

스리랑카 건축여행기 #13

사람 하우스 (De Saram House)

Geoffery Bawa, 1970-73, Colombo, Sri Lanka



늘 '잘 사는' 나라의 건축물만 동경하면 살았던 저에게 제프리 바와의 건축은 소위 '못 사는' 나라에서 겪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작은  나라의 지혜로운 결과물을 공유합니다.   



콜롬보를 찾을 일이 있으면, 가끔 지나치는 골목길이 있다. 그 골목길에 위치한 많은 집들 중에 유독 눈길을 끄는 오래된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허름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뭔가 색다른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집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좀 다른 집과 달라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했다. 그렇다고 다른 집과 유별나게 다른 점은 없었지만, 세심하게 디자인된 모양새가 건축적 재능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설계가 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지만 날은 덥고 습도는 엄청나게 높았기에 굳이 오래 그 집을 바라보진 않았다. 



그러다 일년 이 지나고 2년이라는 세월을 스리랑카에서 살다가 알게 되었다. 이 집도 바와가 설계를 한 작품 중의 하나라는 것을 말이다. 아마 이렇게 콜롬보에서 모르고 지나친 바와의 집들이 더 있을 것이다. 분명히...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다. 바와가 활동하던 시기에 스리랑카는 내전으로 많은 갈등이 겪었고, 지리적으로 건축물을 지을 곳이 콜롬보를 비롯한 동남부 밖에 없었다. 또한 바와가 스리랑카의 현대 건물은 독점할 정도로 다작을 했으니, 좁은 지리적 공간에 얼마나 많은 바와의 작품이 있을지 상상만해도 대충 감이 온다. 



주택은 아무래도 그 집에 사는 가족들의 프라이버시가 있기 때문에, 집 구경을 시켜 달라고 말하기가 참 미안한 곳이다. 특히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집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낯선 사람들이 문을 두드렸을까? 그렇다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제프리 바와가 설계한 집을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가 있단 말인가? 조금 무례를 하더라도 집을 구경해보고 싶었다. 

일단 집 앞에서 기웃거렸다. 잠시 숨을 고르며 망설이고 있을 때, 갑자기 현관문이 열렸다. 허름한 옷을 입은 할머니가 현과문 앞 길거리에 면한 마당으로 나와서는 오늘 배달된 신문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마도 집주인으로 보였다. 마당에 아무렇게나 널부려진 신문을 짚어들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는 집주인을 막아서서 수줍게 물었다.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집 좀 구경시켜 주실 수 있으세요?"

잠시 놀라는 표정이 살짝 얼굴에 스쳐지나가긴 했지만, 선뜻 "그러세요."라고 허락을 받았다.

'이게 왠 일인가? 상업적으로 혹은 전시용으로 사용되지 않고, 실제 집주인이 거주하고 있는 바와의 집을 구경하게 되는 행운이 찾아오다니.'

더운 날씨에 문 밖에서 너무 오래 망설이며 기다린 것에 비해 너무나 쉽게 집구경을 허락받았다는 점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아름답고 작은 문이 열렸다.


동일한 구조로 된 네 채의 집이 나란히 붙어 있는 이 주택은 데 사람(De Saram)이 그의 네 자녀를 위해 1970년 바와에게 설계를 부탁한 집이다. 스리랑카는 조금이라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자녀들이 결혼할 때 이렇게 땅을 사서 집을 지어 보내는 게 하나의 풍습이다. 살림이 조금 빠듯한 집은 땅이라도 사서 결혼을 보내, 나중에 아들과 딸들이 10년이고 20년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벌이로 집을 지어나간다. 스리랑카 인들에게 집이란 투자의 개념보다 평생을 가족과 함께 살아갈 소중한 터전으로서의 개념이 강하다. 

이 집은 네 자녀가 같은 동네에서 나란히 생활하기 바랐던 부모의 마음이 집의 설계에 반영되어 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딸이 네 채 중 한 집에만 살고 있고, 다른 집들은 광고회사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집의 구조는 크게 세 등분으로 나누워 진다, 첫 번째 공간이 주차와 응접실, 두 번째 공간은 사적인 공간으로 침실이 있고, 세 번째는 공용공간으로 양 옆으로 중정과 마당을 둔 거실이 있다. 현관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은 점점 더 밝아지고 상쾌해진다.

바와가 설계한 주택이 그러하듯, 집은 길가로부터 철저히 차단되어 있고, 내부는 마당과 중정을 통해 외부환경으로 열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집은 크지 않다. 놀랍도록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면서도 오픈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면적(15m×35m)에서 공간사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성은 간결하고 집약적으로 설계되었다. 

집주인 할머니는 원하는 맘껏 구경하라고 말하면서도 집을 정리하지 못한 채 한국에서 온 손님을 맞은 게 약간은 쑥스러우신 모양이었다. 



"스리랑카에서 제프리 바와가 설계한 집에 산다는 건 무척이나 명예로운 일이에요. 바와의 주택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자랑스러운 일이죠. 제프리 바와는 스리랑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고, 우리나라 건축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니까요."

주인 할머니는 아주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운 어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 살고 있으니 자랑스러운 일이긴 하나, 가끔 문제가 생깁니다. 물론 그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나 한낮에는 집이 너무 더웠어요. 그래서 지붕의 열기가 빠져나가도록 지붕을 수선할 수 밖에 없었죠. 지금은 형태가 원래와 약간 다를 거에요." 


사람이 사는 집이라 약간은 어지러이 자리 잡은 살림살이들,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오래된 사진이 벽에 걸려 있고, 집주인의 취향을 짐작하게 하는 골동품들이 흥미로웠다. 사실, 바와에게 집을 설계할 정도면 스리랑카에서는 부자이거나, 도덕적으로 명망이 높거나, 정치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집은 아담했고, 살림살이들이 그렇게 사치스럽지도 않았다. 여느 평범한 가정 집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혼자서 사진기를 들고 이리저리 공간을 들쑥거리고 창문을 열어보기도 하고 닫아보기도 하고 있었지만, 집주인 할머니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책상에 앉아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거실 한 구석에는 빨래가 건조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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