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건축여행기 #3
루누강가
인간의 손을 더한, 원시림의 정원
루누강가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버스를 타고 타운에서 내려 걸어가는 것은 절대 절대 무리다. 멀기도 멀지만, 어디인지 찾아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루누강가는 아주 외진 곳에 있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이런 후미진 곳에 집을 지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가는 순간, 스스로 놀라게 되는 자신을 만날 것이다.
'세상에, 이런 외진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을 줄이야...'
당최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을 곳, 그곳은 바로 루누강가다.
루누강가, 이곳은 스라랑카가 낳은 스타 건축가 제프리 바와의 집이다.
루누강가는 바와가 남긴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개인적으로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생각만큼 루누강가는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찾아 가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곳을 찾아가면 당신은 분명 느낄 것이다. 우리 나라에 이런 건축을 시도한 건축가는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의 건축이 얼마나 매력이 없는 지를 말이다. '왜 우린 이런 건축을 만들어내지 못할까?'라는 절망에 빠질 지도 모른다.
그의 건축은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그리고 그건 건축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의 건축은 항상 자연과 함께 한다. 주변으로 뻗어가는 그의 공간,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의 건축. 그 공간의 유혹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서러워진다. '왜 우리는 이런 건축을 하지 못하는가?' 그가 설계한 건축의 지붕에 앉아 끝도 없는 생각에 잠긴다. 하루 종일 멍만 때려도 좋을 공간이 바로 이 공간이다. 마치 시간이 멈춘듯, 마치 자연 속에서 아주 느린 시간을 즐기려고 찾아 온 것만 같다. 세상에 다시 없을 장소, 이곳은 루누강가다.
왜 한국의 건축이 요 모양이 되었을까?
저개발 국가의 건축보다 못한 꼴이 되고 말았을까?
왜 하필 이런 누추하고 외딴 곳을 바와는 선택했을까?
벤토타 타운에서 내려 트리윌(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중간격인 바퀴 세 개 달린 운송수단)을 잡아타고 달린다. 바와의 걸작 벤토타 비치호텔이 있는 타운에서 강을 가로지르고, 메인 도로에서 한참을 벗어나 달린다. 스리랑카 어디서나 볼법한 마을 어귀 몇 개를 지나치자, 집도 절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논과 밭이 숲과 질서 없이 공존하는 풍경이 보일뿐이다. 그저 그렇게 흔하디 흔한 스리랑카의 농촌마을을 지나쳐갔다.
작은 차 하나 지나가기 어려울 만큼 좁은 논두렁길을 먼지 풀풀 날리며 바퀴 세 개 달린 차가 한참을 달린다. 문득 이 운전기사 아저씨가 목적지를 제대로 알고나 가는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루누강가의 허름한 출입구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난 그렇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가난한 농촌의 여염집을 지나왔고, 논두렁을 지나왔고, 고무나무 숲을 지나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겨우 허름한 콘크리트 대문이었다. 그것도 있으나마나한 대문,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경계가 허술한 구조물이 말이다. 오래된 콘크리트는 덥고 습한 기후를 견뎌내며 이끼가 끼고 부슬부슬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런 산골에, 콜롬보에서 약 2시간이 넘는 거리에 바와의 마지막 작업실이자 정원이 있다. 나이가 들면 으레 복잡한 도시를 떠나 풀냄새 나는 곳을 찾는 것이 인간 노화의 정석일지도 모른다. 이런 원시림 같은 곳을 바와는 또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의문만 가득 생긴다. 허름한 시멘트 덩어리로 만든 출입구, 이끼가 끼고 덩굴이 관리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자라고 있다. 닫힌 철문 앞에 서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들어가야 하지? 담을 넘어야하나?"
초인종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보세요~~~~"라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철문 넘어 그나마 가까워 보이는 집도 한참의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까운 집까지 들리게 소리를 지를려면 엄청나게 목소리에 힘을 주어 질러야 했다. 얌전한 내가 그럴순 없지 않은가? 대략 난감한 상황이 닥친 셈이다.
그렇게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주위를 왔다갔다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더니, 트리윌 운전기사가 그제야 나에게 힌트를 준다. 그리고 손을 들어 허공의 어느 한 지점을 가르켰다. 그 손을 따라 시선이 머문 곳엔 철종이 보였다. 철문 위에 종이 달려있었다.
‘이걸?’
조금 망설이다, 종에 달린 줄을 아래로 당겼다. 일순간 고요했던 숲의 정적이 깨졌다. 생각보다 큰 종소리에 놀라 머쓱해졌다.
'이거 꽤나 괜찮은 아날로그 시스템인데...'
그러나 복잡한 도시에서 이런 초인종을 걸어 놨다간, 분명 민원을 접수한 경찰이 우리집을 방문할 게 뻔했다. 종소리의 여운은 꽤 오래 갔다. 크게 울린 종은 진동을 남기며 천천히 작아져 갔다.
종을 울리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깊은 숲속에 있는 집에서 한 관리인이 나타났다. 그는 아주 느리게 문을 열어주었다. 그 어떤 인사도, 그리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이곳은 입구부터 심상치 않은 곳이었다.