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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황제

딸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고장 나 버린 아비의 이야기

by 안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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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부터 번역을 준비해 온, 스웨덴 소설책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포르투갈 황제>, 스웨덴의 국민 작가인 셀마 라겔뢰프(Selma Lagerlöf)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을 짧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가난한 일꾼 얀은, 아내가 계획에 없던 딸을 임신하게 되자 육아에 빼앗기게 될 자신의 휴식 시간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딸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그의 유일한 기쁨이자 사랑이 된다. 딸의 나이가 열여덟이 되던 해, 새 농장주의 탐욕으로 집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그녀는 노부모 대신 돈을 벌기 위해 스톡홀름으로 떠난다. 딸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한 얀은 자신을 포르투갈 황제라고 믿는 망상에 빠져들고, 여황이 된 딸이 언제고 당당하게 금의환향할 거라고 장담한다. 이 소설은 한 아버지의 붙잡고 싶은 꿈과 놓을 수 없는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다.


스웨덴어를 배울 당시 전 스웨덴 문학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었습니다. 스웨덴에 오기 전, 읽었던 스웨덴 소설은 딱 하나 있었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라는 베스트셀러 책이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이 저와 비슷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스웨덴어 선생님 마쿠스가 제게 책 한 권을 건넸습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책이라고 말이죠. 그 책이 바로, 제가 번역한 <포르투갈 황제>였습니다. 이야기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막힘없이 읽히는 그런 소설이었죠. 책을 덮고, 한국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세상에나,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한국에는 소개도 되어 있지 않더군요. 그 뒤로, 좋은 스웨덴 소설책을 보면, 한국 인터넷 서점으로 들어가 살펴보곤 했는데, 죄다 발간된 적이 없었습니다. 이곳에 이렇게 좋은 책들이 많은데도 말이죠. 내가 지금 블루 오션을 발견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스웨덴 문학을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우선 아주 재미있습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박찬욱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죠. '고전 영화를 봐라!' 저도 한마디 보태고 싶습니다. '고전 문학을 읽어라!' 고전에는 서사가 있습니다. 현대문학에는 다소 이야기의 발전이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서사의 구조가 상당히 아쉬습니다. 저는 가끔 진짜 탄탄한 서사를 가진 이야기를 읽고 싶은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책이 바로 <포르투갈 황제>입니다.


초반부는 아주 귀엽고, 중반부는 웃기고 흥미진진합니다. 그러다 후반부에는 큰 돌덩이 하나가 가슴에 턱하고 올려지는 느낌입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을 때는,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를 슬그머니 치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감정의 흐름을 느끼게 해 주는 소설입니다.


작가는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게 1909년의 일이죠. 그런데 스웨덴에서 여성 참정권이 처음으로 법으로 만들어진 해가 1919년입니다. 무려 10년이나 앞선 시점이었죠. 그렇게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됩니다. 그 당시 문학계를 주름잡던 남성들의 보이지 않는 반발이 어떠했을지 말이죠. 서양권에서는 셀마 라겔뢰프보다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가 더 알려져 있습니다. 극본을 아주 잘 쓰는 작가였습니다. 셀마 라겔뢰프가 스웨덴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자, 아우구스트 스티린드베리는 시샘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가 먼저 문학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은 막 여성 인권의 운동이 태동하던 시기에 발표된 작품이라 그런지 상당히 페미니스트적입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책을 읽어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여기에 담을 수 없으니, 직접 읽어보시고 그 요소를 찾아보는 재미를 가져 보시길 바랍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작가는 이야기 곳곳에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여러 가지 상징과 장치들을 숨겨 놓았습니다. 그러한 요소들을 찾아가며 읽어도 흥미롭습니다.


책을 읽어본 어떤 사람은 슬픈 이야기라고 합니다. 굿리즈의 어떤 리뷰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슬픔에도 여러 종류의 슬픔이 있을 거 같습니다. 최루탄처럼 눈물이 펑펑 나는 그런 슬픔이 있는 반면, 슬프지만 왠지 가슴이 따뜻하면서 위로와 평안을 가져다주는 그런 슬픔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갓 나온 신간으로, 지금은 온라인 서점과 쿠팡에서 주문이 가능합니다. 깊은 가을에 좋은 독서가 되실 거라 장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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