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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Oct 03. 2016

시간을 가질 것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다가올 때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 있다. 이런저런 고민과 잡념으로 마음이 붕 떠 있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복잡한 감정을 바람의 온도로 식히기 위해 달리기를 한다. 

몇 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게을러진 육체는 쉽게 지쳐버린다. 그러나 다리의 고통, 육체의 고통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고통이 생명의 순간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말이다.

달리는 동안의 다리 고통... 가빠져 오는 숨소리... 그를 통해 나는 살아있음을 단적으로 느낀다.

‘그래 난 살아있었지. 그래 난 가쁜 숨을 내쉬며 살아있었지.’

그리고 뭔가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달리는 동안 끊임없는 나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아주 예전에 화가 난 나는, 부들부들 떨며 내 분노를 주체 못하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중년을 넘긴 직장 선배분께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봐 혈기 넘치는 젊은이, 자네에게 지금 필요한 건 시간이네. 물리적인 시간 말일세.”

흥분으로 젊은 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그때의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쓸데없는, 그리고 진심을 담지 않고 전하는 그저그런 조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도 어느정도 삶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순간 그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그땐 몰랐지만, 이제는 알 거 같았다. 

그래... 그의 말이 맞았다. 


못 잊을 거 같았던 사랑의 아픔도, 치유될 수 없을 거 같았던 고통도, 가라앉지 않을 거 같았던 분노도... 모두 과거가 되어버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렇게 시간은 모든 사건의 날카로운 날을 무디게 만든다. 모든 것은 시간에 의해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시간에 의해 아무렇지 않게 된다. 

지나서 생각하면 그때 내가 어떤 이유로 아파했고 고통스러워했으며 분노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시간이 약이란 말... 어른들이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처방을 내렸을 시간이라는 약. 그게 그 당시 나에게 필요했다.

삶은 헷갈리지만, 늘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주기에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나는 조용히 들릴듯 말듯한 소리로 되새긴다.


‘시간을 가질 것.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내 앞으로 다가왔을 때, 그저 시간을 가질 것.’








안종현 작가의 여행에세이 <위로의 길을 따라 걸을 것>은 끊임없는 상처 속에서도 삶을 계속 여행할 위로와 용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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