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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Nov 04. 2016

뭘 하려고 인도에 오진 않으니까



인도 남부에 위치한 고아(Goa). 이곳 해변에서 만난 네덜란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네덜란드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이 뭐였는지 당체 기억나지 않는다. 책을 다 읽은 후 덮고 나면 기분만 좋아지고 아무런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말이다. 어쩌면 난 그에게 한 번도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듣곤 잊어버렸을 가능성도 크다. 



언젠가부터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굳이 묻지 않게 된다. 우리는 우연히 동일한 시간에 같은 장소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친구가 되었을 뿐이었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그런 정보들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여행에서 만나는 가벼운 인간관계가 좋다. 길 위에서 만난 친구들은 처음부터 반말로 시작해, 언제나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나저나 이곳 맥주는 정말 미지근하군요. 어린애 오줌 같은 맛이 나. 썩을.”

“Fuck! 저 여자 엉덩이 한번 끝내주는구먼. 안 그렇소? 내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당신은 틀림없이 게이야.”

“이보슈~ 중국양반, 여기 근처에 누드 비치가 있다던데,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아슈? 왜 동양인들은 그런 정보에 밝다면서요?” 


대체로 우리는 이런 식의 아주 근사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인간관계를 시작한다. 여행에서 만나는 인간관계는 가벼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는 세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기분, 나의 감정, 나의 생각을 말하는 편안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깊은 마음을 들여다보게도 하고, 내 마음 깊게 구석진 곳을 들춰 보게도 만든다. 이상하리만치 이런 일들이 어색하지 않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편안할 뿐이다. 설마 그 촌놈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나의 비밀을 소문낼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소문이 난다고 한들, 한국까지 퍼질 리도 만무하니 말이다. 



한낮의 온도가 무지막지하게 높았고, 하루 한번쯤은 꼭 스콜성 소나기가 내리는 어느 평범한 고아의 하루였다. 허름하고 지저분한 천막 아래에서 로컬 맥주인 킹피셔를 마시고 있었다. 네덜란드 정원사가 물었다.

“너는 어쩌다 인도로 오게 되었니?” 

나는 딱히 들려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글쎄.” 

“하긴 뭘 바라고 꼭 인도에 오는 건 아니니까.” 

친구는 웃으면서 다시 질문을 고쳐 던진다.

“한국 사람들은 참 열심히 일한다고 들었는데, 너도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는 그렇게 살았니?” 

갑자기 한국에서의 생활이 떠오른다. 

“유럽에서 온 네가 들으면 깜짝 놀랄걸?”

네덜란드 정원사가 뜸을 드리는 나에게 집중한다. 

“나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12시간을 넘게 일했어.”

“12시간? 맙소사! 사람이 그렇게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

“그것도 양호한 편에 속했어. 아침 6시에 건설현장에 도착해서 현장을 떠날 때는 보통 저녁 9시가 넘었으니까. 그리고 집에 오면 늘 쓰러지듯 잠자기 바빴지.”

“한국 사람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그건 사는 게 아냐.”

“그래 그건 사는 게 아니었지. 그냥 살아가는 거였어. 몸이 생존하는 삶의 연속이었던 거 같아.”

“그래, 정말 듣기만 해도 소름끼친다.” 

“어쩔 수 없었어. 아니 나라고 별수가 없었던 걸지도 모르지만.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 인생에 뭐 별다른 게 있을까?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란 놈이 뭐 특별하다고 다르게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던 거 같아.”

친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서는 열심히 일한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

“그렇지. 좋은 일이지.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필요한 일이고. 근데 열심히 일하는 만큼 자신의 인생을 즐길 줄도 알아야지.”

인생을 즐기기에 앞서 내 인생을 보살필 여유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저 일에 치이고, 돈을 벌어 빚을 갚아 나가기에 바빴고, 연인을 찾아야 했고, 가족을 보살피거나 원치도 않는 사교성 모임에 나가야 했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의 결혼식을 쫒아 다니며 휴일을 소비해야 했다. 과연 이게 정상적인 삶일까? 그냥 내 몸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느낌만 들뿐이다. 내 삶이지만 어째 뜻대로 움직이거나 나의 의지대로 통제가 되질 않았다.

“근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인생을 즐기며 사는 일이. 우리나라에선 대부분이 그렇게 ‘열심히’를 넘어서 무리하게 일을 하면서 살아.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결혼하려고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어. 그 당시 만나던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려면 열심히 몇 년 동안 돈을 꼬박 모아도 불가능했으니까. 남들처럼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 부모님께 손을 벌릴 처지도 아니었거든. 나는 그냥 열심히 돈이나 모으면서 살았어. 남들이 그런 것처럼.”


어른들은 말했다. 

‘젊은 때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 

그러나 그건 체념이 될 뿐,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누구의 삶이 더 엉망진창이었나에 대해서 경쟁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 할수록, 삶에 대한 무게는 가벼워지고 있었다. 생각보단 그건 위로가 되었다. 바다에는 많지 않은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고, 해변에는 누워서 태닝을 즐기며 낮잠에 빠진 사람들도 많았다. 


cover photography: @deeptikp/Instagram





삶을 계속 여행할 위로와 용기 <위로의 길을 따라 걸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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