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약혼자

Agnes Slott-Møller (덴마크, 1862–1937)

by 안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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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약혼자가 죽어가고 있다. 아직 죽기엔 너무 젊은 약혼자는 창백하고 앙상하다. 마치 오랜 기간 병상에서 싸운 듯 그의 표정에서 아무런 감정도 읽히을 수 없다. 슬픔도 안타까움도 없다. 그저 조금 지쳐 보일뿐. 아마도 이미 이 세상에는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와 그녀 사이에는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금은보화가 놓여 있다. 약혼자에게 마지막으로 건네는 영원한 사랑을 표시일까? 그러나 오히려 죽음 앞에 보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더 극대화시킬 뿐이다. 죽은 자에게 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약혼자는 그의 손에 마지막으로 입을 맞춘다. 그것도 침대의 가장자리에 앉아서 말이다. 침대는 사적인 공간이자 탄생과 죽음이 교차하는 장소다. 그녀는 마치 죽음의 경계에 서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만 같다. 대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며, 마지막 온기를 붙잡으려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생과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간극이 그들을 나누고 있다.

죽어가는 이의 몸은 앙상한 겨울 같다. 눈동자에는 아무런 생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약혼녀의 비단옷은 마치 봄의 생명력을 표현하듯 초록과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어쩌나 이 남자는 죽음에 가까워지게 되었을까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저 멀리 배가 다가오고 있다. 남자가 죽으면 그의 영혼을 싣고 죽음의 강을 건널 것이다. 베란다 위에는 참나무 솔가지가 가지런히 뿌려져 있다. 북유럽에서 장례식에 주로 쓰이는 솔가지를 통해 그의 죽음이 가족에 의해 준비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사랑의 약속은 죽음으로 중단된다. 결혼식이 장례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두 남녀 간의 사랑도, 십자가도, 황금빛으로 넘치는 재물도 이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죽어가는 약혼자 (The Dyibg Betrothed, ca. 1906)

Agnes Slott-Møller (덴마크, 1862–1937)





우리에게 '닐스의 신기한 모험'으로 기억되는 셀마 라겔뢰프의 숨겨진 명작, <포르투갈 황제>가 국내 최초로 완역되어 나왔습니다. 스웨덴에서 모든 국민이 읽은 소설 중 하나입니다. 아주 아름다우며, 동시에 아주 슬픈, 어른을 위한 동화. 잊혀진 명작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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